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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서울30XX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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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아진 Oct 27. 2024

방구석에서 코스믹 드라이브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을.

 독서모임 시간. 어느 회원이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힘들 때 어떻게 견디시나요?”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회원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답변을 했다. 예능을 본다, 친구를 만난다, 운동을 한다, 여행을 간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취미로 세계여행을 다닌다는 분은 6개월 뒤, 남미에서의 한 달 살기를 계획 중이라고 해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 나 역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남미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하니, 회원들은 그런 곳이 있냐고 의아해했다.     


 지구 반대편보다 먼 그곳은 우주이다. 내 마음속 한 점에서 터진 답답함이 팽창하면, 나는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무한 세계를 찾는다. 유튜브라는 시동을 켜면 조종사로 나선 유튜버가 빛의 속도로, 혹은 그 이상의 속력을 내어 우주 드라이브를 시켜준다. 3D 시뮬레이션 속에서, 나는 성간을 떠돌고 있는 보이저 1호보다 멀리 항해할 수 있다. 아직은 인류에게 공평한 지구 밖 우주. 누구도 닿지 못한 광활한 공간을 여행하다 보면, 창백한 푸른 점에서의 아등바등한 삶으로부터 잠시나마 초연해졌다. 제어가 힘든 번뇌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면, 자신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4대 성인도 아닌 네가 태어난 이유 따위가 있을까?’ 괜히 쓸데없는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그 시간에 생산성을 높이라고. 돈을 벌라고. 다만, 태어나서 좋은 점이 뭐가 있는지는 반드시 찾아내라고. 그것만이 살아갈 의지를 손에 쥘 방법이니까. 그래야 삶이 흔들릴 때마다 펼쳐볼 테니까. 그래야만, 부단히 주먹을 쥘 수 있으니까.     


 

 생의 장점을 열렬히 탐구하던 시기, 나는 돈을 더 벌어야 했다. 주말 아르바이트로는 부족했다. 주중에는 학교에 간다. 그럼 낮에 배우고 밤에 일하면 된다. 위스키 바에서 일하면서 윗세대 직장인들을 일찍 접하게 되었다. 내게 몇 살이냐고 묻던 단골손님을 돌이켜보니, 30대 중반인 지금 내 또래였던 사람이었다.


 “스물한 살이면 어제 태어났네, 태어나보니까 뭐가 가장 좋아요?”


 시답잖은 농에 곁들인 질문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섬뜩했다. 뭐지, 점쟁인가? 그 당시 늘 사유하던 주제를 손님이 물어보자 오싹함이 든 것이었다. 일단 “글쎄요.”라고 말한 다음 고민했다. 대충 거짓말로 둘러댈까 어쩔까 생각하다가 결국 나온 답은…


 “자연이요.”였다.

 

 만물 중 인간으로 태어나서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만이 태어나서 좋은 점이었다. 옆을 지나가던 선배가 “얘는 4차원이라니까요?” 엉뚱한 소리를 한다면서 타박했지만 내게는 진실이었다. 살아오면서 경탄한 것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의 목격했을 때였고, 그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은 것들을 대개 광휘로웠다.     


 일출 일몰, 

 별빛 달빛, 

 윤슬 반딧불.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던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관광지’ 게시물을 볼 때마다 눈길을 멈추게 사진들도  

 

 오로라, 아이슬란드

 우유니사막, 볼리비아

 반딧불 해변, 몰디브.      


 반짝반짝 빛나는 곳들이었다. 그런데 저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는 관광지들’ 중, 정말 죽기 전 한 군데라도 가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레 ‘내 형편에는 못 갈 것 같다’고 체념하면서도, 지명과 국가를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소백산에서 촬영한 일출 사진


 위스키 바에 풀근무하면 저녁 7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4시에 퇴근했다. 구두 때문에 쑤신 발바닥 핑계 삼아 느릿느릿 걷다 보면, 검푸른 장막에 희뿌연 물감이 끼얹어졌다. 처음에는 유화처럼 되직하게 엉키다가, 시나브로 군청색 수채화로, 물망초색으로 옅어져 갔다. 지평선 위로 태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오렌지 빛 광선이 폭발한다. 여름 새벽이 아침으로 변하는 하늘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는 찰나의 깜빡임도 아까워 눈을 부릅뜨고 직시한 자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 황홀경을 느낄 수 없었겠지. 생의 장점은 살아있다는 조건만 있으면, 이토록 눈부신 자연을 대가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지. 걸음마저 멈추고 일출을 보고 있으면 가끔 명치 부근이 싸해졌다. 아름다움에 슬픔이 포함돼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 언덕배기를 오르던 길이 선연하다. 귀가를 하면 곤히 잠든 가족이 보였다. 보얀 배를 들썩이며 숨을 쉬는 강아지들까지… 나는 이 고요를 지키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반짝이는 존재는 우리 집에도 있었다. 덕분에 생을 견딜 수 있었다. 엄마는 빛을 내는 사람이었다. 남의 집 살림을 빛내러 다녔다. 엄마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인력사무소에 첫 달 가입비만 내고 다달이 상납하는 회원비 3만 원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회원들이 기피하는 집에 배치됐다. 거리가 1시간 이상 먼 곳, 블랙리스트에 오른 집 등등. 그럼에도 엄마는 군 말없이 갔다. 가서 창과 바닥을, 세면과 식기를 뽀득하게 만들었다. 훗날 엄마는 눈치를 보며 인력사무소에 나가지 않아도 됐다. 최선을 다해 남의 집을 빛낸 결과, 고정으로 방문하는 곳이 생겨서이다.     


 엄마가 광휘로운 작업에 한창이던 어느 날, 우리 집 강아지가 살림을 뒤적였다. 배고픈 강아지는 돼지 뼈를 먹었다. 제 몸에 수십 배가 넘는 돼지가 죽고 남긴 등골을. 살점은 인간이 모두 발라먹어, 강아지는 조각난 뼈를 품고 탈이 났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나였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뼈를 삼킨 배가 딱딱해져 있었다. 동그란 눈이 튀어나올 듯이 겁에 질려있었다. 안고 달렸다.


 “위에서 나온 뼈예요, 감자탕 뼈 맞네.” 


 등가교환. 수의사가 부스러진 뼈를 거즈 위에 올려 건네주었다. 전날 입금된 한 달 치 월급과 죽은 돼지 뼈를 맞바꿨다. 시급의 100배 치 값이 1시간 만에 사라졌다. 돈은 없다가 있기는 힘들지만 있다가 없는 일은 너무 쉬워서 허무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대체 누가 내게 배움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만두려던 야간 아르바이트를 지속해야 할 상황이 되자, 순간적으로 반발심이 들기도 했지만 가족을 살렸다는 안도감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돈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수술을 마친 강아지의 배는 원래대로 홀쭉해졌지만 칼자국과 실밥이 남았다. 배에 긴 세로줄 하나, 짧은 가로줄이 여러 개. 강아지의 상처는 다음 달 월급을 탈 때쯤 아물었다.  



   

 2010년대 당시, 버킷리스트를 묻는 질문이 유행했었다. 바에서 이 질문을 받은 나는 “세계여행을 가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말을 건넸던 손님은 “지금 가면 되지 않냐”며 연설을 시작했다.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갈 수 있는 건 학생 때뿐!”이라면서, 취업 후에는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가니, 아르바이트를 바짝 해서 겨울방학 때에 다녀오라는 얘기였다. 말을 끝낸 손님의 표정에서 어쩐지 인생 선배로서 멋진 조언을 했다는 우쭐함이 느껴졌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라고 말하며 웃어넘겼다.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을 받는 대신 번다고 여기는 게 보편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하지만 보통의 삶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주야로 돈을 벌어도 그 돈을 여행비에 할애할 계획은 없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세계여행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향후 15년도 썩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대신 언제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면 방구석에서 우주선을 타고 있다. 과거에는 美 NASA가 발표한 사진으로나마 우주를 구경했지만, 지금은 클릭 한 번이면 수억 광년 거리의 블랙홀까지도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태양계의 끝인 오르트 구름을 지나쳐, 이웃 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제2의 지구로 불렸던 글리제 581까지도 다녀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가끔은 보이저 1호가 촬영한 ‘태양계 가족사진’을 보기도 한다. 1990년, 해왕성 궤도를 벗어나던 보이저 1호는 지구로부터 64억 km 지점에서 뒤를 돌았다. 전원을 절약하기 위해 카메라를 끄기 직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보이저 1호는 총 60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중 깨알같이 보이는 창백한 푸른 점이 우리가 사는 지구였다.



 드넓은 바다와 대륙도 우주에서는 점 속의 점일 뿐이었다. 그보다도 작은 인간은 얼마나 미시적인 존재인가. 우주에게도 인간은 미지의 세계일 것이다. 누가 어떤 집에 살고, 어떤 걸 먹으며,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일일이 알 수 없다. 마치 내가 한데 모인 개미떼를 내려다볼 때처럼 말이다. 점 속의 점 속의 점에 불과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생각’이란 것을 하며 걷고 있다. 바쁠 땐 뛰기도 하고, 아플 땐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저 멀리 앞서간 사람은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느라 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뒤쳐진다고 멈춰 서지는 말아야겠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예외 없이 발걸음이 느려지게 되고, 마침내 주어진 삶이 종료되는 날에는 원자로 회귀하겠지.     


 그때가 되면 정말 자유로울 것이다. 가상이 아니라 실제로 지구너머 우주를 드라이브를 할 수 있으니까.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을. 그것들은 닿지 못할 먼 거리에 있기도 하지만, 소중한 나의 집에도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나는 내가 경탄하는 것들을 아끼며 오늘도 내일도 걸을 것이다. 나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우주의 한 점으로서 본분을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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