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무니에게 외마디 인사를 건넨 후 머리털이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영어발음이 어떻고, 순서가 뒤바뀌고, 맞는 말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얼굴이 나의 미소가 얼마나 당신을 만나서 반가운지 이미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의 용기는 불광로처럼 끓고 있었기에 보이는 게 없었다. 밝은 웃음으로 짧은 회답을 듣고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돌아서서 다섯 발자국 걷는 순간 나의 심장은 바운스바운스.
용기를 내어 영어로 마음을 표현했다는 짧은 경험이 자신감을 만들었다.
그날을 계기로 더욱 전력질주하였다. 피터 무니가 초밥집 단골이라는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 해외촬영이 끝나고 토론토에 왔기 때문에 한동안 여기 머무를 것이란 이야기는 날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고된 하루를 잊게 했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스트릿카 창문에 혼자 피식피식 웃어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짧고 굵은 메시지를 남기고 싶어 어떤 말을 할까 고민을 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종이에 손글씨로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 너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어. 메일주소 하나 남겨줄래?”
다음날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피터무니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며칠 째 피터무니는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애꿎은 쪽지만 너덜너덜해져 갔다. 잊고 있던 어느 날 영화처럼 피터무니가 식당을 다시 찾았다.
‘단골 맞는구나!’
주문을 받으러 가면서 쪽지를 전해주려고 했는데 어느 여자와 함께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니 질투가 나서 쪽지를 건네려던 내 손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다시 앞치마 속으로 쪽지를 집어넣고 돌아섰다. 그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난번처럼 자신 있게 메일주소 하나 알려달라고 말하면 될 것을. 무슨 로맨스를 쓴다고 쪽지까지 주고받는 짓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접시를 양손으로 받치고 한쪽 손에 쪽지를 쥔 채로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피터무니와 동석한 여성과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쪽지를 비밀스럽게 받아 드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있는 눈치였다. 순간 실수를 했나 싶었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으니 모르겠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카운터에 계산을 하러 온 그가 나에게 다시 쪽지를 건넸다.
캐나다 배우와 비밀스럽게 메일주소를 쪽지로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불륜 로맨스를 찍고 있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너무 웃겼다.
별거 있나. 외국에 나와서 연예인에게 팬레터 한번 써보고 직접 만나는 일을 두 번 할 수 있을까?
놓쳐서는 안 될 일생일대의 기회란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