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계모임 친구들이 동네에 수재가 있다며 돈 모아서 같이 받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당연히 그땐 알 길이 없었지만 이혼하고 혼자 딸 둘을 키워내는 것도 팍팍했을 텐데 다른 것도 아니고 애들 공부시키자는 말에 한참 고민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이제 와서 너무 안쓰럽다. 친한 내 친구 둘은 하는데 돈 없어 못하는 티 날까 봐 내가 주눅 들까 봐 갈등 끝에 결국 엄마는 과외 그룹에 날 넣어줬다. 애들이랑 같은 방에서 과자 먹으며 학교 끝나고 또 본다고 생각하니 그저 좋았다. 어쩜 그렇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외고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 진학한 동네 수재 언니는 공부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 본문 회화 파트는 시조 외우듯 다 외우게 시켰다. 빠가사리던 나까지 영어 시험 성적이 수직 상승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수학성적은 언니도 어쩌지 못했다. 평생에 걸쳐 집합을 이해 못 한 나는 공식 근처도 못 갔다. 가끔 산수도 간당간당하다.)
일본문화 수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시절. 언니의 일본어학과 친구들은 얼굴도 모르는 일본사람들과 국제 펜팔을 하며 회화실력을 키웠다. 지금이야 일드, 애니, 유튜브, 원문소설 넘치는 콘텐츠로 독학도 가능하지만 1990년 초 일본어교육은 교과서만 보고 배워야 했다는 것이다.
언니가 펜팔 했던 일본인이 텔레비전에 방영하는 만화영화를 까만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서 편지와 함께 국제우편으로 보내주면 공부가 끝난 우리를 앉혀놓고 틀어주었다. 자막도 없고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몰랐지만 슬램덩크 주인공은 잘생겼고 ‘헤이세이 타누키 갓센’(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쿠레나이노부타’ (붉은 돼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충격적으로 하이퀄리티였던 기억이 난다. 바람에 털들 나부끼는 게 부드럽고 빨라서 진짜 놀라웠다.
시험 끝나고 언니랑 과외 그룹 애들이랑 롯데월드에 놀러 갔는데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 서 있을 때 수학여행 온 일본 남자애들이 두껍고 무거운 이선희 안경을 쓴 언니한테 ‘얘넨 콘택트렌즈가 없나 봐. 완전 구리네.’ 이런 말을 했다. 어디나 사람 까고 다니는 10대는 있지만 설마 그걸 알아듣고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아는 10대는 없는 법이다. 언니는 울컥해서 안경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았다.
“언니... 왜 그래? 왜 울어..? “
우리가 걱정하며 물었다.
“쟤네가... 욕했어..”
우리 셋은 ‘와.... 언니 외국말로 욕한 거 알아들었어.... 진짜 짱이다...’ 존경과 감탄의 감상만 남았더랬다.
대학 신입생활이 끝나고 2학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나 언니는 렌즈로 바뀌었고 쌍꺼풀을 만들어 왔다. 아직 부기가 덜 빠지고 적갈색 마른 피 같아 보이는 라인이 생생한 언니랑 공부하고 있는데 언니 연습장에 피가 툭툭 떨어져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우리가 폭탄 맞은 듯 으아!!!! 뒤로 발랑 흩어졌다.
“야 너네 빨리 와. 괜찮아. 괜찮아.” 아무렇지 않게 휴지로 피를 꾹꾹 눌러 닦았다.
그 후로 몇 달 계속되던 과외는 언니가 바빠졌던가 여러 가지 핑계가 생겨 모두 그만두었다. 엄마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우리 애는 과외 안 해도 성적 괜찮아’ 쿨하게 거절할 수 있게 혼자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 괜히 돈 안 들게 엄마 고민 안 시키게 잘할걸. 눈치도 센스도 머리도 없었던 내가 너무 한심하다. 나보다 2살 많았던 친언니가 맨날 나만 보면 ‘똑바로 좀 해’ ‘작작 좀 해’ 답답해하면 하아... 저 미친... 왜 나만 보면 그래했는데.. 친언니는 학원 한번 안 다니고 전교 2등 성적에 수업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용돈도 벌었다. 내가 답답해 보일만 했어... 울 언니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철이 들었을까.
몇 년 후 내가 고등학생이 돼서 동네 커피숍에서 남자친구와 알콩달콩 있는 과외 언니를 봤다. 예쁘게 자리 잡은 쌍꺼풀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이화여대생 언니는 분명 지금도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일본어 하며 일본에 살고 있단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깜짝 놀라겠지? 일본어나 일본에 관심이 생긴 첫 계기는 그때 과외언니가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외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에 대한 동경과 금지된 언어를 배우는 스릴과 영어보다 일본어에 친숙함이 피어났던 거 같다.
지금 내 모습을 과외언니는 몰라도 상관없지만
그때 그 과외해줘서 그 덕분에 엄마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 줄 엄마가 없는 건 많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