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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30XX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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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아진 Oct 27. 2024

헤밍웨이의 다이키리 같은 위로를

좋아하지 않으면 침잠할 일도 없으므로 슬럼프는 마치 짝사랑 같다.

 총천연색의 전성기인 계절. 여름을 사랑한다. 짙푸른 활엽수와 토파즈색 바다, 빛의 산란이 선사한 분홍보랏빛 노을을 특히 좋아한다. 달이 떴지만 여전히 밝은 밤엔 잠드는 게 아쉽다. 누구라도 불러내어 파라솔 아래 앉아 딱 기분 좋을 정도로만 취하고 싶다.     


 이 설렘은 여름의 네 번째 절기인 하지(夏至)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내리막길을 탄다. 짧아지는 해를 보며 매년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한다. 뭘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반년이 지났느냐’는 푸념이다. 그러면서 올여름만큼은 시간을 빗물처럼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생긴다. ‘인생은 길지만 젊음은 짧다’는 관용구를 무시할 만큼 강한 멘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졸이는 마음은 30대 중반이 된 이후부터 가속화됐다.

 

 얼마 남지 않은 청춘을 허비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중이다.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N잡’을 구하든, 적극적으로 연애 상대를 찾아보든, 페스티벌 동호회에 막차라도 타서 20대에 즐기지 못한 흥취에 빠지든. 뭐가 됐든 일단 해봐야 한다며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지만 결론적으로 앞서 말한 것들은 내 몸뚱이를 일으키지 못했다. 창밖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블라인드를 치기 일쑤였다.


여름에 한강을 지나면서 촬영한 사진


 2024년 여름은 지난 2018년을 능가한 역대급 무더위로 기록되었다. 6년 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수시로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마른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모양이 동남아 지역의 ‘스콜’을 연상케 했다. 요즘 낮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는 내가 흔히 보는 풍경 또한 비를 피해 후다닥! 뛰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점심밥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 중, 열에 아홉은 우산을 안 챙겼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속수무책이다. 한 손에 든 커피를 들고뛰는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한 달 전까지는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 프리랜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았지만 언제든 단칼에 잘릴 수 있고, 상근으로 일했지만 퇴직금 한 푼 없는 노동자. 미혼이지만 책임질 존재가 있어, 586세대들이 소주향 콧김에 취해 사던 통닭의 의미를 일찍 안 사람, 이라고 날 소개할 수 있겠다. 21세기 가장인 나는 전기구이 통닭대신 빵을 산다. 엄마가 좋아하는 단팥 도넛, 동생이 좋아하는 마늘바게트가 단골 메뉴다. 그런데 요즘은 지하철역에서 빵을 사지 않는다. 퇴근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백수가 되었다는 뜻이다.


 6개월짜리 시즌제 방송을 마침과 동시에 환승할 이직처를 찾아야 했지만 암만 두리번대도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시사교양 방송작가는 7~8년 차가 지나면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그에 딱 2배를 일한 지금. 나는 아직 30대 중반이며, 왕성하게 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리하여, 어느덧 합계 70만 명이 넘었다는 ‘쉬었음 청년’이 모인 운동장에 돗자리 하나를 추가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사랑하는 여름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돈을 벌지 못하면 소비를 줄여야 하므로 행동반경이 자치구를 벗어날 드물었다. 집, 카페, 요가 학원 사이클을 도는 동안 비와 해를 번갈아 막아주던 우양산이 급격하게 늙었다. 삐걱거리는 뼈대와 구부러진 창살을 펴면서, 돈 때문이 아니라 환경을 생각해서 절약 중이라는 합리화를 했다. 나는 주로 평일 오전, 앱 테크 머니와 기프티콘을 들고 카페에 간다. 카페인 주유가 되기 전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는 뇌를 달고 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는 늘 노트북을 펼친다. 침대 속에서 꾸물거리던 내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목표한 걸 이루기 위해서였다. 숙원사업이었던 에세이를 써보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느슨하게 얼개만 짜는 초반 이틀은 순조롭고 즐거웠다. 하지만 귀신같이 삼일 후부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건 마우스 커서뿐이었다. 풀렸던 동공에 초점을 맞춰보면 모니터는 백지요, 글쓴이는 팔짱을 꼰 채 유리창 밖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문장을 썼다가 멍 때리고, 그 후에는 쥐어짜서 쓴 한 줄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웠다가를 반복하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키보드 위에서 둥근 섬처럼 말린 손은 그대로 핸드프린팅을 해도 될 만큼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방송작가 생활을 14년이나 해왔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업으로 삼는 일인데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 작업에 수없이 자존감이 깎이기도 했다. 에세이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무방한 일기가 아니다. 사막에 있는 독자에게 단비 같은 글을 선물해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에 앞서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고민을 했다. 막힘은 여기서부터였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 것이다. 


 봉인되었던 유년시절 얘기로 포문을 열자니 ‘필굿 소설(주인공에게 난관이 없는 이야기)’이 대세인 시대에 동떨어진 소재 같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일-집-일-집’뿐이었던 인생이라, 나의 견문이 한없이 좁아 보였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이라도 넓게 사귀어봤다면, 대인관계나 처세 관련해 한둘쯤 재밌는 에피소드라도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홀로 상념 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극내향인이었다. 이래저래 따지다 보면 그 어느 것 하나도 양감을 갖추지 못한 빈털터리 인간이라는 비관에 사로잡혔다. 그럴 때마다 비는 창밖에 사람들이 맞고 있는데, 내가 대신 장대비를 맞은 것처럼 폐부가 시렸다.


 이렇게 호된 자책을 하면서도 쉽게 노트북을 덮지는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재차 파내어보고,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빗길에 되살아난 지렁이처럼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노동생산성으로 따지면 보나 마나 효율성이 바닥을 길 작업. 그럼에도 글쓰기를 붙들고 있는 이유는… 


 결국, 좋아해서 지 뭐.     


 무엇이든 간절하면 서툴러진다. 사람을 예로 들면, 호감 없는 이성 앞에서 ‘투 머치 토커’였다가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잔뜩 긴장해 입을 꾹 닫고 뚝딱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영영 이루지 못할 짝사랑처럼 느껴질 때면 ‘슬럼프’에 빠진다. 노력해도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점점 발전은커녕 퇴화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방이 나아갈 곳인 벽해에서 방향키를 잡지 못할 때, 우리는 심연에 가라앉게 된다. 좋아하지 않으면 침잠할 일도 없으므로 슬럼프는 마치 짝사랑 같다.     


한은형 작가 에세이 중 다이키리 언급 부분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슬럼프가 10년이었다고 한다. 등단작가지만 그 역시 글을 짝사랑하던 시절, 헤밍웨이는 쿠바의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에서 머물렀다. 거기서 글 대신 강렬한 사랑에 빠진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럼 베이스 칵테일 ‘다이키리’다. 라임 주스와 설탕이 들어가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다이키리는 쿠바의 한 광산에서 유래했다. 광산 기술자들이나 미국인 기사가 폭염을 견디며 마신 술이라, 다이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소문난 애주가였던 헤밍웨이도 이 칵테일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그는 다이키리 재료에 얼음을 넣은 뒤 셰이크로 마시는 ‘프로즌 다이키리’를 선호했다. 헤밍웨이는 매일같이 칵테일을 즐기며 쿠바의 낚시꾼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발표한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노인과 바다」이다. 


 이 일화는 연초, 한은형 작가의 에세이 「밤은 부드러워, 마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슬럼프를 이겨내게 한 칵테일이라니… 얼마나 달콤하기에, 얼마나 위로가 됐기에 광산 속처럼 컴컴한 날을 버티게 한 걸까. 헤밍웨이의 이 사연을 알게 된 이후, 늘 다이키리를 맛보고 싶었지만 지난 상반기에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로 인해, 언젠가 마셔야지, 마셔봐야지, 꼭 마실 거야! 하며 염불만 외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지 않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한컴 창을 미련 없이 껐다. 네이버에서 ‘프로즌 다이키리 바’ ‘프로즌 다이키리 파는 곳’ 등을 검색했다. 자치구를 벗어나야 하지만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이 칵테일을 파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쉬었음 청년’인 관계로, 최근 블로그 게시물을 통해 가격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어둑한 조명에 비친 메뉴판 사진을 보니, 한 잔에 1만 원 초반! 고물가 시대에 이 정도 가격이면 훌륭했다. 영업일과 시간까지 확인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 퍼붓고 있는 소나기를 뚫고 혼술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부디 다이키리가 내게도 영감을 주길 바라며, 글을 향한 짝사랑에서 날 구원해 주길 바라며, 우양산을 펼쳤다.  




❄ 프로즌 다이키리  후기      


합정역 위스키바 '깊은 숲'에서 주문한 프로즌 다이키리


1. 슬러시 형태로 나와서 

    빨대로 빨아먹어야 합니다.


2. 모히또보다 단 라임주스 

    혹은 박카스+게토레이 섞은 맛.


3.  맛은 달달한 음료수같지만

    도수는 17~20도로 낮지 않습니다.


4.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린 후 

    마시면 가장 맛있을 것 같아요.


5. 이 글을 완성할 수 있게 

    영감을 준 헤밍웨이에게 건배를!     



 PS. 

 소설 「노인과 바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 할 때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글을 쓰면서 이 구절을 여러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좌절했고, 아는 만큼만 글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천하게나마 내가 가진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공들여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위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헤밍웨이가 다이키리로 위로를 받은 것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이키리 같은 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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