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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립고 보고 싶다.

by ligdow


24년 3월 3일, 서울에 가기 전날 늦은 저녁,

미내(가명)가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고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 앞으로 왔다.


“선생님, 저 그날 이후로 새벽 예배 다녀요.

하나님은 제 기도를 잘 들어주시거든요.

이번에도 꼭 들어주실 거예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을 믿어요.

선생님은 뭐든 잘하시잖아요.”


언제나처럼 해맑은 미내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는 미내를 꼭 안아주고 다정하게 셀카를 찍으며 그 순간을 담아두었다. 따뜻한 미소와 체온, 반짝이는 눈빛, 그날의 감동은 시간이 흘러도 떠올릴 때마다 새롭게 되살아난다.


우리를 보고 계시던 미내 어머님께서 무언가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미내 아빠가 선생님 드리라고 준비한 거예요. 아이들과 산에 갔다가 발견한 것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걸로 액자에 넣었대요. 저희 가족이 기도하고 있으니까 선생님 힘내셔서 치료 잘 받고 오세요.”



잠시 후 미내 아버지의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미내 아빠입니다. 아내에게 선생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미내와 저희 가정을 향한 선생님의 진심을 알기에 저희 부부도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꼭 잘 견디시고 이겨내셔서 벅찬 마음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소리 없이도 보이지 않아도 응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잊지 마시고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고마운 선생님, 힘내세요. “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미내와 함께 쌓아온 시간이 그들 가족의 마음속에 이렇게 따뜻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벅차게 다가왔다.


사실 그건 비단 미내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함께 했던 여러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의 마음에도 내가 보낸 진심이 고스란히 닿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함께 했을 뿐인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큰아이를 낳고 매일이 즐거웠다.

내일은 또 무엇을 하고 놀까, 하루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고 분주함조차 신이 났다. 어차피 즐거울 시간이라면 우리 아이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아이들을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만 보내라고 말하게 됐다.


다른 집에서 모일 때도 나는 엄마들과의 수다보다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더 좋았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나를 먼저 찾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늘 책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더니 어느새 ‘독서지도사’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두 딸을 키우며 엄마라는 역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일을 조심스럽게 꾸준히 이어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을 나는 이미 20대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늘 설렘이었고 언제나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 순간순간이 내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고, 아이들은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존재였다.

나는 그 속에서 가장 나답게 빛났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글을 쓰며 깔깔 웃고, 소곤소곤 마음을 주고받던 시간들. 그 시간들은 내 삶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한없이 따뜻하고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빛을 품고 있는 작은 보석 같았다. 그 빛이 더욱 찬란히 반짝일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서 빛을 비추는 어른이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진료와 검사를 위해 서울을 자주 오갔고 치료 계획이 세워지면서 서울에서의 긴 여정을 준비해야 했다. 갑작스레 여러 번 수업을 취소해야 했던 날들. 그 아쉬움과 미안함, 안타까움은 어떤 말로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더는 수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분주한 상황 속에서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기 어려워, 먼저 글로 학부모님들께 조심스럽게 상황을 전했다. 그 글 안에는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그동안의 고마움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했다. 며칠 뒤 마음을 조금 추스른 후에 하나둘 전화를 드릴 수 있었다. 다들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전하시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셨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그날, 마음은 유난히 무거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놓아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단지 직업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일상과 내 존재의 한 부분이 갑자기 뚝 끊겨버린 듯한 허전함이 밀려왔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소중했기에 그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 만큼 아쉬웠다.


한동안 내 세계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텅 비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비록 몸은 멀리 있었지만 아이들과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

공부가 어렵다는 귀여운 투정,

학원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선생님이 생각났다고,

친구 관계로 속상했던 일,

시험을 잘 봤다는 소식,

엄마에게 혼났다는 귀여운 하소연,

반장 선거에서 떨어져 부반장 선거는 출마 안 했는데

그것은 자존심 문제라고,

교실 창문을 바라보다 선생님 생각이 났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카톡을 보내는 거라고,


아이들은 종종 자신의 일상을 나누며 나의 안부를 물었고, “선생님, 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여은(가명)이는 티볼 연습 중에 홈런을 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왔다. 자기처럼 선생님도 힘내시라고, 작은 몸으로 휘두른 그 방망이에 마음까지 실어 보냈다. 그 짧은 영상 하나에 얼마나 큰 응원과 애정이 담겨 있었는지, 보는 내내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났다.

그때는 방사선 치료 부작용으로 몸이 많이 지치고 마음도 무거웠던 때라 여은이의 응원에 더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일부 공개한다.^^


소소한 안부와 일상, 무심한 듯 건넨 말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은 늘 그렇듯 사랑스러웠고, 따뜻한 마음들은 내 하루를 비추는 작은 햇살이 되어 주었다. 그 다정한 빛 덕분에 힘겨운 시간을 조금씩 견뎌낼 수 있었다.




지금도 아이들의 얼굴이 또렷이 떠오른다. 책장을 넘기며 웃던 표정, 질문에 반짝이던 눈빛, 글쓰기를 하던 진지한 모습, 수업이 끝나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던 아이들. 내 아들이고 딸처럼 느껴졌고, 함께한 시간은 단순한 일 그 이상이었다. 그 시간들은 내가 살아 있음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었고, ‘사키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설 수 있었던 진심으로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돌아보면, 그날들이 내 삶을 얼마나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이 느껴진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를 지켜준 따뜻한 힘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나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 사키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잠시 멈추었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눈빛, 다정한 말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그 기억들은 때때로 마음을 다독여주고, 지칠 때마다 다시 미소 지으며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언젠가 다시 웃으며 마주할 날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안녕,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지난주에 여은에게서 카톡이 왔다. 보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시험 공부하느라 한동안 연락을 못 해서 죄송하다고, 중학교 첫 기말고사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다고도. 우리는 언제나처럼 방학이 되면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한 학기 동안 가득 채운 그녀의 이야기보따리가 조금은 홀쭉해질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으로, 기도로, 선물로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시고 계시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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