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도 응급실에는 환자는 끊이지 않았다.
“혈압은 115 / 72, 맥박은 75입니다. 심전도 검사도 정상이고요.”
호흡곤란으로 내원한 환자였다. 고집은 간호사의 보고를 경청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까 저쪽 베드에 피 묻은 옷이 트레이에 그대로 있던데 그것 좀 조치해 주세요.”
“네.”
고집은 청진기를 꺼내 환자의 심장음을 들어보기로 했다.
“혹시 심장병을 앓은 가족이 있거나 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심장음이며 폐에서 나는 소리가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심장효소 수치랑 피검사도 좀 요청해 주세요. 그런데 흡연하시나요? 혹시 헤비 스모커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인데 담배를 줄이시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최대한 니코틴 함량이 적은 거라도.”
담배를 줄이라는 말에 환자는 풀이 죽어있었다.
“그게 유일하게 사는 재미인데요. 그리고 헤비 스모커는 브랜드를 바꾸지 않습니다.”
“안 됩니다. 금연하셔야 해요.”
고집 선생의 고집은 단호했다.
사실 술과 담배처럼 인생에 위로가 되는 것도 드물다. 하지만 누구나 안다. 그것이 몸에 해롭고, 언젠가는 자신의 건강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술과 담배에 적힌 경고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지 말라는 일, 즉 금지된 것을 소망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금지 안에는 일종의 해방의 느낌과 일탈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금연과 금주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말은 따로 있다.
“건강에는 좋은데, 재미는 없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다른 재미를 찾아내야 한다. 가급적이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잠시 뒤에 구급차의 사이렌이 울렸다. 최고집 선생은 재빨리 튀어나갔다. 이미 민정이 나와서 환자를 보고 있었다.
“계속 아프다고 하는데 정강이 쪽이 안 좋습니다.”
하퇴골이라 불리는 무릎 밑에서부터 발목까지의 다리뼈는 경골과 비골로 구성되어 있다. 경골은 정강이뼈라고 부르는 부위이고, 비골은 이보다 가는 뼈이다. 다리는 이 두 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고가 나는 경우 두 부위가 동시에 골절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진통제부터 투여하죠.”
“아아, 너무 아파요.”
민정이 손을 대자 환자는 비명을 질렀다.
“만지지 마세요. 아파요!”
환자는 죽을 듯이 아파다는 표정이었다.
“약을 드릴 겁니다. 잠시만 참고 계세요.”
병원의 일상이 그러하듯 모든 일은 대개가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환자의 우선순위를 따지고, 가장 아픈 사람부터 치료를 하다 보면 가벼운 증상의 사람은 아무래도 오래 기다리게 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아, 진짜 죽을 거 같아요.”
물론 다리가 골절되었다고 해서 당장 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얻어맞기에 딱 좋다. 응급학과 의사인 민정의 옆에서 환자를 체크하던 고집은 되도록 감정을 제거하면서 일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또한 부작용이 컸다. 감정을 지나치게 컨트롤하면, 어느 순간 기쁨과 슬픔에 무뎌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고집이 이른바 ‘빌런’으로 비난받는 이유는 기쁨을 나누는 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여, 저를 구원하소서!”
환자는 급기야 신에게 호소했다.
그제야 고집은 살짝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실수하는 존재
그리고 몇 분 뒤.
간호사가 심각한 얼굴로 고집에게 다가왔다.
“심장효소 수치가 좋지 않은데요.”
고집은 검사결과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환자에게 다가갔다. 아직 환자는 병원을 떠나지는 않은 상태였다.
혈중 아포지단백의 각각의 비율이 심근경색 위험의 50% 정도를 예측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비율이 0.5 이하이면 정상, 0.5~0.75이면 중등도 위험, 0.75~1.0이면 고위험, 1.0 이상이면 심각한 고위험으로 분류된다. 이 환자의 경우는 중증도와 고위험군 사이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고집은 환자에게 다가가 설명했다.
“검사가 하나 더 필요할 거 같습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저희가 혹시라도 뭔가 놓칠 가능성이 있어요.”
의외로 고집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부류였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심전도 확인을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심장효소의 수치가 높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심장근육의 문제를 가리킨다. 즉, 근육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심전도 체크를 계속하는 게 좋겠군요.”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린 뒤에 고집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물론 처음에는 심전도 검사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담배가 문제일 거라고 예측한 고집의 예상은 빗나갔다. 역시나 의사는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은 각종 검사가 나타내는 데이터를 확인하고, 이를 가지고 엄격한 해석과 적절한 후속조치가 필요한 직업이 의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경우는 심근 경색일 가능이 높아 보였다. 아주 높은 확률로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의 실수를 자책할 틈도 없이 다른 환자가 몰려왔다.
이번에는 중증의 말기 암 환자였는데, 호흡곤란 증세였다. 산소포화도도 87 정도에 호흡이 심각하게 불안정한 상태였다. 입을 벌려보니 이미 뭔가 토했기 때문에 생긴 증상임을 알아차린 고집은 계속해서 석션을 지시했다. 분비물을 체대한 제거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산소 포화도는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어요,”
환자의 상태는 점점 나 타지고 있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절개였다. 지금 당장에 호흡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항생제 투여!”
메스를 잡은 고집은 단호하게 수술을 실시했다.
#고집의 에필로그
조치를 제대로 마친 고집은 갈증을 느꼈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거기에는 오렌지 주스가 또 사라져 있었다.
그때였다. 형석이 편의점에 한가득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온 것은.
“이거 드세요.”
형석은 비닐봉지에서 오렌지 주스를 고집에게 꺼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