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하게 생각해 보자, 나의 죽음에게.
-본 글을 읽어주시기에 앞서, 한 가지는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현재 제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 유서는 제가 죽었다는 망상 속의 유서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 나는 늘 죽고 싶었어. 그건 잘 알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있잖아, 이 세상은 내가 견디기엔 너무 차가웠나 봐. 따뜻한 걸 좋아하는 나에게 이 세상은 마치 얼음장과 같았달까. 물론 따뜻했을 때도 분명 있었지. 하지만 이기적인 내 머리는 차가운 세상의 기억만 한가득 안고 있었어. 나도 그 점이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더라고.
나는 말이야, 후회 없이 살았다고 생각해. 어릴 때 나갔던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중학교에 처음 들어오고 친 시험에서도, 2학년 때 학교를 잘 나가지 않은 것에서도, 나는 후회 없다고 생각해.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엄마, 아빠. 내가 죽었다고 후회하지 마. '그때 조금 더 잘해줄걸' 라던지 '조금 더 보살펴 줄걸' 라던지 '그때 혼자 두지 말걸'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건 엄마 아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굳이 꼽자면 내 잘못이겠지. 차가운 세상을 이겨내지 못한 내 잘못.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 엄마아빠는 내게 그 누구보다 잘해줬으니까. 일평생 잘 살다 갑니다.
내 손으로 이룬 첫 번째 성공을 축하해 줘, 엄마.
내 손으로 이룬 첫 번째 성공을 축하해 줘, 아빠.
나 말이야, 참으로 나쁜 딸이지? 미안해, 엄마 아빠.
나 정말 애썼는데,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 미안해, 엄마 아빠.
그리고 너무너무 고마워. 나에게 처음으로 온기를 느끼게 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엄마.
사랑해, 아빠.
사랑해, 동생들아.
이 못난 딸은, 못된 누나는 먼저 가지만... 따라오지 말아 줘요.
그럼 나 너무 슬플 것 같아.
사랑해, 우리 가족.
ps. 나는 늘 생각해 왔어. 내가 죽어버린 세상을, 내가 자살한 세상을, 내가 태어나지 않은 세상을.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나의 운명이야. 나는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