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날일수록 나를 돌아보지 말고 돌보려고 한다.
엄마 잃은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 지 햇수로 3년. 그동안 한 번도 목욕을 시킨 적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선 햇볕에 바짝 말린 수건 냄새가 난다. 강아지를 키웠을 때는 주 1회는 목욕을 시켰어야 했는데, 어째서 고양이는 씻지 않아도 되는 걸까. 함께 산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신묘한 존재다.
고양이 몸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거리는 걸 좋아한다. 그럼 고양이는 나를 봐줄 때까지 봐주다가, 내 얼굴이 있는 쪽과 반대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 그만 가라는 뜻이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동그란 뒤통수 위로 쫑긋 선 귀가 귀여워 만지고 싶지만, 평화를 위해 일보후퇴다. 고양이는 내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고 판단하면 원래 자리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내 몸이 닿았던 부위를 그루밍한다.
고양이는 씻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이 씻기지 않아도 되는 존재다. 스스로 몸을 청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루밍은 몸에 묻은 이물질 등을 혀로 핥는 행위인데, 고양이의 혓바닥에는 가시 같은 돌기가 솟아있다. 이 돌기가 빗과 같은 역할을 하여 털 사이의 먼지를 털어내고 고르게 정돈해 준다. 고양이의 침은 인간의 물과 같다. 침에 항균 물질이 들어 있어, 자급자족으로 씻을 수 있다. 얼굴처럼 혀가 닿지 않는 부위는 침을 묻힌 앞발을 볼과 이마에 대고 원을 그리듯 둥글게 움직이며 그루밍을 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면 ‘너 참 야무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양이와 달리 얼굴이 산유국인 지성피부 인간은 물로도 모자라다. 알칼리성 클렌저로 뽀득하게 닦아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피지가 왕성한 여름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불쾌하다. 식용유에 빠졌던 라이스페이퍼를 얼굴에 붙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귀찮아서 세수를 하지 않고 있으면 불가항력 상태에 빠진 사람처럼 무기력해진다. 누가 나 좀 씻겨주면 안 되나… 실없는 소릴 내뱉고 고양이를 찾아보니, 창가 아래서 일광욕을 하는 중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싶어졌다. 하지만 기름진 얼굴을 들이댈 순 없는 법. 그래, 씻어야겠구나. 굼뜬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몇 년 전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온라인에서 확산됐다. 우울은 물에 녹기 때문에 씻으면 회복이 된다는 뜻이다. 의학적으론 근거가 없지만 씻는 행위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 낀 때를 한 겹 벗겨주는 것 같다. 때는 죽을 때까지 차오르니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씻는 게 중요할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해도 우울해지면 씻는 게 가장 어렵다는 숱한 경험담처럼, 나 또한 때때로 나를 방치한다. 꼼짝하기 싫어도 생리현상은 피할 수 없으니 소변을 보러 가면, 간 김에 씻으면 되는 건데 손만 씻고 돌아오곤 한다. 그런 나 자신이 싫어서, 또 나를 미워하게 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안 된다 하더라도 별수 없는 상념을,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걸’ 부질없는 추념을,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게 나만 고된 건 아니겠지’ 덧없는 푸념을 늘어놓는다.
지금은 7월, 2024년 하반기를 맞았다. 지난 상반기는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지난해 연말부터다. 방송국 사장이 바뀐 당일에 밥벌이를 잃었다. 내가 제작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생방송 시간에 재방송이 방영되는 아연한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다른 방송국 프로그램에 들어갔지만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관용이 없는 곳은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날이 선 말을 듣지 않으려면 한시도 긴장을 놓아선 안 된다. 이는 곧 자기 검열로 이어졌다.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고, 책임에 비례하지 않는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소위 말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을 하며, 번아웃에 빠졌다.
입면을 돕는 약 없이는 잘 수 없었다. 의존성이 강한 약이라 중단하고 싶었지만, 단 몇 시간이라도 잠들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매일 밤 약통을 찾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밧줄에 묶인 폐가 호흡을 버거워하듯 갑갑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고양이를 찾았다. 고롱고롱, 귀 기울여야 들리는 작은 숨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진정되었다. 언어가 달라도 언어가 통하는 사람보다 편하게 소통할 수 있고, 내가 추레할 때도 날 피하지 않는 존재에 기대어, 내가 뭘 더 해보면 좋을지 고민했다. 다만 더위에 약한 고양이는 인내심이 강하지 않았고, 나로 인해 체온이 높아지면 꼬리를 탕탕! 치면서 앞발로 밀어댔다. 그다음은 또 그루밍. 고양이는 하루의 1/3을 그루밍에 할애한다. 제 몸을 정성껏 가다듬은 후에는 꿀잠을 잔다. 개운해서 그런 것일까? 나는 고양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도 나를 공들여 단장해 보는 건 어떨까.
정갈한 몸에 정연한 마음이 깃들길 바라며, 쿨링 효과가 있는 두피 팩과 티트리 토닉, 사해소금 스크럽 바디워시와 바닐라 립밤을 샀다. 이 그루밍 용품들은 예상보다 큰 쾌감을 주었다. 두피가 시원해지니 부유하던 정신이 또릿해졌고, 피부가 부드러워지니 평상시에는 척 묻히고 쓱 바르는 게 끝이었던 바디로션을 꼼꼼하게 바를 맛이 났다. 해외직구로 구매한 립밤은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했지만 한때 반짝 인기를 끈 매그놀리아의 바닐라 컵케이크 맛과 비슷했다. 구어망드 향이 코끝을 아른거릴 때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요가 선생님이 늘 강조하는 ‘들숨과 날숨을 같은 길이로 내뱉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그럼 온종일 긴장돼 있던 뇌가 노곤해지려는 신호를 보냈다. 그루밍의 이로움이었다.
시나브로 흩어지는 향처럼 몸과 마음도 다시 흐트러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검열하지 않고 예열할 것임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나 자신을 대상화하던 날들과 헤어지고 물아일체에 빠져보기로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인 사람은 심부체온이 낮은 상태에서 변동이 적거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호르몬 불균형이 생기기 마련인데, 따뜻한 물로 씻으면 체온이 2도 높아져서 신체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고. 물에 몸을 맡길 때, 안정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게 허물 벗은 상태로 기분 좋음을 즐기고 싶다. 소소한 행복은 소소해서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던 내가, 찰나의 기쁨이라고 평가 절하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4차원에서 바라보면, 인생도 순간의 나열일 뿐이므로.
4차원에서 3차원을 바라보면 마치 도미노 같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펼쳐진 도미노가 펼쳐져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패도 나쁜 패도, 삶이란 도미노의 무수히 많은 패 중 한 장이다. 지금 쓰러지는 건 ‘나’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니, 기꺼이 쓰러질 수 있는 용기를 내보고 싶다. 출발하기 시작한 도미노는 어딘지 모를 종착지에 다다를 때까지 앞만 보고 질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각의 패가 제때에 쓰러질 수 있도록 견고함을 다지는 것. 그러므로 나는 우울한 날일수록 나를 돌아보지 말고 돌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