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너나 가세요
남편, 2년째 해외에 나가 살자고 조르는 중이다. 남편이 나가서 살자고 말하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몇 km가 떨어진 곳인지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렇다. 나는 남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늦겨울부터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고 나는 외출을 하기 전 미세먼지체크 어플을 통해 오늘은 시커먼 악마얼굴의 이모지인지, 빨갛게 화난 이모지 인지부터 확인한다. 미세먼지가 안정적인 쾌청한 날씨라고 알리며 파란색의 웃는 이모지를 본지가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신발을 신기 전 마스크를 챙기는 것이 필수가 되었고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징징대는 둘째에게 등원시간에만 잠깐 쓰는 거라 어르고 달래 집을 나선다.
아이 등원 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 벗자마자 집 청소하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놓고 늦은 점심을 먹으면 하원시간은 금방 돌아온다. 하원길에 나선 나는 길에 흙냄새인지 먼지 냄새인지 킁킁대지만 마스크를 썼으니 상관없지 싶다. 어른이 써도 답답한 마스크인데 또 아이에게 씌워 집에까지 데려올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엎친데 덮친다. 비까지 온다. 황사와 뒤범벅이 된 미세먼지 비를 맞지 않으려고 오른손은 큰 아이 한쪽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등에 업은 둘째 아이의 엉덩이를 받치고 뛴다. 잠깐의 입김에도 젖어 축축해지는 마스크를 쓰고 비 오는 날 아이를 업고 뛰기까지 하니 내 꼴이 엉망도 아닐 터. 빗속을 뛰는 내 들숨과 날숨에 의해 마스크가 트월킹을 춘다.
남편은 매년 불어오는 황사와 일 년 내내 이어지는 미세먼지 가득한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것에 언제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교육은 또 어떠한가, 내 아이가 완벽히 잘하지 않고 애매한 위치라면 언제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모와의 갈등은 이미 겪어보지 않아도 예견되어 있다는 것, 늘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 중간은 갈 수 있을 거라는, 강남에서만 30년 이상을 살았던 남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만 미세먼지를 먹고사나,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아이들 교육에 온 힘을 쏟고 사는 게 부모의 도리이고 절차라면 그렇게 해야지. 우리 엄마아빠도 8 학군 입성을 위해 내가 여섯 살 때 강남으로 이사 왔는걸? 아무리 노력해도 왜 중간만 간다고 생각할까? 내 아이들이 그 위로 더 올라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손잡아 줄 부모가 될 생각은 안 하는 건가? 강남 사교육, 너와 내가 학창 시절 지겹도록 했던 그것이지. 치열했던 입시와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거쳐 너와 내가 만났던 이곳에서 내 아이들이 자라는 게 뭐가 그리 미안한 일일까. 그나마 비슷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라도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지 정말 궁금했다. 우리 부부의 닿을 것 같지 않은 서로의 생각은 예상외로 길어졌다.
남편은 부지런하다. 출근 전에는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하며 잠을 깨고 회사로 들어가기 전 커피 한잔과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심박수를 안정시킨다. 퇴근 후에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며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외국계회사를 다니는 남편에게 영어는 늘 놓아서는 안 되는 끈이었지만 그렇다고 손에 단단히 잡히는 동아줄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나도 그는 전혀 게을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 젖병 씻기를 추가하고 출근준비에 아이와 아내가 깨지 않도록 까치발 출근 기능까지 장착하였다. 가정에서나 회사에서나 그는 늘 최선을 다하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회사에서는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겁이 많다. 겁이 많아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다행히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해 왔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으며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길이라도 이직이라는 큰 변화를 겪는 게 싫어 큰아이를 품은 막달까지도 꿋꿋이 지하철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친정과 시댁이 가까운, 8년 전 터를 잡았던 그 집에서 아이 둘을 낳았다. 주말마다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밑반찬을 받아오고 몸이 힘든 날은 아이들을 맡기고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한다. 이렇게 편하고 안정적인데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딴 나라에 가서 우리 넷이 살고 싶다는 남편의 말은 나에게 너무 허무맹랑했고 현실성 또한 없었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회사에도 인정받는 남편은 왜 이리 해외살이에 목말라하는 걸까. 남편은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살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아직도 총각처럼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번아웃이라도 온 걸까. 미취학 아이가 둘이나 있는 가장으로서 아무런 계획 없이 말을 한건 아닐 테니 남편의 구체적인 계획이 듣고 싶었다. 그제야 나도 비로소 2년 만에 울화와 짜증을 내지 않기로 마음먹고 남편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았다. 남편의 계획은 머릿속에만 있지 않았다. 해외로 나갔을 때 우리 가족 생활비, 렌트비, 학비 등 예상지출 내역의 횡과 열은 매우 자세하게 엑셀파일로 저장되어 있었고 남편은 그 파일을 열자마자 부장님께 보고하는 신입직원처럼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했다.
사실, 남편이 정리해 놓은 몇 년 치의 예상지출 엑셀파일을 보자마자 나는 더 이상 그의 이민병을 말릴 수 없을 거라 직감했다. 남편이 눈을 반짝이며 우리 가족의 계획을 설명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