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보따리 들어준 착한 함 대위는 어른 네 분이 정말 좋아했다. 요즘 누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손이 부족해 쩔쩔맨다고 보따리를 선뜻 들어주겠는가.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처럼 5월에 만나 얼굴 알고 6월에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 인사하고 결혼일은 10월 2일로 하기로 했다.
양가 친한 분들에게는 구두로 전달하고 청첩장을 인쇄 맡겼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청첩장이 대세지만 1990년 7.8월은 인쇄소에 맡기고 종이 질과 디자인 난이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1990.10.2로 인쇄를 마친 상태에서 돌발변수가 생겼다.
간성 불곰 대대는 3대대이고 철책은 1대대가 맡고 있는데 10월 1일이 철수 2대대가 철책으로 이동하는 것이 순서였다. 현재 2 대대장이 보직 만료가 12월이라 철책에서 이취임식을 할 수는 없다고 사단장 명령으로 3대대가 먼저 투입하고 1991년 4월 철수하면 2대대 투입하라는 사단의 명령이 대외비로 하달되었다.
횡성 본가와 서울 처가에 돌발 소식을 전했다. 예비 아내는 울고 나 결혼 인해 하는 것을 장모님이 달랬다. 장모님이 함 서방 그럼 연기하는 결혼식 이자는 언제로 하지 하는 물음에 5월 5일 어린이날로 하세요 하고 횡성 가경 선생과
아버지에게도 1991년 5월 5일 결혼식일자로 하고 육군회관에도 팩스로 사용신청서를 보냈다.
유 군 회관 해군회관 공군회관의 결혼식장이 일반 민간 식장보다 좋은 점은 시간이 하루 3회밖에 승인이 안되니 여유 있어 좋았다.
아버지는 어린이날이 결혼 길일인 거 어떻게 알았냐 하시기에 책력 본건 아니고 공휴일이고 철책철수 후 가장 가까운 공휴이이라 정한 거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이날 선물해 주고 애들에게 결혼기념일 선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그날이 길일이라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제주가 전회 매진이 되었다. 하마터면 다음날 갈뻔했는데 처재가 대한항공 근무하면서 모니터로 수시 확인 취소되자마자 확보했다.
장모님 오빠 즉 처외삼촌이 칼호텔에 근무하여 호텔은 쉽게 해결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에 도착하니 신혼여행 부부 중 한 사람이 나를 계속 보더니 저기 혹시 용화사 소대장 하신 함문평 중위 아니세요 해서 보니 대학교에서 교련을 이수해 병장 13명을 추월해 전역한 J병장이었다.
신부 목에는 지구상에 하나뿐인 용화사 소초 대공초소 캐리버 50 실탄 탄두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후임 소대장에게 확인서 1발 부족함 써주고 떠났는데 세상에 신혼여행지에서 만나다니 속에서 대공초소 실탄을 내가 한번 전령이 한번 후임 소대장이 한번 후임소대장 전령이 한번 선임하사 전삼영 중사가 시니어도 699 발이었다. 불과 일 주 전에도 700 발이던 실탄이 일주일 사이에 한 발이 빈 것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 가경 선생이 박정희 백신엽을 미 위하는 이유가 영원한 비밀이 없는데 그들은 자기가 친일을 하고 독립군 잡는 사냥개 노릇을 하고 비밀이 영원함이 없는데 영원할 것처럼 관뚜껑 닫을 때까지 사죄 한번 안 한 깃이 선생을 화나게 했다.
손자도 소위 소대장 가서 소대원에게 첫인사가 여러분과 소대장 사이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또 비밀이 없는 사이가 도어야 낼 전쟁이 터져 우리가 총알받이가 된다면 같이 총알받이가 되어야지 공병호는 있는 집 자식이라고 후방에 배치하고 서광윈은 없는 집 자식이라고 앞에 배치한다면 바쁜 전쟁통에는 알 수 없으나 전쟁 이후 전쟁사를 쓸 때는 다 탄로가 납니다.
여러분이 소대장을 하루는 속일 수 있어도 3일 1달 1년 3년 10년을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했다.
새신부가 화장실 갈 때 나의 신부도 화장실 간 후 그 병장이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첫인사에 하셨는데 제 아내 목걸이 보셨죠. 죄송합니다. 저야 좋다고 아내 목걸이 만들었지만 그 일로 소대장님 고생과 중대장 대대장님에게 혼이 났을 것을 생각하니... 하며 눈물이 글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