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걷는다. 그 누구보다 빨리 걷는다. 경보 선수를 제외하고 일반인 중 어떤 누군가가 걷기 시합을 청해온다면 오래 걷기, 빨리 걷기 둘 중에 아무거나 선택하라고 선택권을 주고도 어떤 종목이든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걷는 것은 자신 있다. 좋아한다. 그리고 즐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인생에서 특별히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쩔 땐 오히려 같이 옆에서 걷는 이(아내, 아이들 등)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속도의 차이로 다툼의 빌미가 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걷는 것은 즐겁다. 특히 낯선 곳을 걸을 땐 새로운 공기로 인해 그 기분이 몇 배나 더 좋아지지만 억지로 차분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약속이 잡힐 때 약속시간 보다 미리 도착해서 주변을 걷다가 시간을 놓쳐 시간관념 없는 사람으로 찍힌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다.
단언컨대, 걷는다는 것은 매우 정직한 행위이다. 100m를 걸으면 딱 그만큼의 자취를 남길 수 있다. 또 1,000m를 걸으면 걸어온 딱 그만큼의 뒤를 돌아보는 것만 허락된다. 그 길이 일직선이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든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말이다.
첫 한 발자국을 떼기 전까지는 모른다. 내가 가려고 하는 걸음의 중간중간에 어떤 내용들이 있을지 그리고 마지막 걸음에는 어떤 모습의 풍경이 있을지 말이다. 걸어봐야 하고, 물어봐야 하고, 잠깐 쉬어도 봐야 한다. 어느 순간에 하염없이 걷다 보면 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다시 되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가봐야 할지...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걸어본 사람들이다. 첫 발을 떼어본 사람. 그리고 스스로 앞으로 조금이라도 발을 디뎌본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 선택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갈지언정.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한걸음 한걸음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말자.
그 순간마다의 이유들이 있었고 걸음마다의 사연이 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