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민족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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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샤 불패 올해도? 명품 재테크에 빠져든 2030들"
"신차 구하기 어려워지자 중고차 가격 껑충.."
"이제는 감상 아닌 재테크.. MZ세대 미술품 투자 급증"
"15억 원 주고 원숭이 NFT 산 저스틴비버.. 대체 뭐길래"
"공시지가 1억 미만 아파트 싹쓸이.. 투기세력 적발"
"규제의 틈새, 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지금이 투자적기."
온 나라가 돈에 미쳐있다.
나만 빼고 다들 돈이 넘쳐나는 듯하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도 새 차가 부쩍 많아졌다. 같은 동에는 며칠 전부터 제네시스 GV80이 반짝이는 외관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주차되어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는 매일 아침 차를 쓸고 닦고 지극정성이다. 지난밤에는 GV80과 입을 맞추고 있는 것을 목격했지만 못 본 척 지나갔다.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그 옆에는 BMW 520i가 주차되어 있다. 이 차도 새 차인 듯하다. 검은색 외관에 동호회 스티커가 붙어있다.
10돈짜리 얇은 금목걸이에 위풍당당 구찌 벨트. 저 BMW 차주 역시 매일 문콕 흔적은 없는지 차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달이 지구 주변을 공전하는 것처럼. 또한 차에 탈 때는 늘 조심조심.
BMW의 주인이 저 사람인지
저 사람의 주인이 BMW인건지.
대전의 구축 아파트에 살면서 GV80과 520i가 웬 말이람. 저 돈이면 저축해서 더 좋은 동네로 갈아타기 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최근 신차 구매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차 인도 기한이 엄청 길어졌다고 한다. 새 차를 사도 받으려면 못해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까.
그 영향은 중고차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수요자들은 신차급 중고차를 찾기 시작하며 중고차 가격까지 치솟고 있는 판국이다. 때문에 신차 인도 후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돈 참 좋아한다.
돈 되는 거라면 안 하는 게 없으니까.
비단 중고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며칠 전 아침에는 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몇 백 미터를 줄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알고 보니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라고.
돈이 있어도 명품을 살 수 없는 시대라고 한다. 덕분에 줄서기 알바부터 명품을 사서 다시 되파는 리셀 시장까지 활기를 띠고 있다. 명품도 재테크가 되는 시대다.
최근 오픈 톡방에서는 새로운 투자처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종목도 정말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NFT 투자. 생소한 단어에 네이버에 검색을 먼저 해봤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대체불가토큰이라고 한다. 디지털 자산을 대표하는 토큰이라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개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관심이 가는 것은 이걸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있다는 것이다.
저스틴비버는 최근 원숭이가 그려진 NFT 그림을 15억에 샀다고 한다. 선글라스 낀 원숭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원숭이, 로봇이 된 원숭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SNS 프로필 사진에 원숭이 그림을 걸어 놓는 것이 부의 상징이 되었다.
원숭이가 판치는 세상. 이러다 혹성탈출처럼 원숭이에게 지배받는 날이 오진 않겠지. 아니면 원숭이두창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거나.
두 번째는 미술품 투자. 미술품은 예전부터 투자가치가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부자들만 하는 투자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사회적 계급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미술품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미술품 투자에 대한 강의도 인기가 좋다.
특히 요즘에는 미술품도 조각으로 지분투자가 가능하다고 한다. 나눠 사고 나눠 먹는 시스템.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저작권 투자도 성행하고 있다. 정말 별의별 투자처가 다 있다.
세 번째는 규제 밖 부동산 상품들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로 인해 다주택자들은 더 이상 아파트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취득세만 해도 12.4%에 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규제 지역의 전매제한 없는 분양권, 공시지가 1억 이하 아파트,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지식산업센터의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부동산 업자들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만든 오픈 톡방에서는 늘 초치기 청약이 진행되고 있다.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정해진 시간에 청약이 오픈되면 입금한 순서. 즉, 선착순으로 당첨자가 정해지는 방식인 듯하다.
오픈 몇 초 만에 마감되는 청약들. 마감 후에는 업자들이 알아서 매수자와 매도자의 브로커 역할을 하며 초피 거래까지 마무리해주고 있다.
개인 명의로 투자하기 힘든 투자자들은 아예 법인까지 설립하고 있다. 법인 명의로 공시지가 1억 이하 아파트를 매수한 후 단기에 매도를 하는 전략이다. 개인의 단기 양도세율은 1년 미만 77%, 2년 미만 66%인데 법인의 양도세율은 이보다 절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피해 부동산으로 단타를 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
유튜브나 언론에서는 파이어족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자본소득으로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이야기들.
단톡방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자니 다들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오짬읍 아파트를 매수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가만히 있는 것이 또 불안해진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지금 나는
돈이 돈 같지 않은 시대,
모두가 돈 버는 것에 미쳐있는 시대,
현금의 가치가 쓰레기에 가까워져가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어, 북꿈이 또 왜. 네가 전화하면 항상 불안해."
동기 기연이형이 불안하다는 듯 전화를 받는다.
대체 뭐가 불안하다는 건지.
그냥 목소리 들으려 전화한 건데.
"아 형, 근데 저 요즘 고민이 있어요!!"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음..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오짬읍 등기마저 끝내 놓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형이 갖고 있는 쥐포신도시 분위기는 어때요? 좀 올랐어요?"
요즘 다시 일상이 따분해진 것 같다. 남들 다 돈을 벌고 있는 시대에 나만 또 뒤처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동기 기연이형이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올 것이 왔다는 뉘앙스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쥐포신도시는 조금 오르긴 했지. 그나저나 너.. 하.. 잔금 다 치르고 나니까 심심하고 또 다른거 등기치고 싶고 그러지? 너 그거 등기병 앓고 있는 거야.."
역시 기연이형은 내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이런 것을 등기병이라고 하나 보다.
그런데 등기병이라는 병명.
나쁘지 않다.
뭐 이런 병이라면 얼마든지 앓아주마.
중증으로 병이 악화되어도 상관없다.
"형은 앞으로 포지션이 어떻게 돼요?"
"나는 지금처럼 다주택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현금 비중을 줄여 나갈 생각이야. 지금 시대에 현금은 쓸모가 없어. 쓰레기라고 봐도 무방해. 저금리 시대에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니까. 추가로 집을 사는 건 힘드니까 금이나 은 같은 것들을 사놓을까 해."
이 형 역시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현금이 쓰레기인 시대.
그런데 뜬금없이 금이나 은 같은 것은 왜 산다는 건지. 지지부진 별 재미도 못 볼 것 같은데.
짧은 통화가 끝이 났다. 오늘 얻은 결론은 하나다.
쿠궁쿠궁. 쿠궁쿠궁.
대전 가는 KTX가 한강철교 위를 썰매 타듯 달린다.
창밖을 바라본다. KTX의 창문마저 얼어붙은 느낌이다. 유난히 추운 겨울.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단풍과 석양의 윤슬이 아름답고 따뜻해 보였던 한강인데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계속되는 강풍과 한파특보에 저 거대한 한강마저 얼어붙었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니고 있다.
신기한 광경이다.
고양이는 얼어붙은 한강 위가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나 보다. 어느 순간 와장창 깨져 차가운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살아남기 힘들 텐데.
추운 겨울을 대비하지 못한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찾아 한강을 서성이고 있다. 외롭고 고요하게.
KTX의 온풍기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하아암-
따스하다.
지금 이 순간 창밖의 추운 겨울은 남의 일이다.
탁한 온풍기 바람에 졸음이 쏟아진다.
띠링-
아우 깜짝이야.
무방비로 졸고 있을 때는 작은 진동마저 신체에 큰 놀람을 선사한다.
귀찮음에 눈을 다시 감는다.
아씨.
한 번 울린 알람은 확인하기 전까지 계속 찜찜하다. 확인해 봐야겠다.
「 호갱노노 알림 」
[청주시 청원구 오짬읍 아파트, 신고가 2억 6000만 원]
오짬읍 아파트를 매수한 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천만 원이나 올랐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냥 덤덤하다. 이렇게 시장이 좋으니 뭐라도 더 해놔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으니까.
투자금이 적게 드는 비규제지역 분양권이라도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 앱을 연다.
그때, 네이버 메인 최상단에 올라와 있는 뉴스 속보 하나가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오보겠지?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