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와 함께 20세기 가장 중요한 그림책의 하나로 손꼽히는 《깊은 밤 부엌에서》는 미키(Mickey)라는 아이가 어느 밤 부엌에서 펼치는 상상의 모험을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논란에 휩싸인 책이다.
주인공 미키가 ‘옷이 모두 벗겨진 채로(이것도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요리사들에 의해 ‘빵 굽는 오븐에 넣어질 뻔’ 하는 대목이 논란이 되었는데, 훗날 샌닥은 나치에 학살당한 친척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그림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출간된 후 칼데곳 아너상을 비롯하여 ‘뉴욕타임스 선정 1970년 뛰어난 어린이책’,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 일러스트 그림책’을 비롯하여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비치를 거부하기도 했다.
미국의 빈민가 브루클린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모리스 샌닥은 친척들이 홀로코스트로 죽는 것을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저녁 식사 시간에 늦게 오면 “네 사촌들은 공놀이를 즐기기는커녕 지금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어. 죽었을지도 모르지”라는 엄마의 말에, 친척들이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자신은 염치없이 재미있게 놀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는 샌닥의 고백은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난해서 네 번째 아이를 원치 않은 부모는 뱃속에 든 샌닥을 지우기 위해 아빠가 엄마를 사다리에게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고, 약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부모가 원하지 않았던 아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은 모리스 샌닥에게는 큰 상처였고 그는 평생 지독한 우울과 싸워야 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깊은 밤 부엌에서》은 모두 각각 다른 그림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굉장히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그림책들이다. 그 가운데서 나는 만화풍 상상력이 넘치는 《깊은 밤 부엌에서》를 가장 좋아한다. “어린이의 갈등이나 고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세계를 그린 것은 어릴 때의 경험을 생각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라는 샌닥은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어린이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사랑이 위협의 형태를 띤다(문학평론가 스티븐 그린블랫).”
개성이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자신의 그림처럼 모리스 샌닥의 삶 또한 독창적이면서 독특하였다. 동성애자인 모리스 샌닥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정신분석학자인 유진 글린(Eugene Glynn)과 50년간 연인 사이를 유지했다. 샌닥의 곁에는 연인 글린뿐만 아니라 가정부 카포네라와 와인버그(글린 지인의 아들)도 있었다. 넷은 마치 화목한 가족과도 같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샌닥의 곁에서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카포네라는 열한 살 때 모리스 샌닥을 만나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이다. 똑똑했지만 가난해 공부를 하지 못한 카포네라는 모리스 샌닥 집에서 살며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같은 모습으로 샌닥과 함께 살았다. 샌닥의 내면을 이해했고, 그의 작품을 이해했고, 그리고 그가 그림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배려해 주었다.
가족 아니지만 더 가족 같은 사람들 속에서 샌닥은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일을 하며 자신의 뿌리 깊은 고통에서 잠시 해방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에 열중하고 있으면 성격의 단점이나 기질의 흠결,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일의 내가 유일하게 즐기는 진정한 행복”이라고 모리스 샌닥은 말했다.
부모와 자신의 반려견 제니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힘든 시기를 통과했는데 그 슬픔과 두려움을《깊은 밤 부엌에서》를 그리며 견뎌냈다.《깊은 밤 부엌에서》의 기저에 담긴 것은 끔찍한 트라우마인데 작가는 그것을 넘어 경쾌하게 상상력을 펼쳐나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을 떠올리면 참으로 놀라운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리스 샌닥의 삶을 알고서 이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책을 자세히 보면 ‘champion’이란 글자가 있는 깃발이 보인다. ‘champion’이란 말은 샌닥에게 특별한 말이다.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병실 간호사가 그에게 해준 말이다. 간호사가 말해준 ‘champion’이란 말로 인해 용기를 얻고 그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사랑하던 반려견 ‘제니(Jenny)’의 이름도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험’이라던 모리스 샌닥이 여든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마지막 곁은 카포네라가 지켰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만들어낸 그림책에는 그가 사는 동안 통과했던 고통과 기쁨과 즐거움과 분노 등 모든 감정의 색채, 모든 경험의 흔적이 무수한 변주를 이루면서 담겨 있다. 그의 그림책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