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횡성에서 할아버지가 소 99마리 다 팔아 사용해도 되니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있으면 젊어서 하라고 하셨다.
연애도 잘하고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여자를 만나면 횡성 할아버지에게 인사 오면 금 팔지를 해주신다고 할머니 반지 목걸이 팔지를 압수해서 금은방에 부탁해 가경 선생 나름 규격으로 골드바를 준비하셨다.
만난 여자 이야기가 소설 백서에 실려있다. 총 4명의 여자에게 찜을 당하고 팽을 당했다. 실명 그대로 하면 명예훼손에 걸릴까 봐 한자씩 변경해 소설에 삽입했다.
맨 마지막 여자에게 나의 자취방으로 데려와 프러포즈를 하긴 했는데 어설프게 했다.
야 최성현 졸업하고 바로 육군 소위 임관하면 99.99% 전방 가는데 나 중위 전역할 때까지만 내 책 좀 보관해 주라고 했더니 그녀가 하는 말 나 책 안 좋아해 그냥 헌책으로 팔고 전방 가 했다.
하는 수 없이 용달차 하나 불러 졸업식 다음 날에 책을 실어서 강림 본가에 두고 임관하고 전방으로 갔다.
소대장을 마치 그 중위로 진급해서 수도방위사령부로 전출을 갔다. 그때가 유명한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있던 시기였다.
겁이 났다. 수방사에 계엄소대장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출 신고받는 대대장 연대장 두 분 말씀이 똑같았다. 혹시 말이야 계엄 소대장이 되면 함 중위 절대 민간인과 함 중위 부하가 시비 붙으면 무조건 함 중위가 나서서 사과하고 병사와 민간인을 슬기롭게 떼어놓으라고 하셨다.
천만다행으로 계엄은 선포 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신병교육대 인시장교와 화생방 교관이었다. 그때 훈련병 제자 중 한 명이 당시 평민당 총재 김대중 막내아들 홍걸이 었다.
화생방 교육을 마치고 교육장 산에서 대대로 하산을 하는데 행정병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하는 말이 함 중위님 조부우독 급래요망 관보입니다. 대대장님이 보시고 휴가증 5일 했는데 돌아가시면 삼우제까지 지내고 오라고 하셨고 신고는 생략할 테니 바로 떠나라고 하셨다고 알려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장손이라고 무조건 사랑을 주시고 70년대 학교나 관공서 어려워하던 시절에도 당당하게 교장실 문을 지팡이로 밀어여시고 기정방문도 없이 담배 안 피우는 모범생 장손 종아리 멍들게 한 선생 당장 당신 앞에 사과 안 하면 장손 원주중학교나 강릉함 씨 시조가 있는 강릉중학교로 전학을 가겠다고 해서 담임이 할아버지에게 싹싹 빌어서 전학 안 가고 공부한 일부터 파노라마처림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지니 갔다.
강림에 걱정으로 도착했다. 웬걸 위독하신 조부가 정거장에 나와계셨다. 아니 할아버지 위독하시다니 여기 계시냐고 했더니 위독하지만 장손 부대서 온다는 말에 아프지만 나오셨다고 했다.
가경 선생이 아픈 곳은 마음이라고 하셨다. 90이 넘은 몸이라 죽는 것은 두렵지도 미련도 없다마는 장손 손주며느리를 보고 죽어야 할 텐데 하시면서 내일 어디 같이 가자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