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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Sep 15. 2023

지나가는 바퀴벌레도 웃을 일

가게 입구에 걸린 식품 위생 등급 A 액자

뉴질랜드에서도 모든 음식점은 식품 위생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알파벳 순으로 표시되며 그 사업장의 품질과 위생 등급을 손님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주로 잘 보이는 입구 전면에 부착한다. 놀랍게도 빵집의 청결도는 최상등급인 A였고 액자에 넣어 위풍당당하게 입구에 걸려있다.


일하는 기간이 쌓이다 보니 가게의 위생에 대해 사모님께 말씀드리는 일도 많아졌고 홀에 나가 청소할 때는 자주 오시는 손님들과 안부를 묻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도 자연스러워졌다.


피자빵과 고로케에 들어가는 야채들을 다지는 하얀색 도마에는 곰팡이가 시커멓게 앞뒤로 빼곡히 피어올라 지워질 줄 몰랐고 빵집 바닥과 쓰레기통 주변에는 새까만 개미떼가 득실득실했다. 나는 오늘도 사모님께 곰팡이 가득한 도마를 버리고 새로 바꿔야 한다, 다른 크림이 묻어있는 위생백을 재사용하면 안 된다, 일회용 키친타월은 빨아쓰면 안된다, 위생장갑을 껴야 한다 등 빵집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할법한 위생에 관한 말들을 했다. 어찌 보면 청결도 A의 사업장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안 해도 될 말인데 말이다.






당연히 없어야 하지만 지금 보인게 오히려 이상한, 그 이름도 징그러운 바 선생



어쩌다 보니 홀에서의 계산까지 맡게 되었다. 빵을 고르고 있던 여성손님이 어머! 하며 완두앙금이 들어있는 빵 한 개를 계산대로 가져와 바퀴벌레가 있다며 보여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바퀴벌레가 진짜 있었지만 빵집의 위생상태로라면 이곳에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바퀴벌레였다. 내가 왜 죄송한진 모르겠지만 손님께 죄송하다 사과하고 사모님을 불러왔다. 사모님은 빵을 만들 때 바퀴벌레가 생길 일은 없지만 포장하고 난 뒤 들어간 것 같다고 말 같지도 않은 해명을 한다. 손님이 입구에 걸린 위생등급 액자를 가리키며 가게 위생등급은 A면서 바퀴벌레가 빵 포장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며 나간다. 수북이 골라 담은 빵 쟁반도 계산대위에 던지듯 놓고 가게를 나간 여성손님은 사모님에게 블랙컨슈머로 낙인찍혔다. 사모님의 이상한 논리와 말도 안 되는 해명에 바퀴벌레가 움직이고 있는 빵을 봤다면 사모님이 낙인을 찍 든 말든, 블랙컨슈머든, 화이트컨슈머든 그녀는 절대 재방문하진 않을 것이다.


폐쇄공포증의 두려움을 느끼면서까지 더러운 빵집의 발효기를 닦던 날 구정물이 눈에 여러 차례 튀었다. 그날 저녁부터 눈이 욱신거리고 충혈이 됐고 시리고 아프기까지 해 약국으로 달려가 문의하니 다래끼라고 했다. 하루에 4시간 내가 쓸고 닦고 아무리 움직여도 위생관념 없는 사장부부의 근본적인 청결은 해결되지 않았으니 물때가 쌓이다 못해 썩은 발효기, 여기저기 피어나는 곰팡이들과 바퀴벌레, 개미떼는 빵집에 당연한 장식품들이었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화장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



4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일하니 화장실을 갈 일도 없다. 빵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지도 몰랐다. 꽈배기를 튀기는 솥, 옆 공간에 위치한 문을 등지고 반대편의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했기에 그곳이 화장실인 줄도 몰랐다. 또한 사장 사모님이 그곳에 들락거리며 항상 뭔지 모를 것들을 손에 들고 나왔으니 나는 그곳이 창고인 줄 알았다.


그날은 사모님이 어깨 진료를 보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라고 오후에 자리를 비우니 아침부터 나에게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다음날 재료 준비까지 해놓으라 했다. 양파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니 사모님은 새 양파망을 가져와야 한다고 자신은 어깨가 아파 들 수 없으니 화장실에서 가져오라고 한다. 창고로 알고 있던 곳의 문을 여니 오른쪽엔 변기가 있고 변기 앞엔 뜨거운 빵을 식히는 건조랙이 있었다. 아마 변기 위에 있는 창문 때문에 건조랙을 변기 앞에 두었겠지. 그동안 빵을 변기 앞에서 건조했단 사실에 놀라 자빠질뻔했고 변기 옆, 오물이 묻어있는 휴지가 담긴 박스에 양파망을 넣어둔 것을 본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이래서 사장님과 사모님은 손님들이 빵집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 가게에는 화장실이 없다고 말했나 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빵을 식히는 공간은 작업대 옆 외부로 나가는 방충망 앞이었는데, 문제는 이 방충망에 붙어있는 시커먼 먼지들이었다. 빵집 안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빵 위로 먼지가 고스란히 앉고 그게 눈에 보여 방충망 문을 내가 열면 사모님은 가게 안으로 똥파리가 들어온다고 신경질을 내며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을 때마다 내 탓을 했다. 파리가 들어오는 게 싫어 방충망을 자꾸 닫는 사모님과 차라리 방충망을 열고 깨끗한 바람이 들어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아르바이트생. 창과 방패의 싸움은 계속됐다.






생크림 케이크에도 치즈에도 곰팡이 천국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뉴질랜드는 확진자가 없으니 아직 안전한 것 같아 안심이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이 외출을 하지 않아 손님이 줄어든다 하더니 날씨가 화창하고 좋아도 빵집의 손님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체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전염병의 위험성을 알리고 개인의 청결과 위생에 대해 주의하자고 나오니 안 그래도 한가하고 여유로운 뉴질랜드는 더 잔잔해져만 갔다.


손님이 줄어드니 당연히 빵의 판매율도 현저히 낮아졌다. 새벽에 사장님과 사모님이 빵을 구우면 저녁때까지 빵이 다 팔린다고 하는데 요즘엔 완판이 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재고 양이 점점 늘어 며칠 전날의 빵들에 생크림을 넣어 신메뉴로 내놓기도 한다. 신메뉴가 나오면 뭐 하나, 홍보를 하면 뭐 하나, 손님이 찾아오지를 않는데. 그러다 보니 주문해 뒀던 식재료들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빵집에서는 갑작스럽게 케이크를 사가는 손님들을 위해 예약주문 외에도 생크림 케이크를 몇 개 더 만들어 두는데 손님이 끊기자 예비로 보관해 둔 케이크의 보관시간이 길어지며 과일이 물러져 물이 생기며 녹아내렸고 냉장고 속 치즈와 크림치즈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날씨가 좋아지며 빛이 잘 들어오는 빵집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손님이 사갔던 인절미빵을 들고 들어오며 콩가루에서 쉰 냄새가 난다고 상한 빵을 팔면 어떻게 하냐고 항의를 했다. 안 그래도 그 빵은 며칠째 팔리지 않아 사모님이 아침마다 콩가루를 덧붙여 새 빵처럼 내놓았던 것이다. 재고 빵의 손해를 막고자 며칠째 안 팔린 소보루빵에는 반을 갈라 생크림을 넣고 그 위에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려 갓 만든 것처럼 보이게 내놓더니 인절미빵에는 매일 한 겹 씩 콩가루를 덧붙여 오늘의 쉰 인절미빵이 된 것이다.  


과거,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급식 사업을 담당했던 왕년의 사회복지사로서 구청 위생점검을 하듯 사장님과 사모님께 빵집의 위생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식중독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물며 음식을 파는 사업장에서 사장님과 사모님만 쓰는 화장실에 무엇을 닦고 버렸는지 모를 더러운 휴지와 같이 식재료를 보관하느냐, 갓 나온 빵을 먼지가 가득 낀 방충망 앞에서 말려서는 안 된다고 수차례 말씀드렸다.


가난해서 남의 집 일을 하고 있는 주제에 자신의 빵집에 이래라 저래라 위생과 청결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에 사모님은 발작버튼이 눌린 듯 생 난리를 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들키기 싫어 아예 없다고 거짓말까지 한 빵집의 더러운 화장실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것을 보았고, 빵 사이를 누비는 바퀴벌레들을 보았으며, 며칠째 덧붙여진 콩가루에 쉰 인절미빵을 알고 있다. 그리고 냉장고 속 여기저기 피어난 곰팡이까지도.


사실, 더러운 꼴 안 보고 관두면 그만이다.

하지만 동네에 하나 있는 한국빵집, 이미 내가 본 이상 깨끗하게 만들어 지역주민으로 나도 이용하고 싶기에 오늘도 나는 되지도 않는 오기를 부려본다.





(바른말하며 안짤리고 있는 게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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