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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h Sep 01. 2023

쫓아 낼 궁리, 쫓겨 날 신세

남편의 생일에 받은 기가 막힌 선물

빵집의 홀에는 며칠째 내가 퇴근할 때까지도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앉아 계신다. 평범한 손님인 줄 알았는데 사장님과 사모님이 번갈아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온다. 여전히 나는 사모님과 사장님에 관련된 것이라면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니 일절 묻지도, 자세히 대답하지도 않는다.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이유가 있다.


단발머리 언니가 일을 할 때 사장부부는 말다툼을 했다. 좁은 작업장에서 사장님과 사모님은 각자의 빵을 만들고 이동하느라 동선이 꼬여 부딪혔고 사모님이 들고 있던 트레이 위의 빵이 우르르 바닥에 떨어졌다. 사장님은 사모님에게 조금 기다렸다 움직이면 이런 일이 없었지 않았겠냐 소리를 치고, 사모님은 영업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더 빨리빨리 하지 않는 사장님에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단발머리 언니는 오늘 날씨가 좋아 손님도 많을 것 같은데 기분 좋게 일을 시작해 보자는 말을 하며 바닥에 떨어진 빵을 대신 주웠다. 사장님은 머쓱했는지 더 이상 말은 안 했지만 사모님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냐, 그전에 내 남편과 무슨 말을 했길래 당신 말 한마디에 남편이 저렇게 입을 다무냐, 일하러 나와서 남자를 꼬시느냐...


정말 정신이 제대로 나간 사람 같다며 단발머리 언니는 학을 떼었다. 내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문자 한 통이 왔다.


정신적 충격이 너무 크네요.
전화도 못 받겠어요.
오십 넘은 내 인생에 처음으로
지우고 싶은 순간이 생겼어요.
미안해요.



그리곤 사라졌다.






"집을 산다는 사람 가게에 와서 빵 하나 달랑 사서 몇 시간째 앉아 있는 거야! 좋은 집을 찾으려면 움직여야 될 거 아니야! 저래서 언제 집을 사! 아휴 속 터져!!"


내가 묻지 않아도 사모님은 타인의 험담으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홀에 앉아있는 여성은 부동산 매니저로 그녀의 첫 집을 구매하는데 잘못 걸린 또 하나의 희생양이 된 듯하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그녀를 사모님은 반기지 않았고 그녀가 보여주는 집들은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보는 눈이 없다고 침이 마르도록 험담이다. 사모님은 사장님이 부동산 매니저와 홀에서 대화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빵 나올 시간 됐다고 빨리 들어오라 소리를 빽! 지른다.


내 뒤에서 혼잣말을 하던 사모님은 나에게 어디에 사냐고 묻는다. 방이 몇 개고, 매주 렌트비를 얼마 내냐고. 그녀의 험담에 동조는 안 해도, 질문에 답은 해준다. 내 답을 듣더니 정색하며


"남의 집 일 하면서 뭐 그렇게 비싼 집에 살아? 거기 동네 좋아?"


나 이제는 사모님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안다. 숨 쉬듯 상대방을 후려치며 입만 열면 자신의 모자란 인격을 드러내는 사람. 그래서인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로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난다기보다 그녀가 또 어떤 재미난 말을 할까 궁금해진다.








아이들 학교와 가까울 것, 안전하고 조용한 동네, 마당이 있는 2층집, 외부인이 들어올 일 없는 cul de sac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은 그런 집을 만났다. 집에 포함된 난방시설 하나 없었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난방텐트와 온수매트로 아이들은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아침마다 빵집에서 집 구입에 관한 볼멘소리를 매일 듣다 보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우리의 집이 더 소중했다.


봄이 오며 화창한 날씨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깨면 우리 가족은 산책 겸 화원에 들러 파릇파릇한 모종과 알록달록 예쁜 꽃화분을 사다 심으며 봄을 맞이했다.


11개월 전 우리는 유학원의 정착서비스를 통해 뉴질랜드의 첫 렌트집을 얻게 되었다. 유학원 직원은 히트펌프도 없는 집이, 시세에 비해 비싸다며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직원은 현 집주인이 집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만약 렌트를 한다면 오래 살 수 있을 거라 했다.


우리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그것.


아이들 초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적어도 6년이니 한 곳에서 오래 동안 살고 싶었다. 더구나 아이들 학교와 가까우니 렌트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우리 가족 적응을 위한 첫 집으로 이곳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남편의 생일, 기가 막힌 선물



남편의 생일 전날, 내일 저녁은 예쁘게 꾸며놓은 마당에 앉아 BBQ를 할까, 데크에서 아이들과 피자파티를 할까 고민을 하다 해가 좀 길어졌으니 살랑살랑 봄바람맞으며 BBQ를 먹고 노을 보며 마시멜로도 구워 먹자 했다. 학교에 간 남편이 집에 들어오며 장을 봐오기로 했다.


늘 웃는 얼굴로 집으로 들어오던 남편은 자신의 생일에 하얘진 얼굴로 들어온다.


남편의 생일날,

부동산 매니저에게 퇴거 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집주인이 집을 팔 거란다. 4주 안에 나가 달란다.


뉴질랜드 해외살이 첫 생일선물로 남편은 퇴거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뉴질랜드로 들어온 지 10개월 만에 두 번째 집을 찾으러 다닌다.


유학원의 정착서비스 기간도 끝나서 그런지 그렇게 친절하던 유학원 직원은 우리의 급한 사정에 관한 질문에 냉소적인 대답을 하다 이내 카톡에 영영 대답이 없다.


얼마 전까지 비자문제로 마음고생을 했더랬다. 만약 해결이 안 된다면 짐 싸서 한국으로 들어가자 수십 번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한 비자문제가 드디어 해결돼 이제 안 쫓겨나고 몇 년 살 수 있어 다행이다 한시름 놓은 지 얼마 됐다고….


이제는 집에서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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