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면 하늘이 보인다
사회생활 초기, 30대에는 나무에 꽃이 피어도, 가을에 단풍이 들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방송국 생활이 생각보다 너무 바빴고 미숙했던 신입 PD 안톤은 일주일에 이틀 이상 밤을 새우고 있었다. 낮에는 늘 비몽사몽 상태로 주변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여유가 생겨도 꽃과 나무보다 네온사인과 커다란 락(Rock) 음악을 찾았고, 간혹 약간의 알코올 자극에 몸을 맡기며 살았다. 움직임이 크고 화려한 것들에 눈이 팔려 있었고, 같은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서있는 나무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30대에는 여의도 벚꽃도 귀찮았다. 벚꽃축제 때마다 몰려오는 사람들로 여의도는 출퇴근의 몸서리를 쳐야 했고 윤중로는 상춘객을 인터뷰하고 중계차를 대는 '업무공간'일뿐이었다. 이따금 벚꽃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마음의 여유는 좁아져만 갔다. 오히려 '여의도가 아닌 곳에서 보자'는 '비여'(非汝)의 슬로건을 걸고 네온사인 가득한 홍대 앞을 자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인지 누구인지도 흐릿하지만, 당시 나이 지긋한 한 선배의 말은 지금도 또렷하다.
남자가 봄에 꽃이 보이고
가을에 단풍이 이뻐 보이면
은퇴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야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 도시나무꾼 안톤이 그 선배의 나이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안 보이던 꽃들이 거짓말처럼 눈에 들어오더니, 가을 단풍도 지나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상을 꾸미는 녀석들의 말없는 움직임이 새삼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들 생각보다 꽤나 바쁘게 산다. 멀리서 볼 때는 가만히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하루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어제 못 본 잎이 새로 나더니 가지를 새로 올리고 열매를 열심히 키우더니 색색으로 잎을 물들이고 어느덧 겨울눈을 만들어 추위를 준비한다. 녀석들이 마음에 들어오니 이제야 그들의 바쁨도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정말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스마트폰이 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후부터 길을 걸어도, 밥을 먹어도, 커피를 마셔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머물러 있다. 가족들과 집에 있어도 제각각 스마트폰을 보고, 친구들이 모여 앉아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는 세상이다. 거북목이 늘어가고, 대화는 줄어들고 시선은 아래로만 내려간다.
현실에 가상의 몬스터를 배치해 스마트폰으로 찾아다니는 게임, 포켓몬 GO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의 밤 공원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어딘가 불편한 듯한 걸음걸이를 끌고 있는 기괴한 모습들에 안톤은 '이게 좀비'가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Smartphone)+좀비(Zombie)를 합쳐 "스몸비"(Smombie)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모두가 자그마한 폰에 시선을 둘 때 나무 예찬이 필요하다는 계몽적인(?) 생각을 해본다.
먼저 나무를 보면 하늘이 보인다는 점이다. 나무를 보면 고개는 들리고, 바람을 느끼고 어깨는 펴진다. 늘 지나치던 것들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하고 좀 과장하면 세상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늘을 자주 보니 바뀌는 '철'을 느낄 수 있고, 나는 '철'이 조금 더 드는 것도 같다. 혹시 예전 선배의 말은 "(남자는) 은퇴할 때쯤 되어야 철이 든다"였던 것일까?
젊을 때는 깊게 파느라 넓음을 몰랐다. 깊게 팔수록 하늘은 점점 좁아졌다. 이제야 시선을 반대로 돌리니 하늘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안톤은 지천명(知天命)이 돼서야 나무가 보였고, 나무가 보이니 하늘이 보였다. 고맙게도 봄과 가을엔 하늘을 보게 해주는 안톤만의 '하늘나무'가 있다. 안톤은 "봄하늘 나무"와 "가을하늘 나무"라 부르기로 한다.
매년 3말 4초가 되면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나무가 있다. 벚나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봄 햇살의 따스함이 느껴질 때 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가로수로 제일 많은 나무로 봄날엔 전국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여의도 윤중로와 경남 진해의 벚나무는 대부분 왕벚나무로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잎의 양이 유독 많아 벚꽃 중에 왕이라 여겨 왕벚나무라 부르는데 흐린 아침에 벚꽃 잎이 날리는 모습을 보면 폭설이 내리는 모습으로 착각할 정도다.
벚나무는 열매인 '버찌'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체리'(cherry)가 열리는 '체리나무'(Cherry tree)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새콤달콤한 체리는 서양의 버찌로 주로 'Sweet cherry' (학명 Prunus avium)의 열매를 말한다. 벚나무(Cherry tree)는 '과일의 보고'라 불리는 장미과(Rosaceae)에 속하는데 벚나무 외에도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까지 모두 장미과 나무다. 장미과 나무지만 목재시장에서 말하는 장미목(Rosewood)은 아니다. 벚나무 목재는 장미목이 아니라 체리목이라 부른다.
벚나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일본으로 일본어로는 '사쿠라'(さくら)다.
산신(山神)이 모내기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마을의 벚나무로 옮겨왔다가 모내기가 끝나면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벚꽃은 일본에서 '국민의 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의 '나라 꽃'(國花)은 없으나 국화(菊花)는 일본 왕실의 꽃으로 왕실 문양으로 쓰인다.
산신을 환영하는 행사인 벚꽃놀이를 일본에서 '하나미'(はなみ, 花見)라 부르는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때 벚나무 아래에서 연회를 즐기는 지금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때의 모습이 화투(花鬪)에 남았는데 700그루의 벚나무를 심어 1598년에 하나미 연회를 열었던 3월의 휘장에 길게 둘러친 사쿠라 광(光)이다.
일본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워싱턴 D.C. 의 포토맥(Potomac) 강변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 주변이다. 일본에서 100여 년 전 선물해 심어놓은 나무들로 3,020그루에 달한다. 지금도 매년 봄이면 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이 열려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봄 관광지다.
왜 미국의 수도에 일본의 벚꽃이 대규모로 심어졌던 것일까? 100여 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본다.
일본은 1894년 청나라를 상대로 청일전쟁(淸日戰爭)을 일으킨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청나라를 조선에서 쫓아내면서 조선을 사실상 집어삼킨다. 이때 일본은 대만과 요동반도도 할양받았지만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함께 요동반도를 중국에 반환하라고 압력을 행사한다. 결국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요동반도를 돌려주게 되는데 이를 '삼국간섭'(三國干涉)이라 한다. 이때 미국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방관하고 있었다.
러시아에 의해 요동반도를 뺏기자 일본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급기야 1904년 중국 뤼순 항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함대를 일본이 공격하면서 러일전쟁(羅日戰爭)이 발발한다. 부랴부랴 지구 반바퀴를 돌아오느라 지친 러시아의 발틱함대까지 일본이 궤멸시키면서 러일전쟁 또한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삼국간섭 때 미국의 중립이 아쉬웠던 일본은 러일전쟁이 끝나기 전에 미리 공을 들였다. 미국과 비밀리에 밀약을 맺어놓았는데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나눠 갖고 잘 지내자는 내용이다. 미 육군장관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가 맺었다 하여 가쓰라-태프트 밀약(桂太郞-Taft密約, 1905년 7월)이다.
이로써 조선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고 나라를 잃게 되는데 그 과정에 미국은 방조를 통해 일본을 지원하고 있었다. 일본은 삼국간섭 때의 실패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만회를 한 셈이다. 일본은 감사의 표시로 1912년 도쿄 시장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가 미국에 3,020그루의 벚나무를 선물하게 되는데 이 나무들이 현재 미국 워싱턴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을 장식하고 있다. 대략 3.2km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벚나무들은 모두 일본산으로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벚나무’로 학명이 'Prunus yedoensis'다. 이름에서 '에도'시대부터임을 표시하고 있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도 90% 이상이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염정길야) 벚나무’들이다. 여의도뿐 아니라 경남 진해의 벚나무도, 경주의 왕릉 주변 길도 대부분 일본산 벚나무들이다. 우리말로는 왕벚나무, 영어로는 King Cherry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왕벚나무가 제주도가 원산인 국산 왕벚나무와 일본산 왕벚나무로 두 종류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로서는 제주의 왕벚나무(Prunus × nudiflora) 대신 일본산 왕벚나무(Prunus yedoensis)가 국회의사당 주변에, 신라의 왕릉 주변에, 일본 해군의 주둔지였던 진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꺼림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진해는 러일전쟁 승리의 기념으로 2만 그루나 심었던 곳이다.
미국에서도 1941년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공습을 받은 이후, 워싱턴의 일본 왕벚나무를 베어버리자는 여론이 높았다. 실제로 성난 시민에 의해 몇 그루가 베어지기도 했지만 워싱턴 시는 벚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수년간 축제를 멈추고 "Japanese Cherry Trees(일본 벚나무)"를 "Oriental Cherry Trees(동양 벚나무)"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여파에도 위싱턴의 벚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우리 같은 일반인이 보기에 구별이 쉽지 않다. 다만 미국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세대 넘는 식민지 기간이 있었던 우리에게는 별 생각이 없다가도 주요 벚꽃축제의 나무들이 일본산인 것을 알게 되면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또 불편함과 별개로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들은 잘 관리되고 있지도 않은 듯 보인다. 미국 워싱턴 D.C. 의 벚나무들은 1965년 일본 정부가 3800그루를 재기중한 후, 축제 후원에 일본 기업들이 나서고, 축제기간을 외교를 위한 기회로 이용하고 있어 잘 관리되고 있지만 여의도의 왕벚나무들은 관리의 사각에 있다.
1960년대 후반 벚꽃을 좋아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며 그곳에 있던 일본산 왕벚나무를 일부 가져와 심었고 1975년 국회의사당이 완공되면서 주변으로 또 일본산 왕벚나무 1,400그루를 심었다. 그 후 이제 50여 년이 지나면서 강전정으로 나무는 병들고, 수목관리의 미비로 살아있는 나무에 버섯이 자라는 등 몸통을 자세히 보면 성한 나무가 드물다.
최근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 자주 거론된다. 향후 국회의사당이 세종으로 이전할 경우, 세종의사당의 주변에 무슨 나무를 심을지 궁금해진다. 적어도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벚나무’는 아니길 기대해 본다.
반면에 북한, 특히 평양에서는 해방 이후 벚나무를 일제의 잔재로 규정하고, 벚나무 가로수를 벌목하고 대체 수종으로 살구나무(杏樹)를 식재했다고 한다. "벚꽃은 일제의 잔재, 살구꽃은 조선의 향기"라는 슬로건으로 식민 경관 청산과 주체적 미학 복원의 일환이었다고 전해지는데 자료로 확인되지는 않는다.
살구나무는 같은 장미과의 나무로 벚나무보다 1~2주 정도 먼저 꽃이 핀다. 평양의 살구꽃과 서울의 벚꽃은 온도차로 인해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꽃이 필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 KBS의 본관 옆으로 살구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늘 주변 벚꽃보다 일찍 꽃이 핀다. 벚꽃과 너무 비슷해 일반인들은 구분을 못하고 "성급하게 일찍 핀 벚꽃"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2010년대에 조성된 서울 경의선 숲길 염리동 대흥동 구간에는 일본 왕벚나무 대신 우리나라의 '산벚나무'가 많이 보인다. 일본 왕벚나무 대신 우리나라 산속에 자라는 산벚나무를 가져와 계획적으로 식재한 것 같다. 이렇게 새로 생기는 공원이나 가로수 길에는 일본산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벚나무’ 대신 산벚나무를 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다.
벚나무의 목재는 '체리목'(Cherry木)이라 부른다.
2015년에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집에는 붉으면서 어두운 색의 문, 테이블 등이 많이 나온다. 체리목은 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큰 유행을 한 바 있다. 당시에는 현재의 월넛만큼 최고급 수종으로 각광받았지만 이후 약 30년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어둡고 붉은 빛의 체리목은 '오래된 구식'으로 인식되면서 구축 아파트들이 메이플(단풍나무)이나 오크(참나무)의 밝은 인테리어로 바뀌고 있다. 분명 고급 수종인데도 최근 트렌드에서 많이 밀려났다. 그래서 다른 목재에 비해 판매량이 저조하다고 한다. 우리 공방의 목재적재함에도 체리목이 없다. 안톤 주변의 목공 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체리목을 그다지 사용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체리목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일이다. 옛 집의 인테리어에 들어간 것은 체리 원목이 아니라 체리목 느낌의 필름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대로 체리 원목을 사용해보지도 않고 외면해 버린 느낌이랄까? 원목은 처음엔 연한 살구 빛이었다가 시간이 갈수록 적갈색이 진해지면서 어두워지는데, 필름지는 처음부터 어두운 적갈색을 띠고 있다. 짝퉁이 널리 쓰이다가 정품까지 이미지가 나빠진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주로 먹는 체리는 Sweet Cherry의 열매지만 목재로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것은 주로 북미산 '블랙 체리'(Black Cherry)다. 벚나무 중에서는 가장 가볍고 무른 편이다. 최근에 체리 원목이 다시 조금씩 판매량이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 유행이 다시 돌아올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나라의 산에서 벌목하는 나무는 산벚나무로 더 단단하고 더 무겁다. 제주 왕벚나무는 제주방언으로 '사오기'라 부르는데 보호종으로 분류되어 있어 목재로 구하기는 어렵다. 사오기로 만든 목공품은 고가구나 골동품으로 분류되어 많이 비싸다.
안톤에게 가을에 하늘을 보게 하는 나무는 감나무(persimmon)다.
감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조심 살펴야 해서기도 하지만 가을 하늘과 확연히 대조를 이루는 감의 색깔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둘 수 없게 만든다. '감나무 100년이면 1,000개의 감이 달린다'는 말이 있다. 시골집의 마당에 자리 잡은 감나무 고목은 수많은 감을 하늘에 달아주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자손의 번창에 비유했다. "대대로 복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나무였고 그래서 자손을 기원하는 '기자목'(祈子木)이라 했다.
감나무 스토리는 제사상에서도 만들어진다. 제사상 과일을 지칭하는 말로 '조율이시'(棗栗梨枾)가 있다. 대추, 밤, 배, 감을 말하는 것으로 제사상 맨 앞의 왼쪽부터 차례로 놓는다. 대추는 씨가 크고 하나(1)라서 왕(王), 밤은 한 송이에 세(3) 톨이 있어 삼정승(三政丞), 배는 씨가 여섯(6) 개라 육조판서(六曹判書), 그리고 감은 씨가 여덟 개(8)라 조선의 팔도(朝鮮八道)를 상징한다고 하는 스토리인데 아무래도 조상님의 은덕을 바라는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 같다.
조율이시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조선초기부터 알려진 이야기여야 하지만 '조율이시'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 등의 제사상차림 원칙은 조선 말기 혹은 일제강점기나 돼서야 널리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또 감의 씨앗은 그 해의 기후에 따라 씨의 개수가 달라진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골프채중에는 '우드'(Wood)라 불리는 채가 있다.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가장 먼 거리를 한 번에 보내는 채다. 드라이버(Driver)도 원래 이름은 "1번 우드"였고 대체로 3번 우드(로프트각 15도)와 5번 우드(로프트각 18도)로 구성되는데 현재는 티타늄으로 만들지만 이상하게 이름은 '우드'(Wood)다. 골프의 초창기에는 나무 그중에서도 감나무(persimmon)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금속으로 대체되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남은 경우다. 감나무로 만든 우드는 스윙할 때 경쾌한 소리를 내는데 이를 '퍼시먼 사운드'(Persimmon Sound)라고 따로 부를 정도로 소리의 맛과 타격에서 오는 손맛이 좋았다고 한다. 간혹 중고장터에 감나무 우드를 판매하는 글이 올라오는데, 한 세트 사볼까 고민만 했던 적이 있다.
이쯤 되면 감나무가 얼마나 단단하고 탄성이 좋은 나무인지 눈치가 빠른 사람은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감나무의 목재가 그 유명한 '에보니'(Ebony)다. 초기엔 주로 '실론 에보니'(Ceylon Ebony, East Indian Ebony)를 의미했는데 실론(Ceylon)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실론 에보니는 CITES Appendix III 품목으로 원산지에서 수출금지된 상태로 대신 다른 지역의 에보니가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에보니 목재는 어두운 검은색을 많이 띠고 있으며 매우 단단해 아이언 우드(iron wood)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피아노의 까만 건반, 바이올린과 기타 등의 지판 등 고급 악기에 쓰이는 최고급 목재다.
감나무과(Ebenaceae)의 학명에 Diospyros를 쓰는 나무들을 '에보니'(Ebony)라 하는데 우리말로 '흑단'(黑檀)이라 부른다. 그런데 흑단은 목재시장에서 콩과 나무인 음핑고(mpingo)를 지칭하기도 해 혼선이 있다. 대체로 까맣기 때문에 '까만 박달'이라는 뜻의 흑단이지만 감나무(persimmon)는 연한 밝은 색의 목재로 'White Ebony'라 부르기도 한다. 단단함과 무거움의 정도는 국내의 박달나무와 유사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감나무는 학명이 'Diospyros kaki'로 얀카지수나 비중에 대한 정보가 없어 표에 기재하지 못했다. 한국, 중국과 일본의 감나무로 "Oriental Persimmon"이라 한다. 목재의 성능은 미국동부에서 자라는 White Ebony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감나무 중에 검은 무늬가 있는 희귀한 나무가 있는데 마치 먹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해서 "먹감나무"(黑柿, Black Persimmon)라 한다. 혹자는 이 무늬를 "자연이 그린 수묵화"라고도 한다. 동남아의 Black & White Ebony와 비슷하고 다른 에보니에 비해서는 경도나 비중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얀카지수가 1,780 lbf로 여전히 매우 단단하고 무거운 나무다.
먹감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 오동나무와 함께 3대 가구재로 꼽히는데 그중 가장 고급재다. 먹감나무를 '오시목'(烏枾木)이라고도 한다. 무늬가 선비들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해 지체 높은 양반가에서는 먹감나무 가구를 가장 선호했다.
우리나라 감나무 중 20% 정도가 가운데 먹감나무가 된다. 먹물 무늬는 나무가 상처를 입거나, 균류 감염 후 방어 반응으로 나타나는 흑색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먹감은 감나무가 '상처를 이겨낸 흔적'이고 '나무가 인내한 무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무늬를 가족 스토리와 연결하기도 했다. 심재의 검은 부분을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타들어간 마음과 부모가 고통을 감내한 흔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상처 없이 성장하는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먹감나무는 칭송받아왔다. 누구나 상처를 먹감나무처럼 무늬로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감나무 중에 먹(墨)이 든 나무도 수가 적지만, 무늬가 있어도 가구로 만들 때 미학적 무늬가 나오는 것은 더 드물고 검게 물든 부분과 하얀 나무 부분의 수축률이 많이 달라 건조과정에서 나무가 뒤틀리거나 깨지는 경우가 흔해 먹감나무는 정말 귀한 목재다.
주로 전통장을 만들어 온 안톤의 지인인 김명남 작가의 작품을 보면 먹감 무늬의 독특함을 알 수 있다.
은퇴가 가까워 오니 이제야 하늘을 보게 하는 나무가 생겼다.
나무를 보기 시작하면 하늘은 덤으로 따라와 준다. 조금 더 일찍 나무를 보기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톤의 하늘나무가 생겼으니 다행이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답게, 가을엔 가을처럼 그리고 겨울엔 벗은 몸을 드러내주는 나무들로 안톤의 50대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조금은 더 넓게 보고, 조금은 더 멀리 보며 조급해지지 않고 나무의 삶을 보듯 나의 삶을 관조하는 여유가 생길 것만 같다.
독자분들께도 멀지 않은 곳에 '나의 원픽나무'를 하나 지정하고 계속 바라봐주는 것을 제안한다. 무슨 나무인지도, 무슨 꽃을 피우는지도, 무슨 열매를 보이는지도 그리고 잎이 다 떨어진 나무의 몸은 어떤지도 살펴봐 주길 바란다. 그럼 그 나무의 이야기가 들릴 것이고, 그 나무를 품고 있는 하늘도 보일 것이다.
#배철수양희은꽃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