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의 심장
* 본 이야기는 2022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전쟁이라니.
시리아나 중동의 전쟁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깝고도 먼 나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이니까.
트위터나 단톡방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역에 폭격을 가하는 동영상들이 돌아다닌다.
평온하던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고 가족들과 따듯한 식사를 하며 행복을 그리던 공간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세계 군사 랭킹 2위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니 이 전쟁은 아마 반나절이면 우크라이나의 항복으로 끝이 날 것이다.
정말 참혹한 전쟁이지만 확 와닿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웃 나라라 한들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전쟁으로 내 생활이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이제는 인구수 10만 이상 소도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인구수 8만 속초의 대장 아파트 가격이 8억 구간을 넘어 버렸어요. 그에 비해 제천, 익산, 군산, 거제, 당진은 아직 저렴합니다.."
동내 개 집값도 오르는 부동산 광기의 시대. 어느 지역 할 거 없이 모든 지역의 집값이 오르고 있다.
어촌인 줄만 알았던 속초의 대장 분양권은 이미 8억을 넘었다고 한다. 오션뷰라는 프리미엄이 있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가격.
청풍명월 제천의 대장 아파트는 4억에 육박하고 원광대의 고장 익산 역시 3억 중반이다. 속초와 인구수가 비슷한 충북 음성군 역시 국평 4억 대에 분양을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에게 인구 10만의 도시 국평 4억은 거의 공식이 되어버린 듯하다.
휙휙휙.
딸깍딸깍.
네이버 부동산을 켜고 인구 10만의 도시를 살펴본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인구 10만 도시의 분양권 중 가격이 3억 대인 곳을 찾고 있다.
계약금 10%,
즉 3000만 원이면 투자 가능한 그런 분양권.
눈알 빠지게 찾아봐도 충청권에는 분양가가 3억 대인 곳이 없다. 있더라도 이미 프리미엄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휙휙휙.
더 아래 전라북도로 내려가 본다.
마땅한 것이 없다.
다시 휙휙휙.
이번에는 경상남도.
밀양시의 한 분양권이 눈에 들어온다.
나노 반도체 호재까지 가지고 있다는 단지.
'오 프리미엄도 저렴하고 괜찮은데?'
가격이 3억 정도에 프리미엄도 저렴하다.
P1000, P2000 정도.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입주가 올해 10월이다.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자칫하면 등기를 쳐야 하는데 등기 칠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뭔가 끌리지 않는다. 나노 반도체 호재보다 더 한 악재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또다시 휙휙휙.
더 아래로 내려가 본다.
진주시. 향후 입주 물량도 없고 데이터로만 보면 훌륭하다.
그런데 비싸다.
무슨 이런 지방 아파트가 7억씩이나 하는지..
빠르게 더 아래쪽으로 지도를 옮겨본다.
경상남도 우천시.
진주시와는 차로 15분~20분 거리인 곳.
이곳에는 내가 원하는 분양권이 있을까.
마우스로 도시 전체를 빠르게 스캔한다.
한 분양권이 눈에 들어온다.
국평임에도 불구하고 분양가가 2억 대다.
아무리 시골 깡촌이라지만 이건 너무 저렴하다. 비슷한 체급의 다른 소도시는 4억이니까.
게다가 옆 동네 진주가 7억인데 20분 거리의 이곳이 3억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현재 우천시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신축 아파트의 시세를 살펴본다.
또 한 번.
현재 대장을 맡고 있는 신축 아파트의 시세가 3억 중반에 형성되어 있다. 지방 소도시는 신축이 곧 대장이 된다던데. 이러면 확실하게 안전마진이 있는 것 아닌가.
곧바로 네이버에 등록되어 있는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본다.
"예. 부동산입니더."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그런데 대구나 부산보다도 억양이 세다.
혹시 화가 나 있는 상태이신가.
"아.. 네.. 심상정그린꼬마 분양권 보고 연락드립니다.. 분양권 관심 있어서 그런데 지금 프리미엄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지요..?
강력한 억양 때문에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된 듯하다. 목소리가 굉장히 공손해졌다. 나 이제 더 이상 부동산에 쪼는 사람이 아닌데. 나름 투자자인데.
"슨생님은 서울분이지예? 투자하실라꼬예? 지금 심상정그린꼬마 RR 같은 경우는 P700에도 거래되고 있심더. 아이고야~ 유튜브에서 누가 찍었다 카드만 투자자들 연락 억수로 오네예."
유튜브에서도 어떤 강사가 심상정그린꼬마 분양권을 찍어줬나 보다. 타이밍 아주 좋네.
"슨생님~ 그라지말고예. 분양권 거래하믄 복비만 나간다아입니꺼. 차라리 지금 미분양인거 잡는 게 낫지 않겠심꺼? 언제 한 번 내려와봐예."
아직 미분양이 해소되지 않은 단지인가 보다.
"아 미분양이 남아있어요? 몇 층?"
"지금 제~일 낮은 층이 5층임니더. 이것도 내일이면 다 계약 될끼고."
이제 이런 말에 곧바로 반응할 내가 아니다.
일단은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겠다.
"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잘 생각해봐예. 우리나라 마지막 신축 2억 대 아파트입니더~”
대낮이지만 집중력을 위해 스탠드 불을 켜고 노트와 필기구를 세팅한다.
본격적으로 우천시에 위치한 심상정그린꼬마 분양권에 대해 조사해본다.
입주는 2023년 9월.
입주까지 대략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이곳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인구 10만의 다른 도시들은 모두 4억씩 하니까. 그리고 그걸 이미 알고 있는 투자자들도 많이 진입하고 있고.
자, 이제 다른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미분양으로 남아있는 물건 중 최고층은 5층의 84C 타입. A 타입과는 다르게 C 타입은 주방 창이 없다. 주방 창은 주부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요소다.
게다가 5층부터는 기준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4층보다 분양가도 약 700만 원 정도 더 비싸다. 층수 하나 때문에 700만 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은 낭비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결론을 도출해낸다.
'5층의 C 타입보다는 700만 원 더 저렴한 4층의 A 타입이 더 가성비 좋겠어.'
그런데 중요한 건 돈이 없다.
돈을 모을 시간은 더 없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이제부터는.
"뭐? 빚을 내서 집을 하나 더 사자고? 북꿈아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 했는데.. 정신 차려.."
평소에 나에게 늘 '여보'라고 부르는 와이프가 정색을 하며 이름을 부른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2주택자가 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여기서 추가로 빚까지 내서 집을 또 산다고 하니 와이프 입장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설득해야만 한다.
"여보..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대출을 일으키지 않는 건 오히려 손해야.. 남들은 다 대출받아서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는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어? 저금리로 대출받아 고수익을 창출할 생각을 해야지.."
와이프가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니 청주 오짬읍이야 2년 뒤 역전세 맞아도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 쳐. 그런데 분양권은? 중간에 못 팔면 잔금까지 치를 돈 있어? 그때 가서 몇 억을 어떻게 마련하려고 그래. 이건 리스크가 너무 커. 나는 그냥 우리가 차근차근 저축해서 전세 끼고 집을 하나씩 늘려나가는 게 더 좋아 보여."
와이프의 말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맞는 말이다. 나도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 피 끓는 가슴은 이성적 판단이 들어올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분양권은 잔금까지 가지고 갈 생각 전혀 없어. P3000 정도만 되면 미련 없이 나올 거야. 나 한 번만 더 믿어줘. 내가 여보 꼭 40세에 은퇴하게 만들어준다니까.."
와이프는 더 이상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이야기를 끝내려 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매우 단호하고 차갑다.
"너 맘대로 해. 경험을 해보겠다는 건 좋아. 그런데 그 경험도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 거야. 투자하려면 알아서 대출받아서 투자해. 대신 책임도 너 혼자 지는 거야. 나는 우천시 아파트랑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야."
와이프가 먼저 방으로 들어간다. 방문이 닫히며 생긴 바람이 매우 매정하고 차갑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 소식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열흘째를 맞은 가운데, 장기전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데요, 자세한 상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침부터 러시아 우크라이나 관련 뉴스로 시끌시끌하다. 반나절이면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벌써 10일째다. 전쟁의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는 시국이다. 세계 각국은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며 러시아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곡물과 수산물, 국제유가까지 가격이 폭등했다. 러시아의 디폴트 리스크까지 커지며 일각에서는 러시아 발 경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며 벌써부터 호들 갑이다 미국의 파월 의장도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이제 금리 인상이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펼쳐지고 있다.
금리 인상은 부동산 시장의 하락 요인이다 vs 금리 인상 시기에도 부동산이 상승했던 시기는 있으며 대부분 투자자들은 세입자의 보증금을 레버리지 삼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다는 유튜버.
내 의견은 후자에 가깝다.
금리를 인상해 봐야 얼마나 인상한다고.
지금 금리에서 따블이 될 일은 없겠지.
설마 기준금리가 3%가 되는 날이 올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상승론자와 하락론자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나 역시 나 자신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천시의 아파트 분양권을 매수할지 말지.
와이프는 분명 나에게 알아서 하라 했다.
이제 나만 결정하면 된다.
내가 책임지면 될 것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냉장고에서 필라이트 한 캔을 꺼낸다.
치익- 똭.
벌컥벌컥.
우천시 분양권은 억대 프리미엄이 형성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 워낙 분양가 자체가 저렴하니까.
크으..
공복에 맥주 한 캔은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이 자산 시장에서는 늘 용기 있는 사람이 돈을 쟁취해간다.
용기를 내 우천시 부동산에 문자를 넣어본다.
「 지금 남아있는 동호수 좀 알려주세요. 오전 중으로 결정하겠습니다. 」
다행히 처음에 생각했던 동호수가 아직 남아있다. 아마 오늘 중으로 입금하지 않으면 다른 투자자들이 이것마저 채갈 것이다.
남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빈 캔을 찌그러뜨린다.
어질어질하다. 맥주 때문은 아니다.
그냥 머릿속이 복잡하다.
에라 모르겠다.
시댕.
투자는 용기로.
「 입금자 김북꿈입니다. 입금했어요 」
인구 10만의 바다가 있는 소도시.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에 분양권 투자라..
심지어 분양권 투자를 해본 적도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낯선 이 투자.
내 집 마련과 오짬읍 투자할 때와는 다르게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내가 잘한 걸까.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와이프에게 문자를 하나 남긴다.
「 여보, 우리 내일 바다 보러 가자. 경상남도 우천시로. 」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와이프에게 답장이 온다.
「 아.... 알겠어... 」
다음 화에 계속
(2편 마지막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