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화장품이 있다
나무도 화장(化粧)을 한다.
목공의 마지막 단계가 화장인데 성공하면 화장(化粧)하고 실패하면 화장(火葬)된다.
목공의 대표적인 화장품이 '바니시'(varnish)다. 목재의 표면에 사용하는 투명한 도료를 말하는데 일본식 표현으로는 '니스'(ニス)다. 투명하지 않은 것은 스테인(stain)이라 하는데 목재에 색을 입히는 도료다. 바니시나 스테인이나 둘 다 곰팡이나 햇빛과 비바람으로부터 목재를 보호하고 미관상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바니시가 누드 메이크업(nude make-up)이라면 스테인은 색조 화장이 된다. 바니시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꾸안꾸'(꾸몄는데 안 꾸민 듯 자연스럽게 보이는 화장)다.
여성의 화장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듯, 나무의 화장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도시 나무꾼 안톤은 예전부터 색조 화장보다 누드 메이크업이 좋았다. '누드'라서 좋았다기보다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나무에 바르는 것도 스테인은 제쳐두고 바니시(varnish)만을 선택했다. 나무의 무늬와 색을 그대로 살려야 하니까...
바니시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 수성 바니시(Water-based varnish), 오일 바니시(oil varnish, 유성 바니시)와 스피릿 바니시(spirit varnish, 휘발성 바니시)다.
이 중에서 안톤은 수성 바니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물에 수지를 녹여 쓰는 친환경 바니시라지만 가장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만 냄새가 적게 나기 때문에 이미 집안에 있어 공방으로 옮기기 어려운 가구에 칠해주면 좋다. 그리고 스피릿(spirit=알코올) 바니시는 알코올에 수지를 녹여 만든 것으로 알코올이 빠르게 날아가면서 수지만 남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목재의 표면에 남은 수지가 코팅처럼 막을 형성해 준다. 알코올이 휘발되는 만큼 건조가 엄청 빠르다. 셸락(Shellac)이 대표적인데 바르는 동안에도 먼저 바른 부분의 건조가 끝나버릴 정도로 빠르다. 다만 알코올에 녹는 성질 때문에 술에 닿으면 지저분하게 흔적을 남길 수 있어 술상에 쓰기는 어렵다.
셸락은 공방을 방문한 손님에게 바로 선물로 줄 때 사용하곤 했다. 몇 분이 안돼 건조가 끝나기 때문에 손님이 공방을 떠날 때 목공 소품을 손에 쥐어주기에 좋다.
하지만 공방에서 여유롭게 작업을 마치고 출고(?)하는 안톤은 오일 바니시(Oil varnish)를 선호한다. 공간과 시간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천연 기름을 소재로 하는 오일 바니시를 추천한다. 친환경적이고 내구성도 좋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자연의 기름을 재료로 하는 오일 바니시는 서구 유럽, 중국과 한국, 일본이 제각각 다른 기름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의 전통 칠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부침과 소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보관과 아름다운 미관을 위해 사용했던 오일의 역사, 그 시작 언저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옛날 옛날 옛적 '고대 이집트'다.
이집트 왕조에서 가장 무명(無名)의 파라오가 죽은 지 3,500년이 지나, 1922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有名)한 파라오가 되었다. 신왕국 18 왕조(BC 14세기)의 파라오, 투탕카멘(Tutankhamun)의 이야기다.
10살에 파라오에 즉위해 18세에 죽었으니 업적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른 파라오들의 무덤은 대부분 도굴당한 상태에서, 투탕카멘 무덤은 도굴 없이 거의 온전히 발굴됨으로써 유명해졌다. 유명한 파라오의 황금마스크도 이때 발굴된 것이다.
투탕카멘은 이집트의 왕조에서 인류 최초의 일신교(一神敎)를 만든 파라오, 아크나톤(Akhnaton)과 왕비 네페르티티(Nefertiti)의 아들이다. 태양신 아톤(Aton, Aten)을 모시는 이 종교는 모든 생명의 근원을 태양 광선의 에너지로 봤고 이전의 다신교 신앙을 거부했다. 그렇게 파라오 아크나톤은 인류 최초의 일신교 신봉자가 된다. 하지만 일신교 아톤 신앙의 시기는 아크나톤(Akhnaton) 제위 시기뿐으로 매우 짧았다. 아크나톤이 죽자 그의 아들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등극하고 다시 다신교로 복귀한다. 그가 파라오로 등극한 나이가 10살이고 18살에 죽었으니 투탕카멘의 뜻이라기보다 반(反) 아크나톤 세력의 뜻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그 배경이 되는 시기다. 프로이트는 모세를 당시 아톤 신앙의 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크나톤이 실각하자 힘을 잃어가던 일신교 신앙의 모세(Moses)가 당시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과 결합했고 이후 모세가 유대인들과 이집트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탈출기(출애굽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모세는 유대인들에 의해 살해당했을 것이라고도 한다.
혹자는 유대인들이 '야훼'(YHWH)라는 이름을 직접 부르기를 꺼려, 대신 '나의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나의 주님'의 히브리어 '아도나이'(אֲדֹנָי ADONAI)가 태양신 아톤(Aton)과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엑소더스는 이집트에서 쫓겨난 유일신 아톤신앙이 유대지역으로 전파된 사건이란 것이다. 일단 믿거나 말거나지만 기독교의 신자라면 꽤나 충격적인 주장이다.
2013년 11월 영국 채널 4에서 투탕카멘에 대한 다큐멘터리 <Tutankhamun: The Mystery of the Burnt Mummy>를 방송했다. 투탕카멘의 사인(死因)에 대한 수많은 주장들이 있었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직접 사인이 ‘전차(chariot) 사고’였고, 이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소식을 전하는데 매장 후 석관 안에서 투탕카멘의 시신이 스스로 불에 탔음을 소개했다.
설마, 시신이 스스로 불에 탄다고?
투탕카멘의 사인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다. 도시 나무꾼 안톤에게 꽂힌 것은 한 번도 도굴된 적이 없는 파라오의 시신이 어떻게 스스로 불에 탔느냐 하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당시 이집트 박물관의 크리스 논튼(Chris Naunton) 박사와 포렌식 팀은 석관 속 시신의 '자연발화'(spontaneously combusting)를 주장했다.
3,500년이 지나 처음 개봉된 석관인데 투탕카멘의 시신을 감싸고 있는 천이 타 있었던 것이다. 1922년 투탕카멘의 묘를 발굴했던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고고학의 귀중한 발견'(treasure trove of archeological information)이라고 두루뭉술하게 쓰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박물관의 크리스 논튼 박사은 석관의 뚜껑이 올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속에서 스스로 불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가설은 미라에 방부처리 했던 오일이 발화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시신을 감쌌던 천과 발랐던 오일, 그리고 관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산소의 기가 막힌 조합으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때 투탕카멘의 관속 온도가 섭씨 204도 (화씨 400도)까지 이르렀을 것이라 한다. 말 그대로 투탕카멘의 시신은 불에 구워진 것이다.
투탕카멘의 몸을 감쌌던 천은 린넨(linen)이라 부르는 ‘아마포’였다. 아마(亞麻)로 만들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직물로 대마(大麻)로 만든 우리나라의 삼베와 비슷하다. 또 아마포 위로 방부처리를 위해 아마인유(亞麻仁油)를 발랐다. 아마의 씨를 '아마인'(亞麻仁)이라 한다. 그래서 아마씨유라고도 하고 린시드 오일(Linseed oil)이라고도 한다. 바로 여기서 확실한 단서가 나온다.
처음 목공을 할 때부터 공방의 단톡방에 공방장이 주기적으로 올리는 공지글이 있었다. 새로운 회원이 올 때마다 같은 공지글이 반복되었다.
린시드 오일로 칠하고 나면
칠했던 헝겊이나 천은
반드시 물로 씻어 잘 말리고 펴서 뒤처리 잘해달라
오일 바른 천을 방치하고 귀가한 회원이 있으면 공방장은 공방까지 돌아오게 했고 눈앞에서 뒤처리를 하게 했다. 나는 집에서 안 쓰는 수건을 가져와 잘라 사용하고 있었고 사용 후에는 반드시 공방에 있는 난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공방장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공지글을 주기적으로 올리고 무신경한 회원에게 까탈스러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린시드 오일을 잔뜩 머금은 천은 가만 놔두면 스스로 발화하기 때문이고 바로 공방 전체의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일 머금고 뭉쳐있는 천은 열을 천 내부에 가두고 온도를 점점 올린다. 뭉쳐져 있어 밖으로 발산되지 못한 열은 더욱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다시 천 내부의 온도를 급속히 높이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러다 발화점을 넘게 되면 불이 붙게 되는 원리다.
실제로 오일을 머금은 천을 공방밖에 뭉쳐 두고 기다려봤다. 여름에 햇빛을 받으면 발화가 빨라지고 추워지면 늦춰질 뿐, 오일 머금은 천의 자연발화는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린시드 오일을 바른 가구도 불붙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는데 린시드를 바른 목재는 자연발화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투탕카멘의 시신을 감싸고 있던 아마포, 그 천에 잔뜩 발라져 있던 아마인유(亞麻仁油) 즉 린시드 오일(Linseed oil) 그리고 관속의 틈을 파고 들어온 산소라는 3박자의 화학작용은 투탕카멘의 석관 속 화재를 일으키기엔 충분하다. 1922년에 하워드 카터가 풀지 못했던 미스터리가 이렇게 풀린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많은 종류의 기름 중에 파라오의 몸에 둘렀던 기름이 왜 하필,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아마씨유였던 것일까?
주방에 있는 올리브 오일이나 해바라기씨 기름은 목재 마감용으로 쓸 수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쓸 수 없다. 기름이라고 다 같은 기름이 아니기 때문.
아마씨유 같은 기름은 마르면서 공기 중의 산소를 끌어와 중합반응(重合反應)이라는 것을 일으키는데 이 작용으로 목재 안으로 스며들어서도, 목재표면에서도 도막을 만들어 내구성을 크게 높인다. 이렇게 기름 종류 중에 산소와 결합해 건조하고 굳으며 도막을 형성해 주는 기름을 건성유(乾性油, drying oil)라 한다. 이 건성유가 장기보관을 도와주고 목공용으로도 적합하다.
천연 오일은 크게 건성유(drying oil), 반건성유(semidrying oil), 불건성유(nondrying oil)로 나뉜다. 쉽게 말해 공기 중에 놓아두면 마르는 오일이 건성유, 반쯤 마르는 오일이 반건성유, 마르지 않는 오일이 불건성유다. 이러한 차이는 기름의 요오드값(Iodine value)의 차이에 의해 나타난다.
기름이 굳는 정도를 화학적으로 표현한 것을 요오드값(iodine value)이라고 하는데 130 이상을 건성유, 100 이하는 불건성유라 하고 그 사이 값이 반(半)건성유다.
올리브 오일은 요오드값이 75~94에 머물러 "마르지 않는 오일"인 불건성유로 목재마감용으로 부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해바라기씨 기름도 110~145로 올리브 오일보다는 낫지만 "반쯤 마르는 오일" 반건성유로 적합하지 않다.
목재용 오일은 바르고 나면 완전 건조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성유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대표적인 오일 바니시 상품도 건성유인 아마인유 즉, 린시드오일(Linseed oil)과 동유 즉, 텅오일(Tung oil)이다.
린시드 오일은 '끓였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상품명에 "boiled"가 붙어 있고, 텅오일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저렴해 구하기 쉽다. 안톤도 주로 'Boiled Linseed Oil'을 사용해 왔다.
텅 오일(Tung oil)은 중국 남부에 자생하는 '기름오동나무'인 유동(油桐)나무에서 짜낸 기름으로 동유(桐油)라고 한다. 이름이 ‘텅’이 된 이유는 중국명 '동'(桐)이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텅'(tung)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텅오일은 바르면 린시드 오일에 비해 내구성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텅오일은 린시드오일보다 비싸고 조금 더 구하기 어렵다.
린시드 앞에 붙은 "Boiled"란 단어는 뭐지?
요오드값이 높다고 해도 생기름(raw oil) 상태로 목재에 바르면, 린시드 오일과 텅오일도 건조에 수 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건조속도를 높이기 위해 끓이거나 납, 망간, 코발트등의 촉진제를 첨가해 제조한다. 린시드 오일과 텅 오일 모두 예전엔 끓이는 방법을 썼지만 이제는 첨가제를 추가하고 있다. 다만 린시드 오일의 상품명에는 여전히 "Boiled"가 붙어 있다.
빠른 건조가 필요한 이유는 오일이 마르지 않은 채로 오래 방치되면 주변의 먼지들이 들러붙어, 가구나 건축재가 그만큼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기름 상태로 바르지 않고, 끓이거나 화학적 방법으로 수 주나 수개월이 걸리는 건조를 수일 내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식물성 기름의 요오드 값 표를 보면 누구나 의아해할 만한 지점이 있다.
요오드 값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들기름'이다. 들기름은 들깨를 짜내 얻은 기름으로 임유(荏油)라 한다.
요오드값 1위, 들기름은 왜 목공용 오일이 없는 것일까?
서구유럽은 '아마'(亞麻)를 이용해서, 중국은 '유동(油桐)나무'를 이용해서 목조건축물이나 가구에 바르는 오일을 제각각 발전시켜 왔고 지금 목공 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보일드 린시드 오일'과 '텅 오일'로 양산되고 있다. 그런데 요오드값 1위로 건조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들기름은 우리나라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왜 '들기름 목공 오일'은 없는 것일까? 정말 없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랜 기간 들기름으로 만든 목공 오일을 추적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공방의 군기반장, 공방장이다. 이 '들기름 목공 오일'을 연구하느라 고려대학교 문화유산학 전공으로 최근엔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돌이켜보면 공방장은 최근 수년간 '목공 작업'은 등한시 한 채 '오일 연구'에 매달렸던 것 같다.
유리판 위에 기름을 떨어뜨려 놓고 자연상태에서 건조과정을 지켜보고, 나무토막의 길이를 1년간 주기적으로 측정하고, 이상한 돌을 빻아 가루로 만들더니, 민어부레를 한 바구니 가져와 끓여 천연 접착제 '어교'(魚膠)를 만드는 등 이상행동(?)들이 있었다. 안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공방장이 이젠 목공엔 관심이 없어졌나? 이러다 공방 문 닫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엔 한 술 더 떠 국가유산수리기능자 '칠공'의 자격까지 땄다.
공방장은 KBS의 <역사스페셜>, <일요스페셜> 등을 연출하던 역사프로그램 전문 PD였고 몇 년 전 정년을 마치고 퇴직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 의궤'를 다루다 조선의 전통 칠이 일제강점기 동안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린시드오일과 텅오일의 기능을 하는 들기름 목공오일 '명유'(明油, 밝은 기름)라는게 있었다. 그러다 1895년부터 서서히 사라졌고 일제강점기 동안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현재 목조문화재에는 아예 오일을 바르지 않거나 엉뚱한 오일을 바르고 있다고 질타한다.
1895년에 서양에서 들어온 명유라는 이름의 양명유(洋明油)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명성황후국장시에 양명유를 처음 사용하게 되는데, 안톤도 어릴 적 써봤던 다름 아닌 '니스'(ニス)다. 이때부터 양명유라 불리는 니스가 우리의 전통 칠, 명유(明油)를 대체했던 것이다.
니스는 빠르게 반짝반짝 빛나는 목재 마감재로, 서구문명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고급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니스'의 가격은 옻칠보다 3.7배 높았다. 현재는 옻칠이 니스의 10배 이상의 가격인 것을 보면 당시엔 서양에서 들어온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고평가 풍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니스'(ニス)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굳고 나면 표면강도가 너무 강해, 수축과 팽창을 계속하는 목재와 시간이 갈수록 유격이 생기고 분리되어 들떠 일어난다. 니스를 칠했던 가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이 플라스틱 조각처럼 일어나는 것은 심심찮게 겪는 일이다.
기억을 돌려보면 안톤이 공방에 발들이기 전부터 공방장은 이미 '사라진 조선의 오일'을 찾고 있었다. 나에겐 '목공에서 관심이 멀어진 이상행동(?)'처럼 보였지만 공방장은 꾸준히 끓이고 삶고 갈아내고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문헌들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고 명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낸다. 태조 7년(1398) 4월에 경복궁의 칠을 다시 하라는 왕명이 떨어지자 명유(明油)를 사용했다는 기록이다.
궁궐을 고쳐 칠하기를 명해서 명유(明油) 400말을 사용했다
命改漆宮闕, 用明油四百斗
이때의 1말은 현재 1말의 1/3 정도로 6리터에 해당한다. 당시 경복궁을 다시 칠하는데 약 2,400리터가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명유를 만들고 바르는 사람은 '명유장'(明油匠)이라 했고 <경국대전>에서는 '유칠장'(油漆匠)으로 명칭이 바뀐다. 태조 이후에도 명유(明油)는 꽤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명유(明油)는 무엇으로 만드는 기름일까? 당시에는 우리의 명유를 중국의 동유(桐油)라 부르기도 해 혼선이 있었고 현재 일각에서는 이것을 동백(冬柏, 桐柏)기름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이런 언급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동유(桐油)가 없다.
모든 칠물에는 들기름을 사용한다.
(一切漆物多用荏油)
법제해 끓인 것을 세속에서는 동유(桐油)라 부르고 있다.
효능과 사용이 흡사해 이름을 덮어씌운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계에서는 동유(桐油)를 동백(桐柏)기름으로 오해하고 동백기름을 끓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앞서 본 표에서 보듯 동백유는 '마르지 않는' 불건성유로 목재오일로 부적합하다. 어쩌면 지금 엉뚱한 오일을 바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또 끓이지 않은 생(生) 들기름을 목재에 바르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요오드값이 높아도 생기름 상태로 바르면 린시드 오일이나 텅 오일조차도 건조하는데 수 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요오드값이 높다는 들기름 또한 생(raw)으로 바르면 건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문헌들을 종합해 보면 명유(明油)는 들기름인 임유(荏油)를 끓여 만든 기름임을 추정할 수 있다.
명유의 제조기록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데 조선 후기 유학자 이승희가 쓴 <한계유고>(韓溪遺稿)의 기록은 이렇다.
목기는 들기름에 무명석과 백반을 고르게 섞고 끓이다 짙어지면 바른다.
윤기가 나는데 나무 그릇에 여러 번 바르면 옻칠 빛깔을 능가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방장은 조선의 잃어버린 칠, 명유(明油)를 직접 재현 제조하기로 한다.
조선의 문헌을 아무리 뒤져봐도 딱 떨어지는 정확한 제조 비율은 나와있지 않았지만, <조선왕조의궤>에 명유를 제조하는 재료는 정확히 기록으로 남아있다. 공방장은 그 재료들로 현재 판매되고 있는 린시드 오일이나 텅오일의 성능에 못지않는 조합 배율을 찾아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지 100여 년 만에 고양의 어느 언덕아래 공방에서 나무의 '국산' 누드 메이크업 화장품이 다시 나타났다.
결국 5년여 테스트 기간을 거쳐 공방장 스스로 마음에 드는 명유(明油)가 만들어졌다. 자연발화도 섭씨 29도의 기온에서 20분 만에 불이 붙었고, 건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 이틀 정도로 시판 중인 린시드 오일보다 빠른 것까지 확인했다. 공방장의 놀랄만한 집요함이 빛을 발했다.
이젠 공방장이 만든 명유(明油)를 가구에 바른다. 북미산 월넛(Walnut)으로 만든 테이블에 5일간 3회에 걸쳐 발랐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다. 나무의 무늬와 색을 잘 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공방장과 나는 같은 방송사의 프로듀서인데, 공방장의 아내인 형수님과 나의 아내도 각각 심리상담센터를 열었다. 두 커플 모두 PD와 상담심리사 커플인 셈이다. 형수님과 '참 신기한 일'이라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명유를 바른 월넛 테이블은 그 형수님의 심리상담센터에 지금도 설치되어 있다.
세상에 명유가 다시 나온 후에 도시 나무꾼 안톤도 명유를 얻어 바르기 시작했다. 당분간은 공방장의 명유를 계속 바르게 될 것 같다. 린시드 오일보다 건조가 빠르고 도막의 느낌도 좋기 때문이다.
하루는 공방장에게 '명유'(明油)라는 이름을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했다.
문헌에 '명유'(明油)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 처음 듣는 사람은 '명(明)나라 오일'인 줄 알 수 있고, 혹시라도 대중화한다면 '명유'와 다른 이름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의 질문에 공방장은 대답 없이 웃는다. 사실 이번에 공방장이 만든 '명유'를 상품화한다면, 이미 판매 중인 '보일드 린시드 오일', '텅 오일'과 결국은 가격경쟁에 놓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오일을 되살려, 경쟁력을 갖춘 목공용 오일 상품으로 복원해 내는 것은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더구나 한국의 사찰이나 목조 문화재에 바르는 칠이 아직도 혼선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잃어버린 전통 칠'의 복원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의 전통 목조 문화재에 서양의 린시드 오일이나 중국의 텅 오일을 바르기도 어려울뿐더러, 동유(桐油)를 혼동해 동백(冬柏, 桐柏)기름을 바르는 지금의 현실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전통 문화재의 오랜 보존과 현재 목공 오일로서의 개발을 위해, 사라진 전통 칠, 명유(明油)에 대한 연구는 계속 필요할 것 같다.
명유의 새로운 이름을 "Boiled Perilla Oil"(보일드 페릴라油)로 나 혼자 수줍게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