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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May 30. 2023

공무원의 꽃. 사무관

꼰대 사무관 VS MZ 주무관

#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오늘을 발견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밤새 누군가 찾아와서 흔적을 남겼는지 확인하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루틴이다. 빨간색 '좋아요' 표시가 많으면 하루가 상쾌하다. 더욱이 댓글이 많으면 에너지가 뿜뿜 솟는다. 그런데 오늘 페이스북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 하나가 있다. 6년 전, 정확히 2027년 5월 30일 과거의 오늘 사진이다.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된 날이다. 임용장 날짜를 확인하니 정확히 6년 전 오늘이다. 감개무량하다. 2017년 4월, 전북 완주에 소재한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연수원에서 6주간의 사무관 교육을 마치고 직장인 경기도청에서 진짜배기 사무관으로 임용된 그날의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남경필 지사였으나 해외출장 중으로 이재율 행정 1부 지사께서 임용장을 대리 전수하였다. 이재율 행정 1부 지사님은 청와대 근무를 끝으로 공직에서 퇴직하여 현재 국내 최대 전시컨벤션산업의 메카인 킨텍스(KINTEX)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 사무관의 힘!


흔히, '이사'는 기업의 꽃, '사무관'은 공무원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 공무원 직급체계(총 9급)에서 사무관은 5급 공무원이다. 공무원비율이 피라미드 구조임을 감안하면 사무관은 10%가 안 되는 소수집단이다. 일반적으로 공직에 입직하는 경로는 특별채용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공개경쟁임용시험의 경우 9급, 7급, 5급. 3가지 코스가 있다. 지금은 9급, 7급 공무원 시험의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노량진 공시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9급, 7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울은 100대 1을 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5급은 행정고시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읍면동장, 시청의 과장, 도청의 팀장 보직을 부여받게 된다. 읍면동장의 경우 기관장으로 특정지역을 총괄관리하는 책임자로서 공무원 인사권과 예산집행권, 지역단체들을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다. 필자는 경기도청 감사관실 실무사무관으로 최초임용되었고, 경기도 MICE산업을 지원하는 전시컨벤션팀장, 경기도의원들의 교육업무를 담당하는 역량개발지원팀장, 여성가족부 아동청소년 보호과 주무사무관, 현재 기후환경에너지국 환경보건팀장 등 팀장보직만 수행하였다. 도와 시군의 인사교류가 활발했을 때는 사무관 초임발령의 경우 읍면동장과 시군 과장 보직을 맡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현재는 인사적체로 팀장(사무관)에서 퇴직하는 경우도 적잖은 것이 현실이다.       


1997년 의왕시에서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동사무소 동장님과 시청의 과장님은 현재 나와 같은 사무관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의 동장님과 과장님은 조직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직원들은 출근하면 동장님과 과장님께 큰 소리로 인사하고 책상 위 재떨이 비우는 것, 쓰레기 치우는 것, 점심식사 모시는 것은 직원들의 고유업무보다 중요한 가장 기본적인 업무였다. 지역현안으로 단체장들과 거하게 한잔 하는 날이면 지근거리에서 동장님, 과장님 보필하며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야 하고, 사모님 확인까지 받아야 그날의 임무가 해제되었다. 부서 회식이 있는 날에는 서무는 1주일 전부터 식당 알아보고, 메뉴 선택하고, 좌석배치도 만들어 동장님, 과장님께 사전 보고하고 결재가 끝나야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의 중심은 5급 부서장, 즉 사무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 결심했다. 나도 할 수 있어. 저 자리까지 꼭 가보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생 언젠가는 모두 보상받으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내 머릿속에 사무관이라는 단어를 세뇌시키며 사무관 승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무조건 달리기 시작했다. 


# 2001년 경기도청 전입하여 사무관의 꿈을 키우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기초지방자치단체 시청에서 사무관이 되는 것은 산악인 엄홍길이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하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대만해협을 횡단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9급으로 입직한 시청의 공직선배들이 사무관이 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결심했다. 도청으로 가자. 도청은 조직도 크고, 사람도 많으니 승진할 기회가 많을 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4년 6개월의 의왕시청 공직생활을 접고 2001년 12월 경기도 전입시험에 합격하여 경기도 공무원으로서 힘찬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2001년 12월 경기도에 전입해서 최초 임용된 곳은 경기도공무원교육원(현재 경기도인재개발원)이다. 현재 수원시 파장동 경기연구원 자리에 소방시설을 개조해서 만든 교육원 청사는 아담하고 무엇보다 근무환경이 쾌적하고 좋았다. 지금은 경기도 영어마을로 변신한 안산시 소재한 경기도 공무원수련원 관리업무(금호인재개발원 위탁)가 내 업무였다. 교육원 강의실에서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폼나게 직무강의를 하는 사내강사 업무를 하고 싶었지만 8급 나부랭이가 언감생심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후 교육원 서무업무를 끝으로 경기도 본청으로 입성하였다. 


# 2017년 5월 드디어 사무관이 되다


이후 경기도 본청에서 경제실, 기획조정실, 감사관실, 경기도의회 등을 거치며 2017년 5월 공직생활 내내 꿈꾸던 사무관 임용장을 받았다. 1997년 6월 19일에 최초 임용되었으니 얼추 20년 만에 사무관이 된 것이다. 주변 공직자들은 승진연수가 빠른 것이라고 축하해 주었다. 위로가 되었다. 이제는 어깨에 힘 좀 주고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 수 있겠지! 그러나 내 생각이 허울 좋은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 MZ세대의 등장과 공직사회 조직혁신의 바람


64년생 젊은 남경필 지사 취임 이후 경기도에는 조직혁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행정관행, 보고문화, 갑질행태, 소극행정, 회식문화 개선 등에 대한 혁신운동이 들불 번지듯 확산되었다. 전임 김문수 지사가 다소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라면 남경필 지사는 개방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사무관 승진하여 숨좀 쉴만하니 다시 실무자처럼 일해야 하는 척박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다. 억울했다. 본전 생각이 굴뚝같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공직사회에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MZ세대의 등장이다. 자기주장 강하고, 워라밸과 소확행을 인생의 가치로 내세우며 회식문화를 강력히 거부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단 소통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감사, 법무, 기획업무 등 전통적 업무에 특화된 나는 자유분방한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행정사무감사, 예산심의가 코앞인데도 퇴근시간 되었다고 책상을 정리하는 MZ세대에게 나는 불통의 아이콘 '꼰대'였다. 그렇다고 나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다만 속에 담아 놓고 술자리가 있을 때 안주거리로 내놓는 소극적 복수. 그게 전부였다. 지금이야 그때 이야기를 이렇게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지만 당시 초짜 사무관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나고 분통 터질 노릇이었다.


공직문화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서열과 경험을 중시하는 위계적 관료주의는 '워라밸', '소확행' 등의 신조직문화로 대체되고 있다. 1997년 공직에 입문했을 때 사무관과 2023년 사무관은 글자만 똑같을 뿐 권한과 책임, 역량.. 모든 것이 바뀌었다. 요즘은 나 때는~ 하며 호기롭게 일장연설하는 라테 사무관들을 찾아보지 못하겠다. 그만큼 조직이 건강해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제 퇴직까지 5년여 시간이 남아 있다. 5년의 시간 동안 또 어떠한 변화에 직면할지 모르겠지만 사무관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에 걸맞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무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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