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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한 자리에 모인 날

마을 나무(Village Tree) 이야기

by 도시 나무꾼 안톤

영국의 스윈던(Swindon)에 모드 보웬(Maude Bowen)이라는 젊고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다.

엄마 마가렛, 삼촌 고프리와 함께 살면서 인근 도시 첼트넘(Cheltenham)에 양털을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모드의 아름다운 미모는 허름한 옷과 양털 바구니에 가려지지 않을 만큼 어디서든 눈에 정도였다.


모드의 가족 (by ChatGPT)


그러던 어느 날, 양털을 시장에 팔고 돌아오던 모드가 실종되었다. 돌아올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고 밤이 깊어지자 걱정에 휩싸인 엄마 마가렛이 마을 사람들과 수색에 나섰다. 밤새 온 마을 사람들이 모드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첼트넘 인근 Wyman’s Brook라는 시냇가에 딸이 얼굴을 묻고 나체로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멀지 않은 곳에 모드의 삼촌, 고프리까지 죽어 있었다... 고프리의 손엔 모드의 옷이 꽉 쥐여 있었고 가슴에는 한 발의 화살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옷이 벗겨져 물에 머리를 박은 채 죽은 모드, 그녀의 옷을 쥐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죽은 삼촌인 고프리

마을 사람들은 웅성웅성했고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스윈던의 영주는 한걸음에 달려와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빠르게 판결을 내렸다.


삼촌 고프리가 조카인 모드(Maude)를 강간했고
수치심을 느낀 모드는 시냇가에 머리를 박아 자살했으며
삼촌 고프리는 신이 죽였다


석연치 않은 판결이었다.

수치심을 느낀다 해도 나체인 상태로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낮았고 더 이상한 것은 고프리를 신이 죽였다는데 삼촌의 가슴에 박힌 화살은 무엇인가? 신이 화살을 쏘았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전보다 더 웅성웅성했지만 누구도 영주의 판결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판결 이후 빠르게 장례절차에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에는 자살한 사람은 죄인이므로 교회나 영지에 묻힐 수 없었다.

결국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드의 가슴에는 살아있는 나뭇가지가 박혔고 관통한 나뭇가지는 땅속에 고정해 묻혔다. 반면 조카를 강간했다는 삼촌 고프리는 자살을 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기독교식으로 장례가 잘 치러졌다.

자살은 중죄로 다스려졌다. 죄의 대가로, 모드가 살던 집은 영주에게 몰수당하고 모드의 엄마 마가렛은 길바닥에 나앉게 된다. 가족의 비극도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생계까지 막막해진 마가렛은 딸이 묻힌 곳의 나뭇가지에서 매일 목놓아 울었다.

그런데 엄마의 눈물 때문이었을까? 모드의 가슴을 관통해 꽂혔던 나뭇가지가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느릅나무였다.


마가렛이 거지꼴로 계속 울자, 마을 분위기를 망친다는 이유로 영주가 그 자리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했다. 가족을 모두 잃은 늙은 여인, 마가렛이 명령을 따를 리 없다. 결국 영주는 부하에게 끌어내라 지시했고 부하가 마가렛에게 다가가자 숲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부하는 화살을 맞아 즉사했고 현장은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영주는 몸을 낮춰 의자밑으로 숨었고, 군인들은 화살의 출처를 수색하러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공포에 빠져 도망가거나 주저앉거나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나 숲 속을 아무리 뒤져도 화살의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정말 신이 화살을 쏘는 것일까?

주변이 잠잠해지고 다시 마가렛의 울음소리만 남게 되자 웅크리고 있던 영주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마녀 마가렛을 체포하라
마녀행위를 한 여기서 화형에 처한다


며칠 후 불쌍한 마가렛의 화형식 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의 마가렛은 느릅나무에 묶였다. "딸의 가슴에 박혔던 나무에 묶여 엄마는 불에 타 죽게 되다니..." 사람들은 마가렛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같이 마녀로 몰릴까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초점 잃은 늙은 여인 마가렛의 시선은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도록 흩어졌다.


이윽고 영주가 직접 불을 들고 나타났다.

마가렛의 발아래 쌓인 장작에 서둘러 불을 붙이려는 순간, 또 숲 속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화살은 영주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고 들고 있던 불은 마가렛의 발아래 장작으로 떨어졌다. 순간 마치 폭탄이 터지듯 커다란 화염이 일었다. 뜨거운 열기에 사람들이 고개를 피하는 사이 영주와 마가렛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타버리고 말았다.

이상한 것은 그 거대한 불길에도 느릅나무는 조금도 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드의 오두막은 버려져 집이라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세월의 풍상을 모두 얼굴에 품은 어떤 노인이 모드의 오두막으로 이사 오는 것이 아닌가. 마을주민들이 한동안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았지만 이 노인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낮에는 느릅나무 아래서, 밤에는 오두막에서 빈둥대는 것이었다. 몇 개월이 흘러 타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풀릴 즈음 마을 주민 몇 명이 음식을 들고 오두막을 방문했고, 그제야 노인은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월터(Walter)야.
나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어.
50년을 도망치듯 떠돌다 이제야 돌아왔다네.
그 옛날에 모드와 나는 사랑하는 사이였어.
결혼까지 약속했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 사람들도 마을 한가운데 서있는 느릅나무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귀를 쫑긋 세웠고 노인은 충격적인 말을 계속 이었다.

모드의 늙은 엄마가 죽고 나면 오두막이 딸에게 상속될 거라는 사실에 삼촌인 고프리가 조카인 모드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이야기. 당시 영주도 모드의 미모에 반해 하녀로 들이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가 월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고프리와 영주는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었어.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 공모를 해.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두 사람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상태였고...
.
.
.
내가 고프리를 활로 쏴 죽였어.
그러자 영주는 바로 산으로 도망갔고...


그때 모드는 다리밑으로 떨어져 익사하고 말았고 월터는 두려워서 그때부터 숨어 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마가렛의 화형식에서 영주까지 화살로 쏴 죽이고 나서야 완전히 마을을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반세기를 온 세상을 떠돌며 살다가 이제야 마을로 돌아왔다고 했다.




위 이야기는 영국의 전설로 John Goding<Norman’s History of Cheltenham> (1863)에 소개된 글에 도시나무꾼 안톤이 각색을 덧붙인 것이다. 이야기 속 '모드의 느릅나무'는 실물로 존재했다. 1907년 번개를 맞아 베어낼 때까지 서 있었다고 한다.


1907년까지는 있었다는 모드의 느릅나무(Maude's Elm) 사진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전승되는 설화일 수 있다. 그리고 거대한 느릅나무에 뒤늦게 이야기를 붙인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모드의 느릅나무(Maude's Elm)는 수백 년간 자라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고, 긴 시간 동안 권력자에게 부당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상징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느릅나무(Elm)는 유럽인들의 생활과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인들은 어려서 느릅나무 아래서 놀고, 젊어서 느릅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하고, 늙어서는 느릅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쉬다가, 죽어서는 느릅나무 관속에서 잠들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느릅나무가 같이 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마을 사람들은 느릅나무 아래서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총회(?)를 열기도 하고 모드의 경우처럼 화형식을 열기도, 재판을 열기도 하고 잔치를 열기도 했다. 마을 전체 행사의 중심이기도 했다.



마을 나무(Village tree)


유럽에서는 느릅나무가 민중의 나무라할 만하다. 영어로는 느릅나무를 Elm이라고 부르는데 영국에서는 "Under the Elm"(느릅나무 아래)이란 말로, 프랑스에서는 "Ormeau de l’église" (교회의 느릅나무)라는 말로 민중 회합의 장소를 상징했다. 마치 서울의 8~90년대 종로의 종로서적, 교보문고, 강남의 뉴욕제과, 대학의 시계탑 아래와 같은 곳이 떠오른다.


양화한강공원의 느릅나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느릅나무가 왠지 익숙지 않다. 나무에 관심이 많거나 목공을 하지 않으면 느릅나무는 자주 듣는 이름이 아니다. 안톤도 목공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주로 계곡이나 강 근처에 흔하게 자라고 있지만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대신 느릅나무과(Ulmaceae)에 속하는 다른 이름의 나무가 더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영어로 Elm-like tree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느릅나무와 유사하다. 실제로 느릅나무는 아시아권보다는 서구 유럽에서 훨씬 중요한 나무다. 유럽 쪽의 느릅나무가 더 크고 수형이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아시아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라는 충분한 대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느릅나무, 한국의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모두 마을을 상징하는 마을 나무(Village tree)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마을 나무의 위치에는 차이점을 보인다. 유럽은 주로 마을 나무가 마을의 중심(교회나 성당 앞)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마을의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중심과 마을 입구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마을의 중심은 공동체의 내부 결속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시선이 공동체 내부를 향해 있는 것이고 마을의 입구는 외부의 액운을 막는 수호목의 개념이 앞선 것으로 시선이 외부를 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속과 보호는 사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제각각의 상징으로 나무가 있었음이 재미있다.


목재로써의 느릅나무는 단단한 나무와 무른 나무가 섞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산 느릅나무는 단단한 나무가 많고 유럽산 느릅나무는 무른 편이다. 우리나라의 느릅나무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영어명이 아쉽게도 Japanese Elm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등재된 나무가 워낙 많아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이름에 Japan이 들어간 경우가 많은 편이다.



표를 보면 얀카지수(Janka index)가 1,000을 넘기는 단단한 느릅나무와 1,000 이하인 무른 나무가 섞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느릅나무, 느티나무, 팽나무는 그 중간쯤의 강도를 보인다.

공해에 강한 편이고 생명력도 좋은 느릅나무는 '방수성이 특히 좋아' 물과 만나는 부분에 많이 사용했다. 선박의 척추를 담당하는 용골, 증기선 물갈퀴와 물레방아, 다리의 물에 잠기는 공사용 목재, 급수파이프 등으로 사용했고 심지어 축축한 땅속에서 시신을 감싸는 관을 만드는 데까지 사용했다.




영국의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 건설에도 느릅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17년 워털루 전투(1815) 승리를 기념해 런던 템스 강에 만든 다리로, 물속 기초공사에 느릅나무 말뚝(elm piles)을 사용했다. 이후 120년간 사용되다가 철거되었고 1945년에 오늘날의 콘크리트 다리가 되었다.


출처 : 왕실 미술 컬렉션(The Royal Collection Trust)


그런데 철거하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120년 전에 박아놓았던 느릅나무 말뚝이 썩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목재는 공기 중 보다 물속에 있으면 부패가 오히려 늦춰지긴 하지만 느릅나무의 방수성은 여지없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1720~1800년 정도에 전성기를 이루고 지금도 사랑받는 영국의 윈저 체어(Windsor chair)에서도 느릅나무는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윈저 체어는 브랜드명이 아니라 엉덩이가 닿는 좌판을 중심으로 상판과 다리 부분을 따로 각각 끼워 넣어 연결되는 방식을 말한다)

윈저 체어의 다른 부분은 수종이 바뀌어도 엉덩이가 닿는 좌판은 반드시 느릅나무여야 한다. 느릅나무의 결이 교차(interlocked grain)되어 있기 때문이다. 느릅나무는 목섬유가 나선형(spiral)으로 약간 비틀리면서 자라는데, 해마다 비틀리는 방향이 좌→우→좌→우처럼 주기적으로 바뀐다. 그래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비틀린 섬유 띠가 켜켜이 겹쳐 있는 구조가 된다. 이로 인해 "잘 쪼개지지 않으면서 질긴" 목재를 만들어준다. 목재는 부드러운 편으로 엉덩이 모양으로 깎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양한 형태와 무게의 엉덩이를 질기게 버틴다.

영국 느릅나무(English Elm)가 얀카지수(Janka Index)가 810 정도로 소프트한 나무에 속하지만 교차 결(interlocked grain)의 특성 때문에 부드럽고 질긴 좌판이 되는 이유다.

당시엔 산에서 벌목해 의자의 좌판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만드는 목수는 Bodger로 부르고, 좌판을 만드는 목공장인은 Bottomer라 따로 불렀다. Bottomer는 Bodger보다 대우가 훨씬 좋았다.


윈저체어(Windsor chair)의 전형적 형태. 출처 Pinterest



팬데믹에 희생된 느릅나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느릅나무는 엄청난 위기를 맞는다. 유럽과 북미의 느릅나무를 초토화시킨 팬데믹이 발생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만 10년간 2,500만 그루의 느릅나무가 고사할 정도였다. 유럽에서는 풍경의 상실(loss of landscape)이란 말로 표현될 만큼 느릅나무가 사라졌다.

곰팡이가 나무의 수관조직을 막아 물이 올라가지 못해 나무의 꼭대기부터 시들어가다가 말라죽는 네덜란드 느릅나무병(Dutch Elm Disease)이다. 느릅나무 딱정벌레 (elm bark beetles)가 껍질에 알을 낳기 위해 파고들면서 퍼진다. 질병의 이름에 네덜란드가 붙은 것은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학자가 네덜란드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네덜란드에겐 억울한 이름이 돼버렸다.


느릅나무가 대형 전염병에 취약한 이유는 흡지(吸枝) 번식(Root Sucker)을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느릅나무는 한 모체의 뿌리에서 싹이 지상으로 올라와, 겉으로 보기엔 분리된 개체지만 땅속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성장한다. 그래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느릅나무 군은 하나의 모체에 뿌리로 연결된 ‘느릅 형제들’ 일 수 있다. 사실상 같은 개체다. 이러한 흡지번식 방식으로 생명력을 높여왔지만 동일한 DNA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염병에는 매우 취약해지므로 한 그루가 병에 걸리면 숲 전체가 괴사 할 수 있다.


흡지번식(Root Sucker) 개념도. (by ideogram)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은 20세기 세계 숲과 도시경관을 바꿔놓은 가장 치명적 변화였다. 마을은 마을의 얼굴을 잃었고, 길은 가로수를 잃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름이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인데 현재 유럽의 가장 대표적인 엘름 시티(Elm City)는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이다. 도시의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이 느릅나무들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네덜란드는 지금도 7만 그루의 느릅나무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고 매년 4월 말 씨앗이 솜털 같이 날리는 풍경이 마치 봄에 내리는 눈 같다 하여 "Springsnow Festival"라는 축제를 열고 있다. 마치 우리의 벚꽃축제처럼...



한국의 마을 나무, 느티나무와 팽나무


유럽의 마을 나무(Village tree)가 느릅나무였다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마을 나무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다. 마을의 상징수로, 수호목으로, 당산목으로 역할을 했고 쉼터이기도, 생계작업의 공간이기도,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와 같은 과(family)에 속하지만 팽나무는 다르다. 한때 팽나무도 같은 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삼과(Cannabaceae)로 분류한다. 삼과에 속하는 다른 식물은 대마초, 맥주를 만드는 홉 등이 있다.

이 같은 혼선이 있는 이유는 느릅-느티-팽이 생김새가 모두 비슷했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현재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같은 느릅나무과로 나오기도 하고, 별도의 팽나무과로 나오기도 한다.


팽나무가 최근 유명해진 것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창원 북부리 언덕의 500살 팽나무 덕분이다. (드라마에서는 개발 때문에 베어질 위기에 처한 소덕동 팽나무로 나왔다)

팽나무는 작은 열매가 열리는데 둥글고 단단한 모양이 작은 구슬이나 ‘비비탄’을 닮았다. 껍질을 벗겨내 단단한 동그란 씨앗을 총알 삼아 총놀이를 했고 날아가는 소리에서 이름을 따 '팽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역에 따라 '팽이목', '팽목', '팽이목나무'라고 하는데 세월호의 비극으로 널리 알려졌던 팽목항의 팽목(彭木)이 팽나무를 뜻한다. (지금은 진도항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팽나무는 주로 해안가의 마을 나무라 할 수 있다. 남부지방의 어촌에는 으레 팽나무가 있었고 어부들은 포구 주변의 커다란 팽나무에 배를 묶었다. 그래서 팽나무를 '포구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포구나무를 제주말로는 '폭낭'이라하는데 제주 출신 후배에게 물어보니 폭낭을 버스 정류장으로도 쓰고 만남의 광장처럼 이용했다고 한다. 손님을 마중 갈 때도 폭낭에서 기다리고... 후배는 어릴 적 '알폭낭통'으로 할머니 심부름을 자주 갔다고 한다. '알'은 아래, '폭낭'은 팽나무, '통'은 마을을 뜻한다. '팽나무 아래 마을'로 심부름을 다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제주에는 팽나무를 보살피는 '종수감'(種樹監)이라는 관리까지 두었다고 하니 팽나무는 제주인의 삶에 자리잡고 있었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충남 서산 간월암의 160살 팽나무


또 다른 마을 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수라 할 만한 나무다. 여기저기서 우리나라 3대 나무를 꼽으면 늘 들어가는 나무다. 3대 기타리스트, 3대 운하 등 유독 "3대"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말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3대 정자나무로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우리나라 3대 고목으로 느티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우리나라 3대 가구용재로 느티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어떻게 해도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3대 나무"에 속한다.


500년 가까이 오래 살고, 20~35m까지 높고 넓게 자라 큰 그림자를 드리워주고, 목재로도 적당히 단단하고 오래 버텨 "모든 것이 적당한" 느티나무는 내륙의 마을 나무라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산림청에서는 21세기 새 천년을 상징하는 '밀레니엄(millennium) 나무'로 느티나무를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이슈로 마을 앞으로 도로가 나면 주로 정자나무가 있는 위치를 지나가게 되는데 느티나무는 보상금을 두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베어야 한다는 찬성 측과 마을의 보호수를 어떻게 벨 수 있냐는 반대 측으로 마을 사람들이 두 동강으로 나뉘어 왔던 역사가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느티나무. 이젠 아파트의 정원수로 자주 볼 수 있다. (서울 목동 아파트단지)


느티나무에도 영국 모드의 느릅나무 이야기처럼 "나무를 땅에 꽂으니 그것이 자라 큰 나무가 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온다. 고려시대 국자감의 부학장을 지낸 최자(崔滋, 1188-1260)의 '보한집'(補閑集 한가로운 때를 메우기 위해 쓴 글 모음)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늘날 전북 임실군 오수(獒樹) 면의 충직한 개가 나오는데 50대 이상이라면 어릴 적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옛날 오수고을에 개를 끔찍이 사랑하는 노인이 있었다. 어느 봄날 장터에 다녀오던 길에 술이 취하여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산불이 나서 노인이 있는 곳까지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개는 웅덩이를 찾아 몸에 물을 묻혀 불길에 뒹굴기를 거듭했다. 결국 불을 끄고 주인은 살렸지만 개는 죽고 말았다.

잠이 깬 노인은 큰 슬픔에 빠져 개를 묻고 무덤에 지팡이를 꽂아 주었다. 그 뒤 지팡이에서 싹이 터 나무로 자라났고 사람들은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자를 붙여 그 나무를 오수(獒樹), 즉 '개나무'라 부르고, 마을이름도 오수(獒樹)라 했다.


여기서 개나무가 바로 현재 오수면에서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라는 이야기가 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다. "막대기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큰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뜻과 정성이 신령하게 혹은 신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경에서도 선택받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돋고 열매가 맺혔으며 (민수기 17장) 도교에서도 신선의 지팡이는 버드나무, 오동나무로 자라나곤 한다.



만능 목재, 느티나무


팽나무는 목재로써 찾아보기 어렵지만 느티나무에 비하면 무른(약한) 나무다. Dutch Elm이나 English Elm 같은 유럽산 느릅나무 수준이다. 반면 느티나무는 목재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가구재, 도마재, 건축재 등 거의 모든 용도로 가능하다. 터무니없이 비싸지도 않고 적당히 단단한 '만능 목재'라 할 수 있다.


느티나무 목재. 모든 것이 충분한 우리나라의 목재다.


느릅나무 목재는 교차된 결(interlocked grain)로 인해 질긴 특성이 있어 잘 쪼개지지 않고 물에 강하다. 단단함 보다 부드러운 특징이 있어 의자의 좌판으로 최고로 친다. 다만 장식적인 무늬와 색은 느티나무에 밀린다.

팽나무 목재도 무늬가 뚜렷하지 않아 장식적인 가치가 떨어지고 건조 시 갈라지고 뒤틀리는 특성이 있어 내구성 면에서 느티나무에 또한 밀린다.

반면에 느티나무는 나무의 결이 곱고 힘차다. 무난한 단단함을 갖고 있고 뒤틀림이 적으면서도 잘 썩지 않아 내구성 또한 높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 가구의 최고급 재료로 인정된다.

도시나무꾼 안톤은 느티나무를 "충분히 단단하고, 충분히 무늬도 좋고, 충분히 잘 버텨주는" 모든 것이 충분한 목재라고 생각한다. 과목별로 최우수는 아니지만 전 과목이 모두 우수해 평균점수로 1등 하는 것처럼...


목공 동지이자 회사선배인 김명남 작가가 만든 반닫이를 소개한다.

반닫이는 앞면의 반만 여닫도록 만든 수납용 전통 가구로 조선시대 신분 계층의 구분 없이 널리 사용되었고 결혼할 때 신부 측에서 장만해야 했던 필수 혼수용품이다.

전통가구를 주로 연구하고 만들고 있는 김명남 작가는 이 반닫이를 만들면서 느티나무를 메인재료로, 제작에만 3개월이 걸렸다. 반닫이는 지역별로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것은 장식이 간결한 나주지방 방식의 반닫이다. 앞면의 위, 아래의 느티나무의 결이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 눈에 띄고, 목재를 결구하면서 밑이 좁고 끝이 넓은 사다리꼴의 주먹장을 택했다. 나무의 결이 선명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힘차다. 평균점수 1등의 우등 목재로 만든 만큼 든든한 믿음이 생긴다.






마을 나무(Village tree)는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총회의 장소이기도 하고, 공동작업이 있을 때는 생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마을 나무는 대개 뾰족하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둥그렇게 크게 품어주는, 사방으로 넓게 자라는 나무들이다.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품어 둥그렇게 살아갔던 것처럼... 삶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젠 도시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 나무"라는 개념이 많이 희미해졌다. 대신 여러 나무를 조경수로 심는다. 하지만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크고 둥그런 나무들은 가지들이 무참히 잘려나가고 화단 안에 멀찍이 떨어져 있거나 그나마도 "출입금지" 팻말이 붙는다. 뾰족한 나무들이 많아졌고 내 마음도 덩달아 뾰족해진다.


놀이터에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면 '아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노는 아파트'라는 인식이 생겨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이러한 현실에서 아파트의 입구에 혹은 단지의 중심에 커다란 마을 나무(Village tree)를 심고 나무 아래 쉼터도 만들자고 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말이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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