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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Sep 11. 2023

                          꽃 길

   텃밭 농부들의  오가는 말이 텃밭처럼 다.

   

요일 아침,  여인이 매장에서  남자에게 말한다. 올핸 옥수수를  심자마자 새들이 와서 다 파먹는 통에  옥수수 농사에 애를  먹었다고. 그러 초로의   남자 농부가 말한다. "옥수수 씨앗은 세 알씩 심는 거에요. 한 알은  몫으로,  하나는 새가 먹을 꺼 하나는 주인 ."  나는 가져간 양파와 지를 매대에 올리  혼자 었다.


저쪽에서  연둣골 할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나와 이미  구면인  그녀는  마른 체구에 등이 약간 굽었다.  나는 붙이던 가격표를 내려놓고 그쪽으로 걸어가 문을 당겨  열며 그녀의 바구니를 받았다.  그녀가 나이만큼 기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다고.  지난달에 그녀가 그녀의 남편이 운전해  타고   문을 열고 나올 때  깨끗이  껍질 벗긴  고구마순과  호박잎이 담겨있는 사각 바구니가  문턱에 걸려 덜컥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을 더 열어 바구니를 빼주자  그날  그녀는 고맙다고 말했었. 그때  매장을 향해 같이 걸으며,  살고 있는 그녀의  동네를  묻자 저기 연둣골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야채잎을 상상했다.


진열을 마치고 매장을 둘러보다가  그녀가 매대에 진열하고 있는 곳에서 발을 멈추며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녀가  사각 투명팩에 가득 담은 봉숭아꽃을 진열하고 있지 않은가.  '손톱용 봉숭아'로  명찰을 붙여서. 나는 그녀에게 허락을 구하고 그것을 사진 찍었다. 누가 이 꽃들을 사서 오늘 밤 손톱에  꽃물을 들일까.

   그녀가  아쉬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팩 더 담아와서 나에게 선물하 좋았을 것을 그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다며.  봉숭아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그녀의 뜨락이 문득 궁금해졌다.


빈  바구니를 들고  매장을 나와  농장을 향해 걸었다.  긴 길을   따라  백일홍이 피어있다. 옥수수  씨앗을  셋이 나눠  먹을  요량으로  심듯 적은 것이라도 형제들과 나누고,   봉숭아꽃을  선물로 못  챙긴 것을 아쉬워하듯 이웃에게  예쁜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삶,  그것이  내 여생의 꽃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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