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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Oct 26. 2023

오빠는 하는데... 아빠는 왜 못해?

"더 쉬다가 천천히 일어나. 얼마가 걸리든 기다릴게". 

"큰 오빠가 보낸 선물+편지 보고 숨 막히게 울었어요." 


정치갈등, 물가상승, 이스라엘 전쟁, 연예인 마약, 전 국가대표 사기결혼 등 쓰레기 같은 뉴스로 가득한 세상. 

보고 싶지 않지만 오늘도 관성적으로 인터넷 포털을 쥐 잡듯이 검색한다. 그런데 눈길이 가는 기사가 있다.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퇴사, 파혼, 우울증을 겪은 여성이 큰 오빠로부터 위로의 선물과 편지를 받고 

숨 막히게 운 사연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쓰레기장에서 금반지를 찾은 느낌이 이런 기분일까?


글쓴이는 회사에서 따돌림당하다가 퇴사하고... 파혼에... 불안, 우울이 겹쳐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고 자신의 상황을 소개했다. 이어 그는 큰 오빠가 방문 앞에 두고 간 선물을 보고 한 시간을 숨죽여 울었다. 사진 속에는 큰오빠가 동생을 위로하려고 놓고 간 편지, 노트, 책, 용돈, 영양제까지 동생을 챙기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현실 남매사이에 이 같은 따스한 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먼저 오빠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글자 한 자 한 자에 동생의 아픔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오빠의 진심이 느껴졌다


"더 쉬다가 천천히 일어나. 일어나고 싶을 때 얼마나 걸리든 기다릴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만 잊지 말고"


이 짧은 문장을 보는데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쿵닥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마음에 쓰나미처럼 밀려오는정체모를 감정이 있다. 뭐지?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는 그 정체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정체는 바로 울 딸이었다.


딸은 현재 24세 청년이다. 금년 2월 천안 소재 사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엄마 닮아 미모는 뛰어난데 머리는 아빠를 닮지 않아(?)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특별한 꿈도, 욕심도 없는 딸은 학창 시절 내내 아빠의 잔소리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빠 입장에서는 잔소리라도 하면 조금 나아질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부모의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아빠의 무례한 언행이 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아내를 통해 인지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딸에게 아픔을 주는 언행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빠 보기 싫으면 네가 돈 벌어서 나가 살아!" 

딸과 사사건건 충돌이 있을 때면 마지막에 항상 나오는 나의 레퍼토리였다.


딸은 힘들어했고 언제부터인가 아빠와 대화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천안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하고 1학년 

기숙사 생활, 휴학기간 포함하여  나머지 4년 동안 딸은 근로장학,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어 자취생활을 하였다. 성실함은 아빠 DNA를 닮은 것 같다. 대학 4년 딸과 떨어져 살다 보니 부녀지간에 쌓인 앙금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관계가 좋아진 것이 아니고 얼굴을 안 보니 싸울 일 이 없던 것이었다.


더욱이 딸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 2023년 1월 학교 추천으로 천안소재 사립대 입학홍보처에 계약직(입학사정관)으로 채용되었다. 비록 계약직이라도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었다는 사실에 온 가족은 말 그대로 잔치분위기였다. 나는 딸의 취업소식을 SNS에 올리며 딸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출퇴근 편의를 위해 직장 주변에 예쁜 원룸도 장만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믿고 또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2개월 정도 직장생활을 경험한 딸은 대학조직의 관료적, 폐쇄적 문화와 선배 동료들과 갈등으로 3개월 만에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퇴사하고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초라하게 컴백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럼 앞으로 무엇할래? 물어보니 이제 생각해 보겠다! 고 대답한다. 

내 상식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대답이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퇴직을 한다는 사실이 내 삶의 경험과 기준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몇 달을 쉬더니 결심을 했는지 취업을 위한 자격증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백수보다는 낳을 것 같아서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졸업후 집에서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딸이 그동안 축적한 재산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듯 보인다. 착잡하다.


그렇게 수차례 국가자격시험에 도전하고 아직 합격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딸이 응시한 국가자격시험 발표일이다. 점심시간 12시가 되어오니 딸의 합격여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먼저 전화해 볼까? 합격했으면 먼저 전화 왔겠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지금 나는 딸을 질책해야 할까? 위로해야 할까? 알쏭달쏭. 아리까리 , 갸우뚱


앞에서 언급한 큰오빠와 여동생의 미담을 보고 있으니 나 자신이 왠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24살. 아직 창창한 젊은 나이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 적극 지원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진대, 

자격시험 몇 번 떨어졌다고 무언의 압력으로 딸을 힘들게 한 나의 구태가 졸렬하기 짝이 없다. 


돌이켜 딸의 장점을 생각해 본다. 먼저 미모가 출중하다. 성격도 명랑하고 쾌활하다. 독특한 4차원적인 측면도 존재하여 예술계통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1차원적이고 고지식한 아버지와는 궁합이 맞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존재이다. 아빠의 관점에서 딸의 출발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딸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개척하고 추진할 힘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마중물 역할은 못할찌언정 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움이 가득한 우울한 저녁이다

2023년 6월 베트남 다낭 가족여행

이제 퇴근해야겠다. 아내에게 카톡이 온다. 서윤이에게 뭐라 그러지 마!

26년 결혼생활에서 체득한 아내의 남편 조련법이다. .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또 전쟁이다.

오빠도 동생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데.. 아빠가 딸에게 힘이 아닌 짐이 될 수는 없는 법


퇴근 후 딸이 좋아하는 햄버거 하나 사들고 조용히 방문 앞에 놓아야겠다. 

포털기사에 소개된 오빠처럼 감동적인 편지는 쑥스럽고 만일 딸이 이 브런치를 읽고 있다면 아빠 마음 이해해 주겠지.  서윤아. 아빠는 서윤이의 무한한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다만, 표현을 못했을 뿐이야. 어디서 딸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오빠는 하는데... 아빠는 왜 못해?

        

구차하지만 아빠도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 쉬다가 천천히 일어나. 일어나고 싶을 때 얼마나 걸리든 기다릴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만 잊지 말고"


사랑하는 울 이쁜 딸 김서윤. 사랑해. 파이팅!


이 세상에서 서윤이의 가장 든든한 힘이 되고 싶은 아빠가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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