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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13

장모와 평양 사는 언니

by 함문평

사람들 중에는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과 통일 없이 사는 것이 낫다는 사람이 언쟁을 하면 중간에 당장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통일하자는 사람이 있다.


통일을 바라지 않거나 100년 후에나 가능하겠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6.25를 경험하고 이산가족이 된 분들이 분개하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정권유지에만 혈안이 되어있지 통일을 위한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6.25 시기에 20대였던 분은 남이나 북이나 대부분 돌아가시고 남은 분 몇 명 안 되는데 왜 추석에 일회성 뉴스로 100 가족 200 가족 한정해서 하는지 한심한 놈들이라고 가경 선생은 일갈했다.


금강산에 숙박시설이 부족하면 텐트를 쳐서라도 만나게 하면 되지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이 중요하지 숙박시설 탓하겠냐고 하셨다.

솔직히 아내가 나를 찜한 것이 아니라 장모가 간성 22사단 불곰대대 9 중대장실에서 나의 얼룩무늬 군복에 선명한 대위 장교 계급장이 멋있다고 선 안 본다는 딸을 강제로 르망에 태워 서울서 진부령을 넘어왔다.


1990.4. 어느 일요일 간성우체국 빨강 우체통 앞에서 나를 픽업해 속초 초우라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면담을 하고 그날부로 딴맘 먹지 못 하게 금반지를 만들어 꼼짝 못 하게 끼워주셨다.


장모님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부모님 계시냐? 형제는 몇이냐? 시골의 재산은 어느 정도 되냐? 다 대답을 하였으나 대위 월급이 얼마냐는 질문에 그것은 국가 2급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장모는 고향이 제주도였고 오빠나 남동생이 공부를 잘해도 그놈의 연좌제 때문에 장교도 공무원도 못하셨단다.


이유는 아래 사진에 나오는 언니가 제주 4.3 사태에 육지로 가는 배를 밀항으로 육지로 와서 지리산 빨치산에 합류했다. 모스 부호 전송도 잘하지만 기억력이 특출 나서 비밀 문건을 암기하여 다음 부대에 전달하고 남자 경호 대원이 경호해 주면 비밀문서를 암기로 전라도 일대를 돌면서 전파했다.


점점 국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태백신맥 능선을 타고 북으로 갔다. 그 일로 제주도 애월읍 장모님 형제자매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사관학교에 갈 수 없었고 9급 공무원 시험 우수하게 봐도 연좌제로 임용이 안되었다.


하는 수없이 그런 연좌제 없는 장사를 하거나 사기업에 취직을 했다. 상봉동에서 보따리 하나 들어주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1991년 5월 5일 청첩장을 제주 일가친척에게 돌리면서 펑펑 우셨다고 한다.


울 사위는 대한민국 장교라고 자랑하셨다. 그러면서 걱정의 눈빛으로 질문하셨다. 처가가 빨치산 집안이라도 소령 진급에 이상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저희 집도 아버지의 제일 큰형이 의용군입니다.


저는 그런 내막도 모르고 고3졸업하고 사관학교 시험 잘 보고도 최종 낙방했는데 박정희 서거 후 법이 개정되어 제가 일단 육군 소위로 임관했고 중위 거치고 대위까지 진급한 이상 더 이싱 연좌제는 물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장교 사위 얻었다고 제주도에 온천지 소문을 다 내셨다.


연좌제로 오빠 남동생 공부 잘하고도 공무원 못했는데 사위가 다이아몬드 세 개가 반짝거리는 대위라고 애월읍에 소문을 냈다.


이제 눈물의 세월이 지나 북에 계신 언니를 만났다. 이런 만남이 장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또 오겠는가.

언니 눈물 닦아주는 안경 쓴 박춘자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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