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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Sep 05. 2023

명품백과 시계 그리고 다이아 귀걸이

부티 혹은 촌티

결혼하고 8년 만의 첫 이사가 뉴질랜드로의 이주였다.

12시간 하늘을 날아 이사도 해봤는데 뭐 여기서의 이사가 어려울까.


하지만 우리에게 집을 옮기는 시기가 좋지는 않다.


우리를 홀연히 떠나 있다 다시 돌아온 비자는 남편이 졸업하는 시기와 맞물려 두 달 있으면 끝이 나고, 우리는 한 달 안에 집을 구해 나가야 한다. '비자'는 외국인인 우리의 신원을 보증해 주는 가장 확실한 도구지만 두 달 뒤면 끝이 나고, 포스트스터디 워크비자를 받는다 해도 워크비자가 아닌 이상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는 외국인 가족에게 집을 렌트해 줄 집주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하필 얼마 전부터 뉴스에는 외국인 세입자가 몇 달간 집세를 내지 않고 집주인 모르게 집에 포함된 집기와 가전을 모두 떼어다가 팔고 본 국으로 도망갔다는 기사가 자주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인이라고는 유학원 직원뿐이었으나 이미 우리에게서 정착서비스까지 마무리 지으며(소위 뽑아먹을 대로 다 뽑아먹은) 그와의 연락은 서서히 끊겼다. 우선 남편의 학교 동기, 선배들에게 집 구할 때 유용한 몇 가지 팁들을 얻었다.  


가끔 주 렌트비를 최상으로 설정해서 비싼집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한달내로 살 집을 찾아서 나가야하니 다시 정신머리를 제대로 붙잡기로!


뉴질랜드에도 동네마다 부동산이 있다. 하지만 주로 trade me(www.trademe.co.nz) 웹사이트나 어플에 접속해서 살고자 하는 지역을 고르고 자기 예산에 맞는 범위, 방과 욕실 개수를 설정하면 그것에 맞게 리스트 된 집들을 볼 수 있다.


주 렌트비와 방의 개수는 원하는 데로 설정해 리스트 된 집들을 보고 각 집의 property details를 확인해야 한다. 부엌에 어떤 가전이 포함된 건지, 가스레인지, 오븐, 또는 인덕션인지, 거실에 히트펌프가 설치되어 있는지, 카펫의 상태와 게라지의 유무, 주변 학교와 편의시설 등.


아무리 따져도 사진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 적당한 집을 발견했다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짜를 잡아야 한다. 이것을 Viewing이라고 하는데 부동산 매니저에게 전화 또는 이메일을 보내 내가 그 집을 볼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확인받는다.


부동산 매니저가 정해놓은 날짜와 시간에 그 집으로 가면 나 말고 여러 팀이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 집이 정말 마음에 들고 입주를 원한다면 부동산 매니저에게도 적극적인 어필을 해야 한다.


어필을 어떻게 하냐고? 집에 대한 애정 어린 질문을 하면 된다. 가능하면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질문 말이다. 예를 들면, "이 집은 언제 지어진 집인가요?, 오래된 집 치고는 창문의 샷시가 정말 튼튼해 보이네요. 겨울에도 난방비가 절약될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이 집에 살고 싶네요!"








네 식구 길가에 나앉을 위기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이민 선배들에게 몇 가지 팁을 얻었으니 실전에 돌입한다. 한 달 안에 집을 구하기 위해서 주변 동네의 집을 모조리 다 보았다. 여전히 아이들 학교에 가까운 집을 찾는 게 우선이었고 가급적이면 걸어 다니고 싶어 학교 주변 타운하우스에 뷰잉 신청도 하고 남편과 번갈아 가며 어필도 해보았다. 하지만 옆집과 붙어있는 타운하우스의 특성상 조용한 세입자를 원했고 같은 시간 뷰잉을 하러 온 다섯 팀 중에 노년부부도 있었으니 2살 터울 초등학생 남매를 둔 우리 가족은 선택받지 못했다.


그동안 단독주택에서 살며 맘껏 뛰고 뒹굴며 한껏 자유롭게 살던 우리 가족이 원하던 주택의 형태는 아니라고, 타운하우스가 됐어도 안 갔을 거라고 남편과 말은 했지만 이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우리 동네에는 더 이상 볼 집이 없어 옆동네까지 뷰잉을 하러 다녔다. 그 집에서 부동산 직원과 대화를 나누며 관심 있으면 어플라이를 작성해 보라길래 '오 이건 되겠다'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바로 작성해서 제출. 그러나 또 여전히 꽝!


이렇게 열 군데 가까이 집을 보고 뷰잉하고 어플라이를 반복하다 보니, 한 부동산 매니저를 여러 번 마주치게 되었다. 그가 뷰잉을 진행했던 다른 집에도 여러 번 어플라이를 했다 떨어졌으니, 그는 이미 우리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직도 집을 찾고 있냐는 그에게 우리가 아직도 집을 못 구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은지 되물었다.


"사실, 너희의 비자 기간이 불안정해. 직업을 구하기 전까진 너희가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을 거야. Kiwi(뉴질랜드 사람)집주인들이라면 비자 상태를 까다롭게 봐서 외국인을 좀 더 꺼려. 중국인 집주인이라면 한국인의 깔끔한 성격을 좋아해서 환영해. 하지만 요즘 너희가 본 집 중에 중국인 집주인들은 없더라. 도움 주지 못해 미안해"


그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싶었던 이유에 대해 확실히 짚어줬기 때문이다. 역시나 우리의 예상은 맞았다. 포스트스터디 워크비자(학생비자 만료 후, 직업을 찾는 기간을 주는 비자)여도 직업을 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면 렌트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기에 집주인들은 우리를 꺼려했단 것이 확실시 됐다. 현재 살고 있는 렌트비 수준의 집들은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고 예상보다 더 높은 금액의 집들 중에서 열흘 안으로 우리를 선택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부티전략 - 옷장의 명품들을 꺼내다



열다섯 군데의 뷰잉과 어플라이를 끝냈다. 퇴거일 일주일을 남기고 우리에게 연락 온 곳은 딱 한 곳. 우리가 봤던 집들 중에 가장 렌트비가 높았던 그 집. 렌트비가 높다 한들 애들 둘과 지금 길가에 나앉게 생긴 마당에 짧은 비자를 가진 외국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부동산 매니저는 통장잔고 증명을 포함한 기본서류를 요청했고 추가로 우리 가족에 관한 히스토리를 원했다. 주입식 교육과 4지선다에 익숙한 한국사람에게 가족의 소개가 담긴 히스토리를 만들어 보내라니, 우리는 랩탑을 켜고 키보드에 손만 올려두고 있었다.


남편은 연애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구구절절 사연과 다양한 사진을 첨부해서 우리 가족의 모든 역사가 담긴 수십 장의 PPT를 만들어 부동산 매니저에게 보냈고 다음날 집주인이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렌트집의 계약성사는 아니라고 했다. 단지 만나보고 싶다고..


짧은 비자를 가진 외국인이라도 우린 당신의 가전과 집기들을 내다 팔고 본국으로 도망가는 외국인이 절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기에 최대한 명품로고가 크게 박힌 가방과 시계를 찼다. 초록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이 나라에서 명품백과 구두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해 그동안 옷장에 넣어놓고 꺼내본 지 오래됐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명품가방과 시계, 주얼리를 꺼내 그 모든 것을 풀착장하고 집주인을 만나러 간다.




약속시간, 부동산 매니저는 나오지 않았다. 집 앞에서 주인이라고 소개하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는 수수한 차림에 주름진 얼굴이지만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부동산 매니저와 오랜 친구사이로 자신이 직접 우리를 보고 싶었다고 한다.


어제 우리 가족의 히스토리를 보고 감동을 했다고도 했다. 처음 본 우리를 진심을 다해 맞아주고 말 한마디 한마디 따뜻하게 전하는 그녀 앞에서 내 몸을 명품으로 도배하고 다이아 귀걸이를 반짝이며 서있는 내가 머쓱해졌다.


남편은 아이들이 지금 학교에 있어 같이 오지 못해 아쉽지만 당신을 함께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녀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 말하며 나중에 그런 기회를 만들자고도 했다.


부동산 매니저 없이 집주인을 직접 만난 것도 처음이고, 이게 어떤 단계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우리를 위아래층으로 안내하며 집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조명 하나에도 의미가 있었고 실내 돌계단에도 다 이유가 있는 이 집. 주인의 애정이 곳곳에 듬뿍 담겨있다.


집 주변의 이웃에 관해 천천히 걸으며 대화하다 현관문 앞에서 집주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 키를 건넸다.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녀는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허락했다.


남편의 생일에 집에서 나가달란 말을 들었다. 비자를 잃었던 그날처럼 또다시 뉴질랜드가 싫었고 빵집 알바를 끝내고 아이들을 하교시키러 헉헉대며 높은 언덕을 오르며 아래 내려다보이는 수많은 집들 중에 우리 네 식구 허락하는 집 하나가 없다는 것에 서러웠다.


우리에게 온 유일한 연락. 마지막 남은 기회라 생각해 부티나는 착장으로 집을 나섰지만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것 같다. 따뜻한 아우라를 가진 집주인은 부티나는 명품을 본 게 아니었다. 해외살이를 막 시작한 우리 가족 자체를 본 것이다.


우리는 오늘 두 번째 집을 구했고 하나의 산을 넘었다.

그리고 더 높아진 렌트비에 내일 출근의 힘이 불끈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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