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품질 감정사가 선택한 커피
매주 목요일은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집을 비운 사이 전화벨이 울린 것을 미처 몰랐다. 어여쁘신 동네 술친구가 우렁각시처럼 ‘루왁 커피’를 놓고 갔다. 그 비싼 ‘루왁 커피’를! 커피맛에 대해 깊고 섬세하게 구별하지 못하다 보니 자꾸 값을 끌어오는 우를 범하는 일을 어찌할 수가 없다.
사향 커피로 알려진 커피 루왁은 고양이를 닮은 포유류 사향고양이가 감별해 낸 프리미엄 커피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루왁 커피’에 한해서는 사향고양이가 커피 품질 감정사인 것이다. 사향고양이가 커피 품질 감정사가 된 연유는 이러하다.
곤충과 파충류 등과 더불어 과일로도 배를 채우는 사향고양이는 가장 잘 익는 열매를 골라먹는 미식가인데, 그 미식가 사향고양이가 가장 잘 익어 맛있는 커피콩을 먹고 배설한 것에서 탄생한 것이 ‘루왁 커피’이다.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탄생 스토리이다. 사향고양이가 골라 먹은 잘 익은 커피 열매의 씨는 소화될 수 없기에 그대로 식도를 지나 위장을 지나 대장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커피콩의 가공작업에는 많은 인력과 기계가 투입되는데 사향고양이 똥에서 나온 커피콩은 이 가공작업을 고양이 내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끝낸 상태로, 자연의 힘과 우연이 절묘한 궁합으로 탄생시킨 명품 커피콩이다. 사향고양이의 위장과 소장, 대장을 지나면서 커피껍질과 과육과 점질이 저절로 모두 제거되는데, 사향고양이의 위에 있는 효소가 단백질을 분해해 커피에 특이한 향미를 더해주어, 사향(사향노루 수컷의 사향낭에서 얻어지는 흑갈색 가루) 냄새가 감돌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호사가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커피 루왁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명성이 자자한 커피, 비싼 커피가 되었다.
영국 런던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루왁과 블루마운틴을 섞은 ‘Caffe Raro’라는 커피를 한 잔에 50파운드에 팔고, 신라호텔 1층 로비에 자리 잡은 카페 ‘더라이브러리’에서는 루왁커피 한 잔이 4만 9000원이라니, 가격이 참으로 ‘사악하다’.
강릉에 자리한 커피집 보헤미아에서 주인이 직접 내려준 수마트라 만델링의 깊은 맛을 기억한다는 커피 마니아이자 중독자인 김갑수는 루왁 커피를 마시고 마일드하고 맥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유명한 커피가 된 루왁에 대한 맛의 기억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이다.
나에게 루왁 커피는, 멀리 여행을 갔다 나를 생각하면서 그 귀한 커피를 사서 집까지 배달해 준 동네 술친구의 ‘마음’이 담긴 커피다. 그런 커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셨다. ‘마음’이 담긴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그 커피 맛이 어떤지, 그 커피를 마시고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