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 선생이 장손에게 물었다. 1979년 10월 26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셨다. 손자는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날이라고 대답했다.
김재규가 나쁜 놈이냐고 물으셨는데 참으로 답변드리기가 난감했다. 저어 할아버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것은 나쁜 놈이 맞는데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유신독재를 1979년에 종식시킨 일은 잘한 일입니다 했더니 선생은 빙그레 웃으셨다.
할아버지가 웃는다는 것은 답변이 맘에 들었다는 뜻이다. 할아버지 가경 선생은 김재규를 의인이라고 하셨다. 딱 60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인 것만큼이나 이나라 조선땅을 위해서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국민교육헌장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본 놈 교육칙어를 말만 몇 자 바꾼 것이기에 전혀 교육적으로 도움 안 되는 천자문도 모르는 놈들이 문교부장관 박정희 특별보좌관 감투나 쓰고 전혀 조선 선비정신이 아닌 어설픈 사무라이 정신만 앵무새처럼 조잘 대던 조선 땅에 선비정신이 살아나고 풍류도가 살아날 기틀을 김재규 의인이 박정희 총독을 시해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선비정신과 김재규랑 무슨 상관인가요 물었다. 장손 나중에 때가 되면 김재규 재판 기록을 정독하고 최후진술 공개되면 잘 들어보라고 하셨다.
일단 박정희를 죽임으로 이 나라 학생들에게 선비정신보다는 사무라이 정신을 우위에 두는 것이 사라지기에 가수들이 노래에 창의성이 고양되어 좋은 노래가 나와 좁은 조선반도를 넘어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한국의 노래가 비틀스 노래만큼 유명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가경 선생은 1979년 10월 26일에 총통이 죽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방탄소년단을 예견하신듯하다. 만약에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이나 줄 줄 외운다면 강남스타일이 탄생했을지 방탄소년단의 젊음이 톡 톡 티는 가사가 지어졌을지 의문이 든다.
그 시절 가경 선생은 복덕방에 가면 왕따 노인이었다. 복덕방은 요즘 공인중개사 자격증 생기기 이전 중개를 하고 노인정 노릇을 하던 곳이다.
노인들이 박정희 죽음을 애석해할 때 조선 발전을 위해 잘 죽었다고 한마디 했다가 왕따를 당했다.
김재규 이야기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었을 때 3 군단장으로 재직했다. 이 목숨 하나 바쳐 정의와 자유가 넘실거리는 민주국가 대한민국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의문품을 가지고 3군단을 방문하면 그를 영내 감금하고 하야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해 서부전선은 다 돌고 동부전선은 춘천 2군단만 돌고 현리 군단은 못 왔다.
건설부 장관이 되었다. 이때도 공사현장에서 사고를 가장한 박정희 시해를 계획했으나 실천을 못했다.
삽교천 방조제 준공을 마치고 궁정동 안가에서 행사연회가 생겼다. 하늘이 준 기회로 생각했다.
탕 탕 거사를 했고 성공했다. 이제 국민 여러분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고 그 자유는 거저 된 것이 아니고 김재규 박선호 박흥주 유성옥 김태원 이기주의 피의 대가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경 선생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것은 소의를 버리고 대의를 택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박정희는 권력을 이용해 많은 여인을 겁탈한 것이 박선호 진술로 확인되었다. 김재규가 박선호 진술을 막았으니 그 정도지 사실대로 다 불었으면 전 세계 그날의 해외토픽이 될 뻔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죽어도 싼 놈일 텐데 용기 있는 김재규가 은인자중 하다가 부산의 데모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해 10월 26일에 시해를 하여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눈물바다로 만들었으니 그 정도였지 그대로 박정희가 살았다가는 부산에서의 시위가 서울 인천 대전 대구 광주로 이어졌으면 정말로 김일성에게 조신반도 통일의 기회를 주었을 것을 김재규가 막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박정희 서거 후에 바로 87년의 민주화나 김영삼이 당선되어 문민정부가 바로 오지 못하고 전두환의 신군부가 5공을 노태우 추종 세력이 6공화국을 형성했지만 거대한 역사 수레바퀴는 음지에서 양지를 향하여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