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의 거울, 나의 교실
"쌤, 저 뭐 달라진 거 없어요?"
복도를 걷는데, 1학년 녀석 하나가 앞을 막아서며 배시시 웃는다. 가만 보니 앞머리를 귀엽게 올려 묶었다. 아직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얼굴에 앙증맞은 포인트다. 3학년쯤 되면 다 컸다고 이런 질문은 잘 안 하는데, 1학년 아이들은 유독 자신의 작은 변화를 알아봐 주길 바란다.
"어머, 앞머리 묶었네? 잘 어울린다!"
내 말에 아이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해진다. 어깨를 으쓱이며 총총 교실로 향하는 뒷모습이 폴짝이는 것처럼 가볍다. 저 작은 칭찬 하나가 아이의 하루를, 어쩌면 며칠을 기분 좋게 만들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말을 자양분 삼아 자란다.
문득 사회학자 찰스 쿨리(Charles Cooley)가 말한 '거울 자아 이론(Looking-glass self - theory)'이 떠올랐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생각하듯,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를 상상하며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간다는 이론이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교실은 수많은 거울이 서로를 어지럽게 비추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그리고 나를 비춘다. 내가 무심코 던진 농담 한마디에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나름 격려랍시고 건넨 말이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친구가 던진 "돼지"라는 잔인한 한 마디에 스스로를 못난 틀에 가두고 괴로워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 많은 칭찬과 격려의 말을 건네야 했다.
때로는 거울 자체가 흐릿한 아이도 있다. 칭찬을 건네도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젓는, 늘 자신 없어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타인이라는 거울보다 이미 내면에 자리 잡은 '부족한 나'라는 거울을 더 강하게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어떤 아이는 스스로 날카로운 거울이 되어 친구들을 끊임없이 평가한다. "쟤는 왜 저래?" 묻는 그 아이의 시선은, 실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또 다른 거울 자아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 혹은 그 아이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칭찬과 격려, 때로는 단호한 지적이 필요했던가.
나 역시 그 거울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수업 공개의 날, 동료 교사나 학부모님께 "수업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럴듯한 교사가 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 칭찬을 원동력 삼아 더 좋은 수업을 고민해야 하는데, 때로는 나도 모르게 교만에 빠질까 두렵다. 아직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라는 거울은 더 직접적이다. 평소 아이들 앞에 서는 예의라 생각하며 주로 셔츠를 입는데, 하루는 오후 봉사활동 때문에 캐주얼한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갔다. 몇몇 아이들이 대뜸 "와, 쌤! 오늘 완전 멋있어요! 여태 본 중에 제일 나아요!"라며 스타일 바뀐 걸 알아봤다. 그 말에 복도를 걷는데 괜히 어깨가 펴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참 웃기지 않은가. 반대로 "쌤, 머리 염색하셔야겠어요."라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는 온종일 내 흰머리가 온 세상에 드러난 것 같아 괜히 위축되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거울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듯, 아이들도 나에게 그렇다. 그리고 이 교실 밖, 더 넓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심지어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도. 내가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당신 안의 어떤 모습이 더 커지기도, 혹은 작아지기도 한다. 무심코 던진 나의 말 한마디, 나의 눈빛 하나가 한 사람의 자아를 만들 수도, 부서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나의 말 한마디가 혹시라도 아이에게 낙인이 되어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될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결국 우리는 타인의 평가와 시선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쿨리의 말처럼, 사회적 자아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상되고 만들어진다. 사회 교과서에서는 자아 정체성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아 정체성이란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성을 깨닫고 자신의 성격, 가치관, 관심 영역 등을 분명하게 이해한 상태를 말한다. 건전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려면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점검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비상교육, 『사회 1』, 130쪽)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개념을 가르치는 나 역시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되새긴다. 10대, 20대를 거치며 수많은 책과 영화,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다정함'이라는 가치관은 내가 아이들 앞에, 그리고 세상 앞에 서는 방향키가 되었다.
그렇다면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왜곡된 거울이 아니라, 그 아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맑게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 아닐까. 그리고 나아가 아이들이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에 너무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 아닐까.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내가 추구하는 '다정한 교사'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웠을까? 교실 문을 나서며, 나는 또다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