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새끼라 불린 사나이, 그를 사이비새끼라 부른 사모님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빵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앞치마를 매고 손에는 행주를 들고 작업대를 닦고 있는 나를 말하는 것 같다. 그가 말한 빵집의 무수리는 누가 봐도 나였다.
무수리는 조선시대 허드렛일을 맡아하던 계집종을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내가 뭘 들은 거지?
갑자기 열이 뻗혀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럽다.
사모님과 사장님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홀에 나가 목소리가 큰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사모님은 그가 주문한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사모님은 내 곁으로 와서 말을 건다. 내가 묻지 않아도 빵집에 찾아온 손님의 외모부터 세세한 TMI를 전하기 위함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입만 열면 남의 험담이다.
오늘 온 남자손님은 사장부부의 지인으로 다른 한인업체의 사장이란다. 동시에 목사님 이란다. 나는 기독교는 아니지만 빵집에서 늘 크게 틀어놓는 사모님의 휴대폰 속 성경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싶어 큰 거부감은 없다. 물론 그 모든 내용이 다 들릴만큼 한가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듣다 보면 주된 내용이 인간은 동등한 존재, 부부의 존중, 타인을 너그러이 생각하라. 술과 마약, 도박을 멀리하라. 나 자신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란 내용이니 딱히 나쁠 것도 없으나 그것을 백날 천날 듣고 있는 사장님과 사모님의 현실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언제나 아리송하다.
그는 다른 손님이 뒤이어 들어와도 가게 중간에 서서 쩌렁쩌렁한 성량을 줄이지 않았고 여성 손님 한분은 빵쟁반을 들다 말고 밖으로 나가기까지 했다. 손님까지 쫓아낸 그는 테이블에 멀찌감치 앉아 앞 뒤 테이블 모두를 차지하고 본격적으로 일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눈치 없는 사장님은 그와 한참을 이야기 나누며 그의 허세와 허풍을 다 들어준다. 손님도 쫓아낸 그의 허풍을 다 들어주는 사장님을 속 터져하는 사모님. 이렇게 부부싸움의 떡밥을 하나 툭 던져주고 간 목사님은 빵집 문을 나서면서까지 당부한다.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도 좋은 말씀으로 회유하고 사랑하셔야 하는 목사님이란 그분이 빵집 문을 열고 작업대에서 행주질을 하는 나를 향해 내뱉은 단어는 무수리. 실컷 허세와 허풍을 떨다 빵집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도 무수리. 그는 오늘도 커피값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모님은 문을 닫고 나간 그를 눈으로 쫓으며 말만 목사지, 사이비 새끼라는 뒤 험담과 욕을 해댄다.
낯도 설고 말도 선 타국에서 길눈도 어두운 내가 동네 지리를 익히자마자 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의 학벌, 경력과 무관한 단순한 쓸고 닦는 일이었지만 매일 일을 하러 나가며 감사했다. 내가 아프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고마웠고 즐겁게 학교를 다니며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아이들에게도 감사했다. 일을 하는 시간보다 가족과 함께 자연을 즐기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으니 뉴질랜드로 가자 가자 졸라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남편에게도 감사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남들이 '무수리'라 말한들 내가 열심히 움직이고 받는 노동의 대가로 일주일이 채워져 받는 주급이니 나에게는 뿌듯했고 소중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더러운 빵집의 청결과 위생을 바꿔놓겠다 다짐해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 쓸고 닦아봤자 나는 그들에게 일 잘하는 무수리였다.
손님이 줄어들어 재고가 늘어나는 빵집에 하나라도 더 팔아보겠다 싶어 한번 오신 손님의 재방문을 위해 오셨던 손님들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대화내용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고 출근하기 전에 한번 더 보며 기억한들, 나는 그들에게 일 잘하는 무수리였다.
4시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조금의 지체 없이 팔다리를 움직였고, 지금 당장의 일을 하며 눈으로는 다른 할 일들을 찾았다. 난 결코 빵집에 있는 그 시간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나오던 그날, 홀 선반의 빵 쟁반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뒤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 닦아내느라 부스러기 먼지가 입과 코에 들어가 콜록거린 들, 그들은 괜찮냐 그만하면 됐다는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퀴벌레 한 마리 나온 것 가지고 호들갑 떤다며 항의했던 손님을 욕하고 자기 소유의 빵집을 쓸고 닦는 나를 골목식당의 백종원도 울고 가겠다며 남의 집 일을 하는 주제에 깔끔 떤다 하고 못마땅해했다.
빵집의 냉장고에서 오들오들 떨며 청소를 했던 그날에는 자기 눈을 피해 냉장고에서 생소시지를 훔쳐먹은 도둑으로 몰았고 화장실에서 갓 나온 빵을 식히고, 화장실 일을 본 휴지를 버린 박스에 넣어둔 양파망을 보고 경악하자 양파는 껍데기 벗기면 그만이라던 사람들. 빵집의 발효기를 청소하며 구정물이 눈에 튀자 바로 나던 다래끼. 한국이 그리워 먼 동네에서 버스까지 타고 온 워홀러에게 단팥빵 두 개를 사줬다 하니 나에게 부자라며 비아냥거리던 마음이 가난한 그녀.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못해 모든 손님의 인상착의와 외모를 비하하고 자신의 빵집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옆의 키위 카페를 방문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애국정신이 부족하다며 감히 애국을 논하는 그녀.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목사님이라며 앞에서는 추켜세우더니 빵집을 나간 그의 뒤통수를 유리창 너머로 보며 사이비새끼라 말하던 그들.
나는 성실하고 건강하고 친절하다. 그러니 인격의 바닥을 기어 다니며 허겁지겁 공짜로 나이만 먹은 그들에게 나의 4시간을 나누는 것은 과분하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의 자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바다의 윤슬,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를 보내는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
이제 나는 오롯이 모든 것들을 누릴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