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의 일본 여행을 통해 일본에서 고고학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구직 사이트를 계속 뒤져봤는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기에 공고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4월 3일 일본 구직사이트에서 본 문화재 발굴회사에 전화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직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니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연락이 안 와서 4월 5일 전화를 걸어보니 5월부터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답을 들었다.
생각해 보면 고고학과 관련된 아르바이트가 흔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한국인인 내가 그런 일을 구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일본에 도착해서 게스트하우스 유엔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놀러 다니면 즐겁긴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구직사이트를 보고 몇 군데 전화를 하고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서툰 일본어로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자리를 못 구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4월 10일 유엔에서 알게 된 친구 수정이와 같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우메다로 나갔다. 각자 가게 앞에 바이토보슈츄(バイト募集中, 알바모집 중)라는 글귀가 있으면 전화를 건 뒤 바로 면접을 보러 들어가는 식으로 돌아다녔다. 둘 다 실패하고 우울한 상태에서 라멘(ラーメン)을 사 먹고, 맛있는 걸 먹으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돌아오는 길에 문화재 발굴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다음날 면접을 보기로 했다.
4월 11일 이력서를 들고 약속 장소인 전철역으로 나가서 기다렸다. 유엔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한 시간 정도 일찍 와서 기다렸다. 전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차를 타고 와서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그 아저씨는 발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는데 현장으로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발굴 현장에 도착해 현장의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문화재 발굴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기에 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야루키는 있어 보이는데...”
‘야루키’란 단어를 몰라서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뜻이었다.
며칠 후에 회사에서 또 전화가 왔다. 그때도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오사카의 문화재 발굴 현장과 회사를 견학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해서 시간 약속을 정했다. 4월 17일 다시 약속 장소로 가니 저번처럼 발굴현장 직원 아저씨가 차로 마중 나와서 또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갔다. 그분은 타다상이었다.
타다상의 차를 타고 내린 곳은 오사카 시내의 어느 문화재 발굴현장이었다. 한국에서 잠깐 일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현장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이 타다상, 안내해 준 직원과 조금 친해져서 같이 셀카도 찍었다. 한국의 발굴 현장과의 차이점은 모두가 안전모를 쓰고 일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도 일할 때 쓸 안전모가 있지만, 문화재청에서 감사 올 때만쓰고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오사카 시내의 발굴 현장이었다.
현장 구경이 끝나자, 타다상이 나를 차에 태우고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오사카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갔는데, 이번에 도착한 곳은 문화재발굴회사였다. 회사는 오사카 교외인 야오시라는 작은 시에 있었다. 2층 건물 두 채가 마주 보고 있고 자전거 주차장과 아담한 정원도 있는 회사였다.
직원들이 유물 복원, 실측 작업을 하고 있었다. 유물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 봤던 우리나라 청동기, 철기시대 유물들과 비슷했다. 그중 눈에 띈 건 시루(아랫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고 손잡이가 달린 삼국시대 찜기), 스에키(철기시대 가야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토기라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나온다)였다. 나는 정말 신기해하며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직원들 모두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설명해 주었다. 내가 잘 못 알아들으면 스마트폰 번역 앱을 통해 알려주기도 했다.
복원 작업 중인 유물 사진들을 찍었다.
한국어로 시루, 일본어로 무시키인데 찜기로 사용된 토기이다
수키와편(片)이다.
하지키(土師器)인데, 일본의 고훈시대(한국의 삼국시대 무렵)의 연질토기(軟質土器)이다.
철기시대 가야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스에키(須恵器)이다.
유물편마다 넘버링을 해 둔다.
구경이 끝나고 직원들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주기에 마시고 있는데 어떤 키가 훤칠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회사 사장이라고 했다. 사장이 내게 한국의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를 물었고 이런저런 짧은 대화가 오갔다.
“한국에서 돈 벌어서 혼자 왔나요?”
내가 그렇다고 답하니 사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견학을 마치고 타다상이 나를 다시 전철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전철역에 도착했을 즈음 타다상이 전화를 받더니 나를 태운 채로 다시 회사로 갔다. 회사에서 다시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가는 동안 타다상과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분도 딸이 있는데 자신의 딸이 다른 나라에 혼자 가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맙고 좋은 일일 거라고 하였다.
회사에 도착하니 다른 직원이 타다상이 아닌 나만 2층의 사장실로 안내해 주었다. 영문을 모른 채로 들어가 보니 긴 타원형의 테이블이 있고 그 주위로 사장을 포함한 직원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알고 보니 회장, 사장, 부장 등 회사 임원들이었다. 나는 안내해 주는 대로 테이블 가운데 빈 의자에 앉았다.
회장이 내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며 내가 사는 곳을 물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사는 곳에서 회사까지 오는 길을 어떤 전철을 타야 하는지, 어디서 환승해야 하는지 A4용지에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해 주었다.
다시 회사 근처의 전철역으로 돌아와 유엔에서 회사까지의 전철 정기권을 끊었다.
한국에 안 가도 된다! 회사에서 외국인인 나를 채용해 줄 이유는 없었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가 거주하던 게스트하우스에서 회사까지 한 달 정기권을 끊었다. 정기권을 끊으면 저렴하게 전철을 이용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나이(만 나이)와 이름도 적혀 있다.
전철이 연착된 적이 있었는데, 역에서 회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확인증을 주었다.
첫 출근 하는 날 이름표를 받았는데, 직원들 모두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녔다.
2013. 4. 22.
첫 출근을 했다. 회사도 한국인을 고용하는 건 처음인 상황이었고, 나도 일본에서 일을 하는 게 처음인 상황이었다. 사무실 사람들 앞에서 정식으로 첫인사를 했다.
“하지메마시떼.(はじめまして。처음 뵙겠습니다.)
김○○또모우시마스. (金ウンジョンともうします。김○○이라고 합니다.)
간코쿠카라키마시따.(韓国から来ました。한국에서 왔습니다.)
요로시쿠오네가이시마스.(宜しくお願いします。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들도 한 명, 한 명 내게 자기소개를 하며, 나와 인사를 하였다. 사람들이 20여 명 정도 되었기에 모두와 인사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직 마오가 도착하지 않았다며 마오라는 사람의 얘기를 해주었다.
“마오가 좋아하겠다.”
“마오가 한국 아이돌 좋아하는데 ○○상이랑 잘 통할 거 같아요.”
“마오가 한국어 공부 하고 싶어 했는데 잘됐다.”
마오와 내가 일하는 건물이 달랐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