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가 말했지

"Let it go" 라고.

by Presidio Library

커미션을 받고 일하는 미국의 부동산 업자들은 대부분 입에 바른 말일 뿐일지라도 굉장히 친절하다. 직업의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경쟁이 심한 편인데, 시장에 나오는 부동산 물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 물량을 확보하는게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이번의 진상이 다음의 고객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흔하니 누구에게나 밉보여서 좋을 게 없고, 사람과 고객을 많이 알 수록 본인에게 유리해지기 마련이므로 아무리 뭐가 마음에 안들어도 앞에서는 대부분 웃고 잘 해 주는 편이랄까? 한 번 알게 된 고객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자 꾸준히 컨택도 한다. 예전에 한 번 집을 보러갔다가 만났던 괜찮은 부동산업자는 몇 년 전까지도 계속 브로셔를 보내왔고, 우리 집을 살 때 담당했던 사람은 최근에 아기를 낳았다고 홀리데이카드까지 보내왔으니.





그런데,


존은 남편이 전화를 받자 마자 소리를 지르며 엄청 막말을 했단다.




요는, "이 바닥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다! 너는 내 클라이언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느냐! 내 클라이언트 집에서 물이 샌다는 건 어떻게 믿냐!" 라는 것.


너무 화를 내며 무례하게 말해서 남편은 할 말을 잃었고, 침착하게 "매니지먼트에서 보낸 배관공이 찾았다, 너네 클라이언트한테도 어디가 새는지 얘기했다고 했다" 라고 말했더니,


"그걸 어떻게 믿냐, 내 클라이언트 말을 들어봐야 한다" 라고 하며 계속 "니가 뭐라도 되고 특권이 있는 줄 아냐 (entitled라고 한다)" 하며 빽빽 역정을 내다가 자기 시간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고 했다.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화를 내는 부동산업자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지라 남편과 나는 어이가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가 잘못 한 게 없었다. 피해는 우리가 입었고, 기다리라고 해서 몇 달을 기다렸다. 그 쪽이 먼저 연락해 온 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때에는 몇 주 기다렸다 우리가 연락 준댔더니 자기 입으로 며칠이면 된다고 해놓고 또 잠수를 타지 않았는가? 애초에 본인이 스스로 약속을 지켜서 우리한테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서 전화를 해서 귀찮게 하기 보다는 이메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보낸 건데? 저렇게 잠재고객에게 소리 지르며 막말을 해서 얻는 게 없을 텐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우리는 그를 이해해 보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집 식구들이 너무 연락이 안되나? 상대하기가 너무너무 어려워서 그 동안에 화가 축적된걸까? 아마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든 빨리 팔고 도망가려고 하는 건가? .. 괜히 주말 아침부터 욕을 먹어야 했던 남편이 너무 안타까웠고 화가 났다.


그 사람 회사에 전화해서 상사에게 클레임을 걸어볼까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저 계약직으로 일하는 부동산업자의 특성상, 그 회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존이 막말을 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 사람은 자기 유리한 대로 자기 회사에 말할 것이고, 그럼 우리는 아마 아무 잘못도 없는 존의 클라이언트를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으로 둔갑해 있을 터였다.


이제 이 사람은 물론이고 윗집 관련인한테서 오는 전화는 절대 받지 않기로 했다. 이메일로 막말을 하면 기록이 남으니 전화로 한 것 같았다. 향후에 혹시나 연락이 오면 모든 의사소통은 기록이 남는 이메일로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최근 몇 년간 느끼는건데,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한 가지 상황을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한다. 불리한 것은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고, 마음에 드는 것은 부풀린다. 개중에 이상한 사람에게 걸려들었다면 상식이라고 생각한 것이 통하지 않는다. 개싸움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도 당장 우리에게 그 집에서 물이 샌다는 배관공의 말을 기억한다는 사실 외에는 증거도 없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될 뿐이었다.





"Let it go"



2013년 이후로 어린 딸내미가 있는 집에서는 넌덜 머리가 난다는 이 노래. 엘사 덕분에 유명해 진 이 후렴구는, "그냥 보내주자, 포기해, 내버려두자"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이후 가사를 더 들어보면 엘사 얘긴지 내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그냥 내버려 둬, 잊어버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내버려둬, 그냥 보내줘. 뒤 돌아서 문을 꽝 닫아버려)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걔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안 써)


엘사네 성에서도 물이 샜나? 이상한 이웃 상대하다가 너무 화가나서 각성하고 집 나와서 얼음성 새로 지었나? 싶을 정도. (웃음)


이쯤 되자, 우리는 그냥 이 사람들이 얼른 팔고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체념에 다다랐다. 누군가는 구매할 테고, 보통 오래된 집을 사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싹 뜯어고치려고 하니, 차라리 그 사람을 상대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윗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가가 들어와 살기 전까지는 물이 새지 않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새 매니지먼트 담당자 S에게 문의해 뒀던 배관공 보고서 요청 이메일에 답장이 왔다. 배관공 회사에 문의해서 그 날의 보고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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