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장성세와 곡학아세의 사이에서
계절이 바뀌고 있다.
누구는 덥다 하고, 누구는 춥다 하는 시기다. 한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40도를 웃도는 공방에 가을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하면 공방 회원의 출입도 잦아진다. 오랜만에 회원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면 옷차림이 제각각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사람은 민 소매에 반바지, 또 어떤 사람은 긴팔, 긴 바지에 바람막이까지 준비한다. 같은 온도, 같은 장소인데도 서로 다른 계절의 복장이다.
오랜만에 붐비면 나는 작업을 멈추고 공방 입구의 의자에 앉는다. 등 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기계음과 계절을 바꾸는 바람을 피부로 느껴본다. 고개를 들어 보면 늦여름의 하늘이 꽤나 멋있다. 아직 남아 있는 수증기가 커다란 뭉게구름을 띄어놓고 있고 배경이 되는 파란 하늘엔 가을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화가들이 참 좋아하는 하늘이겠거니 싶다.
공방밖으로는 수확을 앞둔 꽤나 큰 텃밭이 있고 그 텃밭 너머 멀찍이 은사시나무가 잎을 과장되게 흔든다. 나뭇잎의 푸르른 앞면과 밝은 회색의 뒷면을 번갈아 뒤집는 춤을 보며 멍 때리 듯 한참을 쳐다본다.
보고 듣고 먹는 것이 모두 같아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제각각 다르구나
인풋(input)이 같은데 다른 아웃풋(output)이 나오는 것은 기계의 세상에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의 세상에서는 작업 중인 공방 회원들의 복장이 제각각이듯 같은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 베푼 친절은 간섭이 되고, 솔직함은 질투로 돌아오고, 편안함은 나이브함으로 바뀌곤 한다. 기계 세상 같은 정답이 없다. 그래서 종종 사람의 세상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정답이 없는 '사람의 세상'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목공 같은 정답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설령 '사람의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 목공을 한다 해도 공방에서도 회원 간의 부대낌은 있고 목공의 결과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제작 주문이 들어왔다. 그것도 대량(?)으로...
안톤이 선물로 나눠주던 스마트폰 거치대를 한꺼번에 80개 만들어 달란다. 내가 주었던 선물이 미끼가 되었나 보다. 한 교회의 권사인 지인은 다른 교인들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나의 목공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대량주문을 했다. 참~ 멋지고 통이 큰 친구다. 난 그렇게 대량생산(?)의 꿈을 꾸게 되었다.
재료는 대나무를 선택했다.
단단한 대나무는 집성해 놓으면 질겨진다. 3층으로 집성한 대나무끼리 서로 붙잡아 주기 때문. 하지만 선택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레이저 각인이 잘 된다는 점이다. 레이저로 태우기 때문에 나무에 따라서는 타고 남은 재가 나무 표면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대나무는 마치 플라스틱이 녹은 것처럼 깔끔하게 각인된다.
대나무 집성목을 주문해 놓고 샘플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지켜보다 대나무만큼 이야기를 뒤집어 볼 만한 나무도 없겠다 싶다. 특히 한중일에서 오래 칭송을 많이 받았던 나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대나무를 뒤집어보기로 한다. 이렇게 인생 첫 대량주문을 접수받으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빌드업한다. 이번엔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궁정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고위 관료가 있었다.
당시 위나라에는 "왕의 마차를 몰래 타는 사람은 누구든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刖刑)에 처한다"라는 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자하의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미자하는 왕명이라 속여 왕의 마차를 타고 어머니를 급하게 찾아갔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왕은 이렇게 말했다.
효성이 지극하구나.
어머니를 생각한 나머지 발꿈치가 잘리는 죄도 잊을 정도라니...
미자하는 형벌을 피할 수 있었고 오히려 효심이 깊다는 평을 들으며 왕의 총애는 더 깊어졌다.
또 세월이 흘러 미자하와 왕이 과수원을 같이 산책했다.
미자하는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다가 절반을 남겨 왕에 주었다. 그러자 왕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면 복숭아 맛까지 잊고 나머지 절반을 내게 주겠느냐
미자하의 모든 행동이 위나라 왕 영공에게는 이쁘게만 보였다. 자연스럽게 시기 질투에 빠진 다른 신하들은 미자하가 실제로는 사악하고 오만하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문을 믿지 않던 왕도 세월이 많이 흐르자 미자하에 대한 의심이 점점 깊어졌다.
그렇게 왕의 총애가 식자, 왕은 미자하에게 죄를 물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자하는 허락 없이 내 마차를 탄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내게 먹다 남은 복숭아를 주기까지 했다.
왕의 총애를 받을 때에는 좋게만 해석되던 것이 왕의 총애를 잃자 처벌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 미자하의 발꿈치는 전적으로 왕의 총애 여부에 달렸던 것이다.
이것은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 편에 실린 이야기로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권한 죄)란 말로 유명하다.
똑같은 행동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인간의 역사만큼 길고 긴 전통(?)이다. 한비자가 나왔으니 당대의 라이벌 공자까지 소환해 본다.
한비자의 법가(法家) 사상과 공자의 유가(儒家) 사상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다. 한비자(韓非子)는 유도(喩老) 편에서 법가 사상을 불로, 유가 사상을 물로 비유했다.
水則柔矣, 然多死於水
火則烈矣, 而死於火者寡
물은 부드럽지만,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많고
불은 맹렬하지만, 불에 (타) 죽는 자는 적다
도시나무꾼 안톤은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이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한비자는 공자의 유가를 위선적이라고 봤다. 유가는 사람들을 위하는 척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희생하게 한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한비자의 지적과 다르게, 공자도 선비의 위선적인 모습을 크게 경계한 바 있다.
<논어>의 양화(陽貨) 편에서 공자는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 德之賊也)라는 말로 '향원'(鄕原)이라는 존재를 비판한다. 향원은 대개 마을에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들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젠틀한 사람을 말한다. 공자는 향원에 대해 부연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맹자에 와서야 구체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다. 논어를 읽던 맹자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마을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 아닌가요?
공자께서 '덕의 적(賊)'이라고 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맹자는 이렇게 답한다.
"(향원은) 비난하려 하여도 딱히 비난할 거리가 없고
풍자하려 하여도 딱히 빌미가 없다.
속된 흐름과 세상에 영합하여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는다.
.
그러나
그와 함께 요순의 도에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덕의 적(賊)이라 한 것이다."
유가에서도 선비의 위선적인 모습을 경계했음이 드러난다.
공자가 '내 문 앞을 지나며 내 집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사람'이라며 미워했던 향원(鄕原)은 공자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많다. 현대 사회의 조직 내에서도 향원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공공성을 강조하는 조직에서 많은 편이다. 공공조직의 특성상 슬로건은 늘 '사회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위해서"가 본모습이고 변화와 발전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늘 막아선다.
과연 나무에도 향원(鄕原)이 있을까?
전통적으로 지조와 절개로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는 있다. 대나무와 회화(槐花)나무다.
대나무는 많이 들어 알고 있지만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다. 즉, 유학자 선비의 최고레벨이다. 흔히 매란국죽(梅蘭菊竹)이라 일컫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가 군자의 4가지 속성이다. 이 식물들이 선정된 이유는 뜻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가진 군자의 덕목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매화는 이른 봄눈이 채 녹기도 전에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워 봄을...
난초는 깊은 산중에 홀로 피어 고아한 자태로 은은한 향을 멀리 보내어 여름을...
국화는 늦가을에 첫추위와 서리를 이겨내는 절개로 가을을...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는 성질로 겨울을... 제각각 대표한다.
그중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속이 비어 있으며 껍질은 단단하고 곧은 점을 군자의 덕으로 인정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사철 푸름은 변하지 않는 인내로, 비어 있는 속은 겸허한 자세로, 단단하고 곧은 껍질은 굳은 의지로 이어진다.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는 회화(槐花)나무도 있다.
25m 높이까지 자라는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예로부터 문(文)을 상징하는 신목이었고, 조선에 와서는 학자의 나무, 학자수(學者樹)로 여겨졌다. 영어이름이 chinese scholar tree로 '중국 학자수'정도로 번역할 수 있고 학명은 Sophora japonica로 일본에서 등재했는지 일본의 흔적도 보인다. 공해가 아주 심한 중국의 북경에서 가로수로 잘 버티고 있어 활엽수중 공해에 가장 강한 수종이다.
중국의 <주례>(周禮)에 따르면 궁궐 건축에 ‘면삼삼괴 삼공위언'(面三三槐 三公位焉)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太師, 太傅, 太保)의 자리에 삼괴(三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으라는 뜻이다.
조선의 궁궐에서도 창덕궁이 이 원칙을 따랐다. 정문인 돈화문을 들어서면 왼쪽 편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상징하는 삼정승(三政丞)나무,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있다. 이 나무들은 1820년대 중반의 창덕궁 그림인 <동궐도>(東闕圖)에도 그려져 있어 수령을 대략 300~400여 년으로 추정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문(文)을 상징하다 보니 학문의 깊이뿐 아니라 성공의 부적 역할도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궁궐뿐 아니라 학자들이 모인 향교나 서원, 양반집 마당에도 많이 심었다. 여유가 있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나길 기대하며 출입문 쪽에 3그루씩 심었다. 심지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서도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하니 '(아직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었나 보다.
대나무와 회화나무는 일단 향원(鄕原)의 조건은 갖춘 듯하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비난하려 해도 딱히 비난할 거리가 안 보인다. 이젠 속된 세상의 흐름과 영합했는지 살펴 봐야겠다.
드디어 대나무 집성목이 도착했다.
대량생산의 꿈(?)에 부풀어 이때까지는 몰랐다. 무한 반복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커다란 원장 사이즈(2240*1220mm)의 대나무 집성목을 하나하나 잘라내고 똑같은 작업을 80번씩 하다 보니 대량생산은 꿈이 아니라 대량노동의 현실임을 깨닫는다. 주문자에겐 지금도 비밀이지만 괜히 접수받았다는 생각을 500번 쯤 한 것 같다.
생각을 멈추고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하다 보니 머리는 비어지고 근육통은 자꾸만 생겨났다. 역시 대량생산은 기계가 해야 하는 것이라며 투덜대다 보니 그래도 작업량은 꽤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약속인데 중간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다.
80개의 형태만 잘라내는데도 한참 걸렸다. 하지만 이후 작업이 더 오래 걸린다. 80개의 샌딩(사포질), 80개의 레이저 각인, 80개의 오일링... 무한 반복의 지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지만 대나무는 특히 샌딩이 끝날 때까지 장갑을 잘 끼고 있는 것이 좋다. 대나무의 미세한 결이 바늘처럼 일어나 피부를 찌르는 경우가 많다. 목장갑 정도는 쉽게 뚫고 찌른다. 맨 손으로 만지다 얇고 긴 대나무 가시가 손에 꽂히길 여러 번이었고 집으로 돌아와 씻다가 미처 찾지 못한 대나무 가시를 빼내곤 했다. 무한 반복에 무한 가시까지 덤벼든다. 작업을 하면서 대나무에 대해 조금씩 더 삐딱해지고 있다.
선비의 절개에 비유하는 대나무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대나무는 엄밀히 말하면 '나무'가 아니라 '풀'이라는 점이다. 나무처럼 생겼고 이름에도 '나무'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나무가 아니다. 벼과(Poaceae)에 속하는 다년생 '풀'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는 않으나 확실히 선비의 '나무'는 아니다. 선비의 '풀'일 수는 있다. 출신성분이 의심스럽다.
또 대나무는 '인생 뭐 한방이지' 싶은 인생을 산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만 꽃을 피우고 죽는 모노카르픽 식물(monocarpic plant)이다. 수십 년간 자라다가 일시에 꽃을 피우고 집단적으로 말라죽는다. 수십 년을 단 한 번의 번식 기회를 위해 집중 투자하는 셈이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만약 우리나라의 대나무 숲에 꽃이 피고 나면 그 숲은 일거에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출신성분도 안 좋은 녀석이 "인생 한방"을 부르짖는 것 같다.
목재로도 사용되는데 강도는 얀카지수가 1,410 lbf로 느티나무의 1,040 lbf보다 높아 의외로 더 단단하다. 비 온 후 하루에도 1m 넘게 자라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는 식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높은 강도다. (대개 빠르게 자라는 속성수는 얀카지수가 600 lbf 이하에 머무른다)
다만 대나무 섬유는 위에서 아래로 곧게 뻗어 있어 세로로 충격을 받으면 너무 쉽게 쪼개진다. 세로로 쪼개지는 기세가 워낙 대단해 여기서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말이 나온다.
대나무로 작업하다가 짜증 나서 이러는 건 아니지만 이쯤에서 대나무의 미덕을 한번 꼬아본다.
대나무의 빠른 성장속도는 충분히 학습하지 않는 자세로, '속이 비어있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읽어본다. 또 대나무는 몸 안에 담고 있는 당분 때문인지 목재에 곰팡이가 잘 스며든다. 즉 잘 썩어서 '부패한 관료'도 떠오른다.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혹시 '학문의 깊이가 얕고 겉만 번지르르 해 알맹이 없고 부패한 선비'가 아닐까? 다시 말해 공자가 그토록 미워하던 향원(鄕原)이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대나무 가시에 찔려 짜증 나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선비의 나무, 회화나무는 살아서는 아까시나무와 닮았고, 죽어서 목재는 느티나무와 닮았다.
아까시나무는 50대 정도의 연령이라면 어릴 때 뒷산에서 꽃잎을 따먹어 본, '아카시아'라 불리던 나무다. 한때 유행했던 아카시아 벌꿀도 이 나무의 꽃에서 온 꿀이다. 회화나무와 아까시나무는 모두 콩과(Leguminosae) 나무로 키도 비슷하고 모양도 매우 비슷하다. 우리 같은 일반인은 "아카시아 같은데?' 싶은 나무가 봄이 아닌 여름에 꽃이 피면 회화나무라 보면 된다. (아까시나무는 5월에 꽃이 핀다)
우리가 아카시아 나무로 잘못 알고 있었던 "아까시" 나무를 잠시 들여다본다.
학명이 'Robinia pseudo-acacia'로 '로빈이 가져온 가짜 아카시아 나무'라는 뜻이다. 스페인의 로빈 대령이 북아메리카에서 아카시아와 비슷한 나무를 유럽으로 가져왔는데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가 그의 이름을 따 ‘로비니아’로 정했다. 영어로는 black locust 혹은 false acasia(가짜 아카시아)라고 쓴다. 진짜 아카시아 나무는 '동물의 왕국'에서 기린이 잎을 따먹는 키 큰 나무라 보면 된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뿌리가 길어 산림녹화용으로 좋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이 황폐했던 6-70년대에 국가정책으로 많이 심었다. 다만 햇빛이 아주 많이 필요한 극양수(極陽樹)로 숲이 우거지면서 다른 나무의 그늘에 가려지면 햇빛이 부족해 생존 경쟁에서 패하며 사라진다. 안톤이 어린 시절에 뒷산에 그리 많았던 아까시나무의 꽃이 지금은 잘 안 보이는 이유다. (양수와 음수에 대해서는 11화 삐딱선 탄 날에 나온다)
다시 회화나무로 돌아가보자.
회화나무가 학자수로 여겨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연원을 알기 어렵다. 다만 회화나무는 괴목(槐木)이라 불리는데 괴(槐)는 나무(木)에 혼(魂)이 붙어있는 모양으로 확실히 다른 나무와는 차별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도 괴목(槐木)이라 한다. 느티나무도 '혼이 붙은 나무'로 우리나라의 당산목(堂山木)이었으니 괴(槐)를 같이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전혀 다른 과의 나무인데도 목재도 느티나무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목공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흑느티'라고 불릴 정도로 '색이 진한 느티나무'정도로 여겨진다. 형태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목재로써의 성능 또한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성리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학자수로 비유하는 것을 여지없이 비튼다. 회화나무가 키는 크지만 가지가 구불구불 자라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학문을 구부려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의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나무라며 성리학자들의 위선을 비꼰다.
여기서도 공자가 싫어한 향원(鄕原)이 생각난다.
똑같은 행동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똑같은 나무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선비의 나무인 대나무도 삐딱하면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나무가 되는 법이고, 학자수인 회화나무도 까딱하면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나무가 되는 법이다.
대량생산의 꿈이 대량노동의 현실이 되면서 내 마음이 삐딱해지고 까딱했던 것 같다. 작업이 끝나가면서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권사인 지인이 정성을 담아 교회 교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지 느껴진다.
내 마음을 반성하고 자세를 고쳐 잡은 후, 교인 80명의 이름과 80개의 성경문구를 제각각 받아 레이저 각인으로 넣었다. 한글로, 어떤 것은 라틴어로, 또 어떤 것은 히브리어로, 형태는 같지만 내용은 모두 다르다. 교회에 잔뜩 싸들고 가 선물을 나눠 주는 지인과 그 선물을 손에 받아 드는 교인들의 환한 얼굴을 그려본다.
생각할 수록 참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안톤은 대량생산의 꿈은 접고 재주문은 받지 않기로 한다.
거치대 작업을 끝내자 세상의 평화가 왔다. 남은 대나무로 책상 위에 놓을 펜꽂이를 여유있게 만들어 본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대나무가 다시 '지조와 절개'의 나무가 되었고, 회화나무도 다시 '학자수'가 되었다. 결국 대나무가 아니라 나의 '대량생산의 꿈'이 허장성세(虛張聲勢)였고, 회화나무가 아니라 무한지옥의 짜증이 곡학아세(曲學阿世)였다.
나무에는 향원(鄕原)이 없다. 사람만 향원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느냐"는 나무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