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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날 (上)

금값이 된 금단의 나무들

by 도시 나무꾼 안톤

공방은 안톤의 '생각 공작소'다.

몸은 공방 한 켠에 차분히 앉아 있어도, 생각은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옛날로 미래로 날아다니곤 한다.


어느 공방에나 회원이 지켜야 수칙들이 있는데 대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나뉜다. '해야 할 것'은 회비 납부와 작업 후 정리정돈 등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로 '안전'에 관한 내용과 다른 회원의 개인 공구나 목재 무단 사용에 대한 것들이다. 기계실의 공용 기계는 회원들이 같이 사용하는 도구지만, 각자의 자리에 있는 개인 공구는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대체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경우는 유예 기간이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경우에는 즉각적이면서도 큰 분란이 난다.


공방의 수칙을 보다가 금기(禁忌)와 타부(taboo)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무도 벌목이나 거래, 유통이 금지된 나무가 있다. 멸종위험에 있어 보호대상인 것이 이유가 되기도 하고, 마을 수호신 등의 미신이나 종교적인 관념이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 신화(神話)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내 모습을 보지 말라"

"성스러운 곳에서 성행위 하지 말라"

그리고 "절대 뒤돌아 보지 말라"의 세 가지 이야기다.



"내 모습을 보면 안 된다"


일본에서 세상을 창조한 신은 남신 이자나기(イザナギ, 伊邪那岐)와 여신 이자나미(イザナミ, 伊邪那美)다. 일본의 주류인 야마토(大和) 민족에 의해 구전되다가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 풍토기에 남은 신화다. 야마토 정권은 서기 3세기말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이자 최초의 국가로 현재 일왕(日王)도 야마토 정권의 후계를 자처한다.

일본의 창세신화에서 남신(男神) 이자나기와 여신(女神) 이자나미가 세상을 창조하기 전 나눈 대화가 흥미롭다.


이자나기 : 당신의 몸은 어떻게 생겼는가

이자나미 : 내 몸은 완성되었지만 아직 한 곳에 구멍이 뚫려있다

이자나기 : 내 몸은 완성되었지만 남아도는 곳이 한 곳이 있다. 나의 남는 부분을 당신의 구멍에 넣어 국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떤가

이자나미 : 좋아. 그렇게 합시다.


신화에 따르면 이렇게 일본은 '남신과 여신의 성교'를 통해 만들어진 나라다. 영토도 만들고 흙의 신, 바람의 신 등 35 신을 만들었고 ‘불의 신’ 가쿠즈치(軻遇突智)을 낳다가 여신 이자나미는 그만 화상으로 죽게 된다. 그리고 지하계인 황천국(黄泉國, よみのくに 요미노쿠니)의 신이 된다.


남신 이자나기(우)와 여신 이자나미(좌)


여신 이자나미가 지하계로 떠나버리자 이자나기는 돌아오라 애원하며 지하계를 찾아간다. 간곡한 이자나기의 부탁에 이자나미는 허락하면서 하나의 조건을 건다.

들어와서 일곱 밤과 일곱 낮동안 절대 내 모습을 보면 안 된다


그러나 이자나기는 불을 밝혀 결국 약속을 어기고 이자나미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구더기로 가득 뒤덮이고 몸이 썩어 들어간 참혹한 모습을... 이자나기는 너무 놀라 이자나미를 애원하던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도망쳐 나오면서 황천국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버렸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화가 난 이자나미는 "내게 돌아오지 않으면 인간을 매일 천명씩 죽일 것이다"라고 소리 질렀고 이자나기는 몸서리를 치며 "난 그럼 매일 천오백 명을 태어나게 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자나기(イザナギ, 伊邪那岐)는 바로 강으로 달려가 오염된 몸을 씻는데 왼쪽 눈을 씻으니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天照), 오른쪽 눈을 씻으니 달의 신 '츠쿠요미'(月夜見) , 코를 씻으니 폭풍과 천둥의 신 '스사노오'(須佐)가 탄생한다. 이 세명의 신들은 일본에서는 '삼귀자'(三貴子)라 불리는데 그 중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アマテラス)는 일본의 주신이 되어 현재 일장기의 가운데 빨간 원이 된다.


일본의 태양여신 아마테라스(アマテラス)


삼귀자는 이자나기가 이자나미와의 약속을 어긴 후 (여신과 함께가 아니라) 남신 혼자 창조한 신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혹자는 남신 단독 창조라는 점에서 일본의 가부장제의 완성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서양의 태양신은 모두 남신(男神)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여신(女神)이라는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은(殷) 민족 신화에 태양 여신 '희화'(羲和, Xihe)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에서는 태양신을 여신으로 보는 경향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군신화는 아쉽게도 태양신 이야기가 없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불길하게 여긴 '왼쪽'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아마테라스는 이자나기가 '왼쪽' 눈을 씻어 만든 신이다. 오른쪽 눈으로부터 나온 츠쿠요미는 그 아래 급이다. 중국의 창세 신화인 반고(盤古) 신화에서도 반고의 '왼쪽' 눈으로부터 '태양'이, 오른쪽 눈으로부터 '달'이, 머리와 몸으로부터 중국의 오악(다섯 개의 산)이 태어난다.




중국과 일본의 창세신화를 보면, 태양신은 남신(男神) 일 거라는 생각과 '왼쪽 보다 오른쪽'을 중시하는 생각은 서양으로부터 건너온 고정관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어릴 때부터 구박받던 왼손잡이라면 동아시아 수천 년의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성(聖)스러운 곳에서 성행위 하지 말라"


로마의 작가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가 쓴 <변신 이야기>(Metamorphōseōn librī)에서 메두사(Medusa)는 이보다 억울할 수 없는 비운의 여인이다.

메두사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꿈틀거리는 뱀이고 메두사를 직접 보는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하게 되는 악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우스(Zeus)가 청동탑에 격리된 아르고스의 공주 '다나에'(Danae, '그리스의 여자'라는 뜻)를 황금 비로 변신해 임신시켜 낳은 아들, 페르세우스(Perseus)에 의해 머리가 잘려 죽는다.


(황금비를 맞고 있는) <다나에>(Danae) 1907. Gustav Klimt


원래 메두사는 여신 레벨의 관능적이고 출중한 미모의 처녀였다. 특히 머리카락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아테나(Athena, 로마신화의 미네르바 Minerva) 신전의 사제였다. 하지만 너무 출중한 미모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메두사의 미모에 한눈에 반해버린 포세이돈(Poseidon, 로마신화의 Neptunus)이 그녀를 신전에서 겁탈하고 만다. 자신을 기리는 신전의 여사제가 남신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한 여신 아테나는 포세이돈은 놔두고 메두사에게만 저주를 내린다. 누구든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하게 되고, 메두사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모두 뱀으로 바꾸는 저주를 내린 것이다.

아테나 여신은 저주 뒤에도 뒤끝이 작렬하는데, 페르세우스에게 메두사를 직접 보지 않아도 되도록 자신의 청동 방패를 빌려주기까지 한다. 그동안 포세이돈은 당연히(?) 손 놓고 있었다. 포세이돈이 모른 척하는데 젊은 여사제가 전쟁의 신, 아테나에게 상대가 될 리 없다.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1554 Benvenuto Cellini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은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자르자, 메두사가 흘린 피에서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소스'(Pegasos)와 황금 검의 전사 '크리사오르'(Chrysaor)가 태어난다. 이들은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인간 메두사의 자식들로 메두사가 죽임을 당할 때 임신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메두사는 억울하게 성폭행당하고, 포세이돈의 방관하에 자신이 모시던 신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악녀로 몰린 후,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페르세우스에게 임신 중에 목이 잘리는 비운의 여인이다. 게다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메두사의 '왼쪽'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로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하고 오른쪽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는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했다. 여기서 서양 문명의 "왼쪽"에 대한 두려움이 나온다. 동양과는 반대다.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는 로마의 유명했던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그의 '지팡이를 휘감은 뱀'의 이미지는 지금도 앰뷸런스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스로마 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Sumer) 문명 때부터 '성창'(聖娼 sacred prostitute)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여사제가 신전을 찾은 순례자와 성관계를 맺는 관습이다. 당시에는 성관계를 자주 해야 비가 내려 풍년에 이른다는 믿음이 있었고 신전에서의 성행위가 일종의 종교의식이었다.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Herodotus)는 "모든 여자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여신의 신전 앞뜰에 앉아 있다가 낯선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라고 기술했고, 이것은 여성의 신분고하와 관계없는 종교적 의무였다고 한다. 즉 당시에는 성(性)관계가 성(聖)스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기원후 8년에 쓰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메두사 이야기를 보면 (성폭행이긴 하지만) 아테나 신전의 여사제가 신전에서 성행위를 한 것에 대해 저주가 쏟아졌음을 알 수 있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확실히 금지된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절대 뒤돌아 보지 말라'


세계 여러 곳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공통의 금기(禁忌)가 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모티브로 동서양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먼저 성경의 창세기 19장 '소돔(Sodom)의 멸망과 롯(Lot)의 구원'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간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Lot)은 소돔(Sodom)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소돔과 이웃도시 고모라(Gomorrah)는 타락했다는 이유로 신은 두 도시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구원을 간청하자 신은 그곳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파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의인 열 명을 채우지 못하게 되자 신은 롯과 그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천사 둘을 보낸다. 하지만 마을에 2명의 이방인이 찾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돔 사람들은 두 손님을 집밖으로 내놓으라고 소동을 일으킨다. 롯(Lot)은 대신 자신의 "두 딸을 데려가서 좋을 대로 하라" 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들의 목적은 이방인 두 사람과 성관계(sexual relations)를 맺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시의 이름인 소돔(Sodom)이 동성애를 뜻하는 '소도미'(男色, sodomy)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다.


결국 천사들은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롯에게는 "도시를 떠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 한다. 롯의 가족이 떠나자마자 신은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파괴한다. 그런데 롯의 아내(Lot's Wife)는 도피하던 중에 호기심에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순간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다.


멸망하는 소돔의 모습 (John Martin, 1852)


사해 인근의 소금기둥으로 변했다는 '롯의 아내'(Lot's Wife) 바위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 이야기에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나온다.

리라(Lyre) 악기를 연주하는 최고의 음악가인 오르페우스는 요정(Nymph) 에우리디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산책 중 양치기가 추근대자 도망가다 독사에 물려 죽는다. 갑자기 아내를 잃어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특기인 리라 연주로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Hades)와 왕비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결국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다시 살려주기로 한다. 다만 "지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1820 Michel-Martin Drolling


지상에 거의 도착해 바깥세상이 보이자, 오르페우스는 기대감인지 불안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뒤를 돌아 에우리디케를 보고 만다. 하데스의 조건을 어긴 것이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그림자처럼 희미해지며 영원히 저승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그렇게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은 오르페우스는 깊은 슬픔에 잠겨 다른 여성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다른 여성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 '여성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트라키아의 처녀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


'Orpheus'. Hugues Jean Francois Paul Duqueylar 고뇌하는 오르페우스 (출처 : Wikimedia commons)


'뒤돌아 보지 말라'는 설화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장자(長者) 못 설화'다.

장자(長者)는 큰 부자를 뜻하는데 몹시 인색하고 마음씨가 나빴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장자의 집에 시주를 왔는데, 장자는 스님에게 쌀 대신 쇠똥을 퍼주며 모욕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음씨 착한 장자의 며느리는 몰래 스님에게 쌀을 시주하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스님이 떠나며 며느리에게 말하길 "지금 곧 나를 따라 피해야 한다. 피할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했다. 며느리는 스님의 말에 어린 자식을 업고 곧바로 집을 떠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땅이 꺼지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장자의 집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터져 나와 마을전체가 연못 속으로 빠지는 소리였다. 며느리는 큰 소리에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고 그 순간, 그녀는 등에 업은 아이와 함께 바위로 변해버린다. 이후 장자의 집은 물에 잠겨 '장자못'이 되었고, 며느리와 아이가 변한 바위는 '며느리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장자못 설화는 구전에 비해 기록이 빈약해 정확한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현재는 여러 지자체에서 '여기가 장자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후보지만 백 여 곳이 넘는다.




동서양 모두 왜 그렇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고 했던 것일까?

아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등 뒤의 세상과 완전한 분리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소돔을 찾은 천사가 롯의 가족에게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타락한 도시와의 완전한 결별을 하라는 뜻일 테고,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에게 '돌아보지 말라' 한 것도 죽음과 삶은 양립이 안 되는 것이니 저승과 이승을 완전히 분리하라는 주문일테다. 장자못의 스님 또한 며느리에게 '장자의 집과 당신을 완전히 분리해 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리 딱 부러지던가.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기도 하고 우리의 믿음과 신념도 늘 '욕망' 앞에서 흔들리곤 한다. 흔들리니 사람이고 흔들려서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감옥'과 '욕망'의 대가는 돌이킬 수 없이 가혹하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이다.

어떤 것이 금지되거나 제한될수록 관심과 욕망이 증가하는 현상을 "금단의 열매 효과"(Forbidden Fruit Effect)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자유나 선택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본능적으로 자유를 회복하려는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금지된 대상을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심리적 반발 이론, Reactance Theory, Brehm 1966)

금단의 열매 효과를 대중문화에서는 '칼리굴라 효과'(Caligula Effect)라 불렀다. 1979년 영화 <칼리굴라>는 워낙 수위가 높은 성과 폭력 장면을 연출해 "포르노인 듯 포르노 아닌 포르노 같은" 영화가 되었다. 펜트하우스 (Penthouse)의 창간인 Bob Guccione가 제작하고, 이탈리아 에로티시즘 감독 Tinto Brass가 연출했으니 '사극의 탈을 쓴 포르노'라는 평이 따라다녔다. 틴토 브라스는 마지막에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집단 난교나 많은 여자의 나체, 남근 장식물 등 성적 코드를 추가했다.


우리나라 개봉당시 <칼리귤라> 신문광고. 1991년 5월 18일 자 동아일보


당연히(?) 이 영화는 여러 나라에서 검열, 상영 금지, 편집을 당했다. 틴토 브라스의 성적 코드뿐 아니라 실제 포르노 배우를 등장시켜 연출한 하드코어 성행위 묘사와 극단적 폭력 장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금지와 검열' 때문에 사람들은 강한 호기심을 보였고,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되면서 대흥행을 하게 된다.


금지 목록에 오르면 없던 관심도 생기는 법이다. 심지어 소매치기조차 이런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소매치기의 핵심은 지갑이 어느 주머니에 들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전문 소매치기는 '소매치기 주의'라는 표지 근처에서 표적을 물색한다.
사람들이 표지 앞에서 자신의 지갑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때문.
심지어 소매치기들이 직접 '소매치기 주의'라는 표지를 붙이기도 한다.



금단(禁斷)의 나무, 금(金)값의 나무


먼 길을 돌아와 다시 공방에 앉는다.

혹시 금지되면서 가치가 높아진 나무들은 없을까? 아니면 목재가치가 높아 마구 벌목되면서 거래 금지된 나무는 없을까? 금단의 나무가 되어 금값이 된 나무들을 찾아본다.

국제적으로 벌목, 거래, 유통 등이 금지된 나무들을 보려면 CITES (사이테스,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를 보면 된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종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으로, 1973년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되었고 협약에 포함된 생물은 국제 거래 시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CITES에서는 Appendix I, II, III 으로 보호대상 종을 나누는데 III는 로컬기준이므로 제외하면 "Appendix I" 은 사실상 거래 금지를 의미한다. 멸종 위기라는 뜻이다. 모든 국제 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수출국과 수입국 양쪽 모두의 허가(permit)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 목재로는 원목뿐만 아니라 완성품까지 규제 대상으로 원칙적으로는 국경을 넘을 수 없다.

"Appendix II"는 위험에 처해 있지만 멸종 위기까지는 아니다. 다만 지금 규제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멸종 위기 종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국제 거래가 가능하지만 수출국의 허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수입국의 허가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2025년 2월 기준 CITES의 Wood Appendix I, II


CITES에서 목재 분야만 정리해 봤다.

'Appendix I'에 속해있는 '브라질리언 로즈우드'(Brazilian Rosewood)를 도시나무꾼 안톤은 실물로 본 적이 없다. 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나무는 아예 구할 수도 없거나 구하더라도 아주 비싸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Appendix I, II를 통틀어 거래 제한 리스트에 '콩과'(Fabaceae) 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faba'는 콩을 뜻하는 bean의 라틴어로 'Appendix I'의 브라질리언 로즈우드와 'Appendix II'의 모든 로즈우드(Rosewood), 지탄(Zitan), 부빙가(Bubinga), 파덕(Padauk) 등이 모두 콩과(Fabaceae) 나무다.


금지목록 단골손님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콩과에 속한 나무 중 상당수는 최고급 특수목으로 분류되고, 일반목재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비싸다. 금지되어 희소성이 생겨서라는 이유에 앞서, 워낙 튼튼하고 훌륭한 목재였기 때문에 마구 남획되었기 때문이다.



로즈우드(Rosewood), 넌 누구냐


목공을 하다 보면 '로즈우드'(Rosewood)라는 최고가의 목재를 접하게 되는데 처음엔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목재시장에서 비싼 값에 판매하기 위해 너도 나도 '로즈우드'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니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목공에서 가장 최고급 목재인 '진짜' 로즈우드는 콩과(Fabaceae)의 하위분류 중에 Dalbergia(달베르기아) 속의 나무들을 말한다.


콩과는 크게 아래에 Dalbergia, Acacia, Guibourtia, Pterocarpus, Albizia의 5가지 속(屬)으로 나뉘는데 그중 Dalbergia 속(屬)에 속한 나무가 진정한 로즈우드(true rosewood)며 모두 CITES Appendix II 이상의 규제를 받고 있다. 로즈우드는 보통 색과 무늬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애쉬(물푸레나무)의 5배, 월넛(호두나무)의 2배 정도 되는 비싼 가격이다.

로즈우드(Rosewood)를 우리말로는 '장미목'(薔薇木)이라 부르는데 색깔이 장미 같아서가 아니라 목재를 재단할 때 장미향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자단'(紫檀, 붉은 박달)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 때문에 목재시장의 혼선이 가중된다. Dalbergia 속(屬)에는 붉은색이 아닌 순수 블랙에 가까운 '흑단'(黑檀, 까만 박달)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목재시장에서 혼선을 부르는 다른 로즈우드들에 대해서는 금단의 날(하) 편에서 다룬다)



콩과 Dalbergia속의 "진정한 로즈우드"들을 표로 정리했다. 빨갛게 표시한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는 CITES Appendix I 등재로 완전한 거래제한 대상이고 나머지는 모두 Appendix II 로 거래제한 목재들이다. 그런데 수치들을 보면 무시무시하다. 비중이 1이 넘어 물에 가라앉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음핑고(Mpingo)라 불리는 아프리카 흑단은 1.27, 비올레타라 불리는 킹우드는 1.20이나 된다. 게다가 얀카지수(Janka Index)가 1,000을 넘으면 단단한 나무라해왔는데 2,000은 커녕 3,000을 넘기는 나무들까지 있다. 음핑고는 3,670 lbf나 되고 킹우드도 3,340이나 된다.


코코볼로(멕시칸 로즈우드)


이런 나무들은 서로 부딪혀보면 나무와 금속 중간 어디쯤의 소리가 나는데 진짜 나무가 맞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이 나무들에게는 늘 별명이 따라붙는데 이름하여 '아이언 우드'(Iron wood)다.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들을 모아놓은 듯 하다.


아프리카 흑단(음핑고)으로 만들어 본 안톤의 도장 (본명을 어쩔 수 없이 노출 ;;;;)


Dalbergia 속에 속한 장미목(Rosewood)중에서도 가장 비싼 최고급은 단연코 '브라질리언 로즈우드'(Brazilian Rosewood)다. 하지만 1992년에 'CITES Appendix I' 에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벌목과 유통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현재는 '인도 황단', '인도 장미목', "소노클링'이라 불리는 Indian Rosewood를 대신 상업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목재로써 로즈우드가 특히 각광받은 이유는 음향목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로즈우드의 울림이 소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는 "악기 목재의 성배(Holy Grail)"로까지 불릴 정도로 넓은 음역을 잘 소화하고 다른 음향목에 비해 음량과 음색이 월등하다고 한다. 주로 어쿠스틱 기타의 옆판, 뒤판과 일렉트릭 기타의 지판에 사용되었다.


브라질리언 로즈우드 (브라질 장미목, 브라질 자단)


현재 브라질리안 로즈우드로 만든 기타는 단순한 악기를 넘어 투자 자산이자 문화유산으로까지 취급된다. 엄청나게 비싸다는 말이다. 벌목, 거래, 유통이 금지된 '금단(禁斷)의 나무'이기 때문이다.



19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마틴(Martin) 기타 중에 D-45 모델이 있다. 이 모델은 기타의 뒤판과 옆판에 1936-1942년과 1968-69년 동안 브라질리안(Brazilian) 로즈우드를, 1969년 이후로는 인디언(Indian) 로즈우드를 사용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Martin D-45 모델(1936-42)은 10여 년 전에도 $250,000 - $400,000 (3억 5천만 원~5억 6천만 원)에 거래되었고,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를 사용한 마지막 해인 1969년 모델도 상태에 따라 대략 $50,000 - $150,000 (7천만 원~2억 1천만 원)의 높은 거래가를 유지하고 있다.


1970년부터는 브라질리언 로즈우드 대신 인디언 로즈우드(Indian Rosewood)를 사용했는데 가장 최근 D-45 모델이 $10,000 - $12,000 범위라 한다. 여전히 비싸지만, 완전 금지된 나무인 브라질리언 로즈우드 버전은 희소가치까지 더해져 가격차이가 아주 많이 난다.


브라질리언 로즈우드를 옆판과 뒤판에 붙인 통기타 (출처 : Unsplash의 Maxime Favier)




공방에 안톤이 보유하고 있는 "콩과" 나무가 무엇이 있나 찾아본다. 흔히 쉽게 구할 수 없는 나무들이라 없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얼마 전 도장을 만든 작은 조각의 '아프리카 흑단'(African Blackwood, 음핑고)을 제외하니 조금 전 오일을 바른 도마가 떠올랐다.

Appendix II 에 등재되어 있는 부빙가(Bubinga)로 이 녀석도 '아프리카 로즈우드'(African Rosewood)라고 불린다. 콩과의 Guibourtia (기부리아) 속(屬)의 나무로 '진정한 로즈우드'는 아니다. 하지만 부빙가 또한 최고급 수종으로 '목재계의 에르메스'라고까지 부른다. 아이언우드 수준으로 단단한 데다 무늬와 색이 훌륭하다. 나무자체에 유분이 있어 물에도 강하다.


오일을 바른 후 건조중인 부빙가(Bubinga) 도마로 다른 것을 만들기로 했다.


24T (두께 24mm) 부빙가 도마의 마지막 오일 작업이 끝났지만, 도시나무꾼 안톤은 이 도마를 사용해 보기도 전에 재활용하기로 한다. 이 나무 외에는 콩과 나무를 보유 중인 것이 없기도 하고, 도마로 삶을 마감하기엔 부빙가 목재가 아깝기도 해서 새로운 작업을 하기로 한다.


먼저 10T (두께 10mm)로 얇게 켜서 여러 판으로 재단했다. 무엇을 만들까?

이렇게 금지된 나무로 금지된 장난(?)을 시작해본다.




이후 작업은 다음 글 <금단의 날> 하편에서 또 다른 신화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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