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품질 감정사가 선택한 커피
영현 선배는 일산에서 만난 술친구이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위지만 ‘술친구’라는 말이 좋다고 한다. 정말 술만 마시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우리에겐 각별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직도 그 밤을 생각하면 마음이 흔들리면서 별이 쏟아져내리는 것만 같다.
선배를 처음 보던 순간에는 프랑스 여배우가 떠오르기도 했고, 술 취한 기세로 노래방에 달려가 춤을 추며 노래하던 순간도 있었다. 홍상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나오는 ‘봄이 오면’을 부르면서, ‘건너 마을 젊은 처자’란 가사를 ‘젊은 총각’으로 나도 모르게 바꾸어 부르자, 대번에 알아채고 ‘깔깔’ 웃으며 놀렸다.
우리가 함께 술 마시는 순간에는 노래 ‘봄이 오면’의 따뜻함이 있었다. 편안함도 있었다. 정이 있었다.
어느 날 술친구가 먼 나라 여행을 다녀오면서 ‘루왁 커피’를 선물했다. 브런치에 올린 내 글 가운데 루왁 커피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 것을 선배가 본 것은 아닐까. 술자리에서의 엉뚱한 나의 발언들을 늘 ‘기발함’으로 바꾸어주던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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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 커피로 알려진 커피 루왁은 고양이를 닮은 포유류 사향고양이가 감별해 낸 프리미엄 커피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루왁 커피’에 한해서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품질 감정사인 것이다. 사향고양이가 커피 품질 감정사가 된 연유는 이러하다.
곤충과 파충류 등과 더불어 과일로도 배를 채우는 사향고양이는 가장 잘 익는 열매를 골라먹는 미식가인데, 그 미식가 사향고양이가 가장 잘 익어 맛있는 커피콩을 먹고 배설한 것에서 탄생한 것이 ‘루왁 커피’이다.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탄생 스토리이다. 사향고양이가 골라 먹은 잘 익은 커피 열매의 씨는 소화될 수 없기에 그대로 식도를 지나 위장을 지나 대장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커피콩의 가공작업에는 많은 인력과 기계가 투입되는데 사향고양이 똥에서 나온 커피콩은 이 가공작업을 고양이 내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끝낸 상태로, 자연의 힘과 우연이 절묘한 궁합으로 탄생시킨 명품 커피콩이다. 사향고양이의 위장과 소장, 대장을 지나면서 커피껍질과 과육과 점질이 저절로 모두 제거되는데, 사향고양이의 위에 있는 효소가 단백질을 분해해 커피에 특이한 향미를 더해주어, 사향(사향노루 수컷의 사향낭에서 얻어지는 흑갈색 가루) 냄새가 감돌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호사가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커피 루왁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명성이 자자한 커피, 비싼 커피가 되었다.
영국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루왁과 블루마운틴을 섞은 ‘Caffe Raro’라는 커피를 한 잔에 50파운드에 팔고, 신라호텔 1층 로비에 자리 잡은 카페 ‘더라이브러리’에서는 루왁커피 한 잔이 4만 9000원이라니, 가격이 참으로 ‘사악하다’.
강릉에 자리한 커피집 보헤미아에서 주인이 직접 내려준 수마트라 만델링의 깊은 맛을 기억한다는 커피 마니아이자 중독자인 김갑수는 루왁 커피를 마시고 마일드하고 맥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유명한 커피가 된 루왁에 대한 맛의 기억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나에게 루왁 커피는, 멀리 여행을 갔다 나를 생각하면서 그 귀한 커피를 사서 집까지 배달해 준 동네 술친구의 ‘마음’이 담긴 커피다. 그런 커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셨다.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그 커피 맛이 어떤지, 그 커피를 마시고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