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리 Oct 13. 2023

고대 한일교류의 흔적

고류지(廣隆寺)와 호류지(法隆寺)

고류지(廣隆寺)


2012. 5. 31.


   여행 계획을 짜면서 고대 한일관계와 관련된 곳을 찾다 보니 고류지(廣隆寺)라는 교토의 사찰을 알게 됐다. 고류지는 쇼토쿠 태자가 건립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쇼토쿠태자가 건립한 일본 7대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고류지에 들어서면 걸음걸이 위치에 납작한 돌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돌길 양 옆으로 자갈들이 깔려 있고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그 길을 한참 걷다 보면 입구(入口)라고 적힌 나무표지판이 나오고 정원이 나온다. 정원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영보전(靈寶殿)이라는 전각이 나오는데, 그 안에는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 닮은 일본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이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일본의 국보 1호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손에 들린 디카를 들었는데


  "샤신와 다메데스요~.(写真はダメですよ~, 사진은 안 돼요~.)"


  하는 나긋나긋한 경비원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감상만 하고 나왔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봐온 한국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대해 당연히 한국의 고대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중에 일본에서 살게 되면서 알게 된 고고학 용어인데, 일본에서는 고대 중국, 한반도(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부른다.)에서 일본으로 건너와서 고대 일본 문화에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을 '도래인'이라고 불렀다.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라는 책에서는 고류지라는 절과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하타씨는 가야계 신라 도래인(渡來人)집단(대륙,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온 집단)으로, 야마토노 아야씨(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대표적인 씨족)와 더불어 도래계 씨족의 최대세력이었다. 하타씨는 토목기술에 뛰어나 가쓰라가와(桂川)에 제방[대언(大堰)]을 쌓고 물을 끌어들여 가즈노(葛野)의 황무지를 개간했다. 가쓰라가와를 오오이가와(大堰川)라는 별칭으로 부를 만큼, 그들이 쌓은 제방은 가쓰라가와 주변을 풍요로운 경지로 변모시켰다.


중략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은 622년 창건된 고류지(廣隆寺)로 하타씨의 원찰(願刹)(기원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가 603년에 쇼토쿠 태자에게 받은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고류지라는 절 이름은 창건자 하타노 가와카쓰(秦河勝)의 실제 이름 고류(廣隆)에서 따온 것이다.


중략


  고류지에는 두 개의 미륵보살상이 전해 온다. 하나는 603년에 쇼토쿠 태자가 백제로부터 받은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寶冠彌勒菩薩半跏思惟像)이고, 다른 하나는 616년 신라로부터 받은 보관미륵반가상(寶冠彌勒半跏像, 속칭 우는 미륵)이다.

  이 중에서 전자가 쇼토쿠 태자가 가와카쓰에게 준 불상이다. 가와카쓰는 쇼토쿠 태자로부터 받은 불상을 본존(本尊)으로 삼아 태자가 죽은 622년에 그의 보리사(菩提寺)로서 고류지를 건립했다. 신라에서도 많은 불상(佛像)과 불구(佛具)를 보내 불교를 일으켜 문화를 향상시키고 민중을 화합시키려는 쇼토쿠 태자를 추모했다.

  그런데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된 이 보관미륵반가사유상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너무나 흡사해 누가 만들었는가를 둘러싸고 백제설, 신라설, 일본설 등이 분분하다. 지금은 백제에서 만들어 보냈거나 아니면 일본의 도래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통설이다. 일본서기 등의 문헌에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15년 전쯤 엉뚱하게 이 논쟁에 끼어든 적이 있다. 일본 지바현의 소학교 6학년 학생들이 편지로 그 답변을 구해 온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 한국의 교과서를 함께 사용해 수업을 했는데, 두 책 모두에 실려 있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교하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이야기하다가 제작자가 누구냐를 놓고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고류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재질(材質)이 적송(赤松), 곧 신라의 울진, 봉화 지역에서 자생하는 명품 소나무 춘양목(春陽木)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한반도에서 만든 것이 틀림없고, 그 양식을 보건대 백제계 불상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춘양목은 목재로서 발군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벌목하여 반출하기 위해 첩첩산중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까지 철도가 놓일 정도였다.


중략


  그런데 두 주일쯤 후에 소학생으로부터 온 편지는 반론을 담고 있었다. 그들은 식물도감과 백과사전 등을 열심히 뒤져본 결과를 준거로 하여, 당시 일본에서도 적송이 자생했다는 사실과 불상의 뒤편에 녹나무[樟]로 덧댄 흔적이 있다는 점을 들며, 내가 말한 이유만 가지고는 반드시 한반도에서 이 불상을 만들어 보냈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놀랐으나, 사실은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다시 《일본서기》의 기록 등을 예로 들어 나의 견해를 옹호하는 답변을 보냈다. 학생들이 또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논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사람의 왕래와 교류, 특히 한국계 사람, 문화가 일본 고대의 국가 건설과 문화 발전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일을 계기로 우리의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는 사태를 맞았다. 그때까지 우리 교과서는 적송이 일본에서 자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에서 만들어 보냈다는 식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로는 일본의 독자를 납득시킬 수 없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편수 관계자가 종래의 내용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이 전말은 그 소학교 6학년 수업을 맡았던 교사가 일본에서 수업 사례를 소개하는 책으로 출판하여 널리 소개되었다. 이는 아마도, 일본의 소학생들이 한국의 교과서 기술을 바꾼 유일한 사례일 터이다. 국제화·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역사 대화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중략


  교토의 서쪽에 있는 고류지는 하타씨의 탁월한 업적이 잘 보전된 유적이다. 1400여 년 전에 지은 이 절은 한국과 일본의 신앙과 예술이 아름답게 조화되고, 교류와 협력이 훌륭하게 융화된 상징으로서 역사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도서>

정재정,2007,『교토에서 본 韓日通史』,효형출판,p41-45


M세대 김메리의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상) 교과서


고류지 주소

京都市右京区太秦蜂岡町32

고류지 가는 길

JR우즈마사역 하차, 도보 약 13 JR太秦駅下車徒歩約13

게이후쿠전철 우즈마사고류지역 하차, 도보 약 1嵐電太秦広隆寺下車徒歩約1

시버스 우즈마사고류지 앞 하차, 도보 약 1 バス太秦広隆寺前下車徒歩約1

교토버스 우즈마사고류지 앞 하차, 도보 약 1京都バス太秦広隆寺前下車徒歩約1




호류지(法隆寺)


2012. 6. 1.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호류지(法隆寺)이다. 호류지는 일본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절이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절이다. 그러나 호류지에 대해 알아보니 담징의 금당벽화는 1949년 화재로 소실됐다고 한다.

  아담한 느낌의 고류지(廣隆寺)와 달리 호류지는 매우 컸다. 호류지(法隆寺)라고 적힌 비석 뒤로 펼쳐진 넓고 긴 소나무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절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통과해 또다시 한참을 걷다 보면 커다란 5층목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살면서 문화재를 보고 너무 예쁘다고 감탄을 하며 꼭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 두 곳 있는데, 2007년에 방문했던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석탑과 충남 부여의 정림사지 5층석탑이었다. 그리고 호류지의 5층목탑을 봤을 때 그 기분을 또 느꼈다. 잘은 모르지만 백제 유적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tv에서 백제문화단지 광고가 시작될 때 일본 패키지여행 광고인 줄 착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일본이다!"라고 외쳤던 적이 있다. 그만큼 많이 닮았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불국사의 석가탑, 다보탑보다 미륵사지, 정림사지의 석탑들이 더 끌렸고 교토(京都)의 킨카쿠지(金閣寺), 긴카쿠지(銀閣寺)보다 나라(奈良)의 호류지(法隆寺)가 더 끌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개인 취향이겠지(?).

  호류지 5층목탑에 감탄하다가 정신 차리고 금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금당 안의 불상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 한 불상 앞의 설명에 百濟(백제)라는 한자가 눈에 띄었다. 불상의 이름이 쿠다라관음상(百濟觀音像)이었다. 한국사에서의 국호 백제가 일본어로 ‘쿠다라’이고, 한자 또한 백제였기에 백제와 관련 있는 불상인가 싶어 설명을 열심히 읽어보았는데, 한국의 백제와는 관련 없다고 적혀 있었다.


호류지 5층 목탑


호류지 주소

〒636-0115 奈良県生駒郡斑鳩町法隆寺山内1の1


호류지 가는 길


JR호류지역에서 JR法隆寺駅より

도보 약 20분 徒歩約20分

버스 호류지산도행 バス「法隆寺参道」行き

호류지산도 하차 法隆寺参道下車

     

JR 오지역 (북쪽 출구)에서 JR王寺駅北口より

버스 코쿠도요코타, SHARP 앞, 호류지마에 행 バス 「国道横田・シャープ前・法隆寺前」行き

호류지마에 하차 法隆寺前下車

     

긴테츠 쓰쓰이 역에서 近鉄筒井駅より

버스 JR오지역 행 バス「JR王寺駅」行き

호류지마에 하차 法隆寺前下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