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되고, 둘째는 안돼
아이 하나에도 절절매는 내가 정말 아이 둘을 키울 수 있을까, 매일 밤 고민이 거듭됐다. 낮에는 업무에 시달리고 퇴근 후에는 첫째의 육아에 올인하느라 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를 재우고 한 숨 돌리는 열시쯤이었다. 매일 밤 열시부터 시작되는 도돌이표 생각.
복잡한 마음에 하루 휴가를 내고 남편과 산부인과를 찾았다. 산부인과에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내 둘째 구나. 건강해서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어서 양가에 알려 축하받고 싶었다. 나와 남편의 결정에 잘했다 확신받고 위안받고 싶었다. 첫째를 낳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쓴 직장인으로서 둘째까지 같은 방법으로 휴가와 휴직 모두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둘째의 초음파 사진을 받는 순간 알아서 퇴직의 순서를 밟았다.
내 눈앞에 가로막힌 벽들이 줄줄이 이어진 느낌이다. 단단하고 높은 그 벽들을 말랑하게 허물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축하와 위로였다. 당장이라도 양가에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전화로 알리고 싶진 않았다. 남편과 나는 어차피 토요일에는 늘 친정에 가니 그때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요일에는 시가에 저녁 먹으며 말씀드리기로 했다.
친정에서 초음파 사진을 보여드리며 부모님께 둘째 임신을 알렸다. 기뻐하셨지만 출산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큰딸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셨다. 첫째를 낳을 때 눈과 얼굴의 모세혈관이 다 터져 흰자가 모두 빨갛게 변하고 보랏빛이 된 딸의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던 친정부모님이셨기에 두 번째 출산이 괜찮겠냐는 걱정이 먼저였던 터. 그래도 하나보다는 둘이 좋다며 첫째 손주를 안아 올리며 크게 기뻐하셨다. 친정엄마는 외출한 내 동생에게 어서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파티를 하자고 전화를 했고 귀가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동생은 마음이 급해 내 SNS에 둘째 조카가 기다려진다며 금방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남겼다.
다음날, 시부모님과 저녁을 먹기 전 남편에게 시누이가 전화를 했단다. 올케의 SNS에 있는 둘째 임신 축하글을 봤고 왜 우리에게 먼저 알리지 않았냐며 서운하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내 임신을 더 먼저 알렸어야 했나, 친정에 간 김에 내 부모님과 동생에게 임신사실을 알린 게 시누이를 서운하게 만들일인가 싶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복잡한데 이러한 전화를 받고 한 소리를 들으니 더욱이 기운이 빠졌다. 아래 위층 살며 시누-올케 사이가 아닌 친동생처럼 생각하셔서 서운할 수도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나도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어서 시부모님께 임신사실을 알리고 축하받아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시부모님을 만나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혼을 하고 첫째를 갖기 전 일 년 동안에도 며느리가 부담을 갖을까 조심스러워 단 한 번도 손주에 대한 독촉을 하지 않으셨다. 시부모님께 어떻게 하면 이 소식을 더 기쁘게 알려드릴 수 있을까,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어려운 결정이었겠구나. 네가 포기할게 많았을 텐데 그래도 낳기로 마음먹었다니 참 고맙구나'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저녁을 다 먹고 치우며 남편은 우리 둘째에 대해 알렸고 시어머님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리곤 너희가 둘째를 낳아도 당신은 못 봐주신다고 했다. 남편은 애들 엄마가 일을 관두고 첫째와 둘째의 육아를 할 테니 엄마에게 육아의 부담은 없다고 했다. 시어머님께서는 너희가 당장 외벌이가 되면 강남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쉬울 것 같냐, 왜 이렇게 생각 없이 일들을 저지르느냐, 무슨 생각이냐 하셨다.
꿈을 꾸는 것 같다. 내 뱃속의 둘째, 결혼한 아들내외의 두 번째 손주,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일로 치부됐고 그 자체를 부정당했다.
나는 남편과 시어머님이 내뱉는 고성에 놀라 우는 첫째를 부둥켜안았고 시아버님께서는 집안의 고성을 잠재우려 노력하셨다. 분명 친정부모님보다 더 기뻐하실 거라 생각했기에 설레어 두근거리던 내 심장은 놀람과 서러움으로 뒤범벅되었다. 우리가 둘째를 가진 게 어머님이 저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내실일인가, 우린 첫째의 육아를 맡긴 것도 아니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편은 둘째 손주가 태어나도 볼 생각 말라했고 시아버님께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나는 눈물범벅이 되어 급한 마음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나왔다.
그렇게, 시가에서 도망치듯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