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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Oct 15. 2023

                   웃다

   "어휴, 내가 이 새 새끼들한테 당한 거 생각 허믄!" 남편이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내가 깻잎 좀 따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으면 좀 좋아? 그렇게 못 따게 하더니, 잘했구먼 그려!'



여름에 깻잎이 바람에 실하게 너울댔다. 상추가 장마에 녹아  없어지자 매장에선 깻잎의 인기가 많았다. 큰 잎으로 살랑대는 저 깻잎 한 장 한 장이 만 원짜리 지폐로 보이는데 남편은 따질 못 따게 했다. 자꾸 따면 들깨가 열리질 않는다고. 당장  매장에 내면 바로 다 돈으로 돌아오는데.. 결국 나는 사각 바구니를 밭고랑에 내동댕이 치며 선언했다. 내년엔 나 원도 한도 없이 깻잎 좀 따게 내 깻잎 전용 밭을 몇 고랑 만들 거라고, 들깨고 들기름이고 뭐고 간에 그건 참견 말라고 다 따버릴 거라고, 올해만 내가 양보한다고.


여름엔 풀과, 가을엔 새들과 전쟁을 치르는 것이 농사꾼의 애로다. 가을이 가까워지며 꽃 진 자리에서 들깨가 토실하게 익어갔고, 그러자 새들이 용케 알고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두 마리가 오더니 깨가 더 익어감에 따라 같이 오는 새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새들은 처남, 처남댁까지 데리고 오나보다고 옆 집에서 말해 웃기도 했다. 애써 지은 깨를 그놈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단단히 막아둬야 했다. 촘촘히 짠 망을 사다가 씌우고 아래로도 들어가지 못하게 망을 바닥에 대고 그 위에 막대기를 올려 앉 핀을 박아두었다. 그리고 빙 둘러 다시 확인했다. 혹시 빈틈이 없는지를.

   

옆집에선 망을 씌우지 않고 양면으로 은색과 빨간색인 선물 포장 끈을 위에 길게 여러 줄 쳐두었다. 햇빛이 반사돼 번쩍거리니 새들이 무서워서 근처에도 못 올 거라 그들은 호언장담했다. 우리 도 못 올 거란다. 우리는 망을 빈틈없이 씌웠고 옆 밭에서 번쩍이까지 지켜주니 깨도둑에게서 안전할 거라 믿었다.

   

일주일 뒤 밤에 농장에 들어갔다. 깨가 먼저 궁금해 플래시를 비추며 둘러보았다. 이웃에서까지 지켜줄 거라던 깨도둑이 언제 어떻게 망 안으로 들어왔나, 모조리 빼먹고 나간 자리엔 껍질들만 버석거리고 있었다. 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켜 새대가리라고 하는가. 새가 이렇게 머리가 좋은데. 어느 구멍으로 들어왔다 나갔을까 다시 둘러보며 확인해도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밭에서 유일한 불가사의다.

 

  "깨농사짓는다고 헛고생만 했으니 원. 먹어도 어떻게 저렇게 다 빼 처먹고 가냐?" 남편이 투덜댔다. 올해는 비 때문에 참깨 농사도 망치고 들기름이라도 좀 짜 먹으려나 했더니 들깨 농사는 새들 때문에 망쳤다며 그는 연신 씩씩댔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도 화가 나서 잠이 안 온단다.

   나는 옆집 탓도 했다.  자기네 밭에 쳐놓은 반짝이 끈이 우리 밭까지  보호해줄거라더니 이게 뭐냐고,  자기네 밭만 괜찮으면 다냐고, 책임도 못 질 말을 왜 하냐고.


다음 날 날이 밝자 남편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도 뒤척이다 일어났다.


 옆집 깻잎밭은 둘러본 모양이다. 한참 뒤 남편이 들어오며 환하게 웃었다. "옆집 껀 우리 꺼보다 더 파먹었어!"

  나는 장아찌용 고추를 따러 나가려고 장화를 신다가 놀라 "그래?" 그를 바라보며 나도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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