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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랬었다

by 함문평

1986.6.16 내가 소대장 부임시기

광주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우리 6 중대장이 떠나기 전 마지막 당부가


소위 여러분!


전방 가면 병사들의 애인 변심 탈영이 제일 문제입니다.


전방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어떻게 병사들의 애인이 전역하는 날까지 변치 않게 하느냐가 소대장 성패의 가름입니다.


그 훈육 말을 듣고 그거 난 한 칼에

해결하지 했다.


왜냐?


난 여자를 편지로 사로잡았다.


첫사랑은 강원도 횡성군 고향 초등학교 같은 반 여학생이었다.


6학년에 서울 XX초등으로

전학 와서 연애편지를 썼다.


얼마나 내가 편지를 잘 썼냐?


58 명 정원에 내가 전학가 57명이

나에게 답장이 왔다.


유일하게 답장 안 온 것이 그녀였다.


난 안다.

그녀가 답장 안 한 이유가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초등학교 시절 1학년부터

3학년 까진 그녀가 1등 했다.


그러다 4학년이 되어 다크호스

함문평이 등장해 1.2-아님 2.1 왔

다 갔다 했다.


그러다 홀연 서울로 전학 가니 거의 요즘 표현으로 멘붕이 된 것이다.


학교가 아닌 강림 5리 그녀 집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거의 한 달 만에 답장이 왔다.


그녀도 어린 나이에 한 달 고민 후 답장이니 최대한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총동원 허서 명문으로

썼다.


반대로 나도 백지에 초안을 쓰고 수없이 고친 후에 답장을 했다.

초등 6부터 고3까지 연애편지를 주고받았으니 얼마나 많은 작문 실력이 향상되었을 것인가?


인생 살이 새옹지마라고 그녀는

ㅇㅇ대 수학교육과 80 학번 난 재수생과 이어지는 삼수생으로 청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82학번이 되었다.


소대장이 되어 연애편지 실력을

발휘했다.


편지 봉투 하나씩 소대원 30명에게 나누어 주고받는 사람에 애인이 있으면 애인 주소와 편지 없으면 부모님 주소와 편지를 쓰게 하고 한 시간 후에 회수했다.


결과는 애인 14명 부모 16명 이어

다.


나는 애인은 애인의 눈에 맞게

부모는 내 부모님도 강원 횡성서 농사 지으신다고 하고 애인들에게는 인사말과 계절

이야기 쓰고 변심 쉽게 말해 고무신 새신을 신고 뛰어도 좋

근데 나는 정보장교다.


정보장교는 정보에 관한 지역

경찰서 정보과도 내가 신분증

제시하고 필요한 정보요구하면

거부 못한다.


지금 ㅇㅇ양이 사귀는 우리 소대

ㅇㅇ군을 아가씨가 버려도 좋은

데 내가 소대장 1988.12.31. 끝나니 그 후에 헤어지기 바란다.


만약 그전에 헤어져 우리 소대 ㅇㅇ군이 탈영하면 탈영병을 잡는 것이 아니라 ㅇㅇ 양을 체포해 군법에 으뢰할 것입니다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난 소대장 마칠 때까지 아가씨들이 면회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엄포 편지 쓴 소대장 얼굴 좀 보자고 소대원 애인과 부모들의 인기남이었다.


솔직히 학교 갈 때는 청주사범대학

공주사범대학 둘 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 나라 교육대계 아님

교육 100년 내다보고 세운 공립

줄 알고 갔는데, 이거 졸업해도

그녀가 나온 국립대 다 임용하고

빈자리 시험 봐 채운다는 거 알고

이거 부모님 알기 전에 도피하고

자 난 학군단에 지원했다.


지금 다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다 행복하게 해 드렸다.


왜냐 우리 고향 강림 최초 예비군

중대장이 예비역 상사였다.


세월이 지나 전두환이 장교로

바꾼 것이 예비역 대위다.


할아버지 팔순에 경찰지서 차석

잎사귀 넷 예비군 중대장 예비역

대위 초등 교장 선생님.

내가 소령 계급장으로 정보사

프린스 접대용 승용차로 가니

완전 동네가 뒤집어졌다.


함재석 옹 어르신 손자가 이

동네 최고라고

그런데 이미 소문은 나 있었다.


중위 시절 신교대 인사장교

하는데 PX관리관이 훈련병 담배

은하수 한산도 균등 판매요구한 거을 무시하고 은하수로 다 팔고 재고 한산도 천 갑을 할아버지 나가는 경로당으로 중위 봉급

218000 원시절 100,000 원의

담배값을 내고 건영화물로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경로 회관

함 재석 옹 수신 발신자는 손자

54세 손 함문평으로 보냈다.


이건 강림 경로당 아직까지 깰 수 없는 최고의 손자 기록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강림초등

학교 100년 사에 기장 훌륭한 손자를 둔 할아버지로 행복하게

94세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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