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꿈이네 Aug 19. 2024

불안함과 자신감 사이, 2편 마지막 이야기 #2-25

아파트 잔금 친 다음 날, 하락장이 시작되었다.

* 본 이야기는 2022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킁킁.

음 소 똥 냄새.



지익. 

열려있는 창문을 닫는다. 



항공우주산업의 메카 경상남도 우천시. 창밖에는 공사하다 만 항공우주산업단지의 드넓은 땅이 펼쳐져 있다. 



인구 10만의 소도시지만 나름 공항도 있다. 간이역 느낌의 정말 작은 공항. 종이비행기 날리기 딱 좋은 사이즈다. 이곳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전체적으로 도시의 건물들이 낮다. 

롯데시네마도 1층 건물에 들어서 있다. 



낯설다. 이곳은 도시의 느낌보다는 시골의 느낌에 더욱 가깝다.



바이킹을 타는 것처럼 심장이 울렁거린다.

내가 이곳에 투자한 게 정말 잘한 걸까.



아무리 분양가가 저렴하다 하지만 생각했던 도시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들어가 있는 가계약금 200만 원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입금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와보고 결정할걸.



그렇다고 가계약금 200만 원을 포기하기는 아깝다. 쌩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꼴이니까.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모델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 주차장에 차들이 빼곡하다. 

우천 시민들 여기 다 모여있나. 



차에서 내리자 험상궃게 생긴 검은 양복의 덩치 문지기가 다가오더니 건물 안으로 안내한다.





.

.


우당탕탕. 

쨍그랑.



"어이 형씨, 거기 도장 찍으라고.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일인데 이렇게 계속 질질 끌 거야? 손가락 하나 내놓고 나갈래?"


.

.


아차차.

순간 무서운 상상이 나를 휘감았다. 저 덩치가 여기에 우리 부부를 감금하고 도장 찍을 때까지 못 나간다고 하는 무서운 상상.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모델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왁자지껄.

웅성웅성.



응?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사람들부터 왕 귀걸이에 클러치 백을 들고 있는 투자자 아줌마, 애 둘을 안고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들까지.



시끌벅적하다. 한쪽에서는 상담이 진행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김북꿈 계약자님 맞으시죠~?^^"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한 여자가 우리 부부에게 말을 건다. 단정한 정장 스커트에 커피색 스타킹. 누가 봐도 분양 상담사 같은데 나를 어떻게 알아본 건지.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카톡 프로필 사진 보고 알았어요^^ 그런데 두 분,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멋지고 예쁘신데요? 연예인 부부 같으세요.."



모든 긴장이 사르르 풀린다.

이 여자. 사람 한 번 제대로 볼 줄 아는군.



분양 상담사의 리드 아래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착석한다. 목줄만 없을 뿐이지 이 정도면 거의 강형욱에게 잘 훈련된 강아지 같은 모양새다.



주섬주섬.

대전에서 챙겨온 준비물을 꺼낸다.

신분증, 인감증명서, 인감도장, 등본 등등.



"아, 아직 식사 안 하셨죠?^^ 여기 우천시 맛집은.."



천천히 계약서 내용을 살펴보며 도장을 찍어 내려가고 있는데 자꾸 말을 건다. 옆에서 와이프는 어색하게 웃으며 상담사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이제 계약서 작성은 모두 끝나셨어요^^ 이쪽 계좌로 나머지 계약금이랑 기타 옵션 계약금 이체해 주시면 됩니다!"



계약서 내용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는데

계약서 작성이 모두 끝났다.



꼬르르륵.

와이프의 뱃속에서 배꼽시계가 울린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은 와이프. 

맛있는 것 좀 사줘야겠다.



"여보, 이제 우리 바다 보러 가자! 맛있는 것도 먹고!"






우천시의 무지개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린다. 



푸른 하늘에 새파란 바다를 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내륙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데 이곳은 햇살이 따스하기만 하다. 



아반떼의 양쪽 창문을 모두 열고 미친 척 소리를 질러본다. 



"야~~~호~~~ 나는 이제 3주택자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거짓 기쁨.



옆에 있던 와이프도 소리를 지른다.

"여보!! 저기!!! 우리 저기 가자!!!"



와이프가 손으로 가리킨 곳을 보니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는 칼국수 집이다. 맛있는 거 사주려 했는데 웬 칼국수집이래. 그래도 와이프가 먹고 싶다 하니 같이 먹어 줘야지.



매섭게 달리고 있는 아반떼를 겨우 진정시켜 핸들을 좌측으로 꺾는다. 



식당에 들어가니 멋진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풍경 한 번 끝내주네. 



이런 풍경에 사진을 안 찍을 수 없다. 푸른 바다 배경에 심상정그린꼬마 분양 계약서를 들고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찰칵. 



곧바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피드에 올리기는 부담스러우니 스토리에.






#플랙스 #이제 #3주택자 #다주택자




칼국수를 많이 먹었는지 와이프가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본다. 



와이프는 이번에도 나를 믿어줬다.

그런 와이프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알아서 해. 나는 우천시 심상정그린꼬마랑은 관계없는 사람이야. 혼자 책임지는 거야."


.

.



나에게 정색을 하며 본인은 이 분양권과 관계없는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부부는 한 몸이다. 나의 이번 투자가 잘못된 선택일 경우 와이프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함께 책임지며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집이 한 채 더 생겼는데 기쁜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크다. 오늘의 이 불안한 감정도 먼 훗날에는 귀여운 추억이 되어 있겠지.



사람은 늘 불안함과 불확실성을 먹으며 성장한다. 인생이 뒤바뀌는 순간에는 늘 불확실한 선택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의 선택은 옳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타닥타닥타닥.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천시 분양권 매매일지를 만들어 본다. 이번에 분양권 투자를 진행하며 느끼고 있는 이 감정들을 솔직하게 기록해 볼 예정이다. 



오늘의 이 매매일지는 훗날 이 시장을 복기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솔직하게 적어보자. 



그날그날의 내 감정과 시장 분위기를.



[경남 우천시 심상정그린꼬마 분양권 매수기..]









2022년 3월 어느 날.






지난 3월 16일, 미국이 금리를 0.25% 인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지되어 온 제로금리 시대가 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여전히 유튜브에서는 부동산 시장 폭락이 오는 것이 아니냐며 호들갑이지만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실거주하고 있는 집은 이미 코로나 시국 2%대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은 것이고, 오짬읍 아파트는 세입자의 전세금을 이용한 갭투자를 했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는 무관하다.



우천시 분양권 역시 당장 대출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분양권이다. 심지어 중도금도 무이자고. 





「 ··· 문제는 미국이 금리 인상의 강도와 속도를 높일 경우 우리나라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진국으로의 자금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한국은행도 함께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이미 ‘영끌’등으로 과도한 채무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KBS 뉴스 김대출이었습니다. 」



이제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금리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아니 금리 인상이라 해봐야 0.25%에서 0.5%로 그거 조금 올린 건데 왜 이리 다들 호들갑인지. 0.5%도 제로금리 수준이구먼.



인터넷 뉴스 기사의 댓글들은 더 가관이다.



"영끌 빚투족 다 망해라ㅋㅋㅋ 멀리 안나간다ㅋㅋ"

"집값은 지금보다 반값이 돼도 비싸다 난 안사ㅎㅎ"

"역시 결국 호박나이트하우스님이 옳았어ㅋㅋㅋ 선견지명 무엇♡"



존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익명의 바다에서 키보드워리어들끼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따르르르릉.



응?



우천시 부동산에서의 연락이다. 무슨 일이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전화를 받아본다.



"여보세요.. 예??!!!"



예상보다는 조금 빠르게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우천시 분양권을 매수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34평 미분양은 모두 완판되었고 이제 모델하우스 유니트도 폐관한다고 한다. 중도금 자서 일정도 나왔으니 4월 초에 우천시에 한 번 더 방문해 달라고.



사실 이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는데. 부동산에서 분양권을 매도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것이다. P500에 매수자가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 매도 콜이 들어왔을 때 매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부동산은 금리와 무관한 게 분명하다. 금리를 올린다 하는데도 사람들은 집을 사고 싶어 한다.



분양권을 매수한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500만 원이나 벌게 되었다. 남들은 회사에 한 달을 꼬박 바쳐야 벌 수 있는 게 500만 원인데.



돈 벌기 참 쉽다. 계약서에 사인 몇 번 했다고 500만 원이 불어난 것이니까. 이게 바로 돈 복사.



부동산에 내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해둬야겠다.



"아 그래요..? 저는 P500에는 매도할 생각이 없습니다.. P2000 정도 될 때까지는 따로 연락 안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가뜩이나 분양가도 저렴한데 꼴랑 500만 원을 받고 매도할 수는 없다. 적어도 2000만 원은 먹어야지.



기분 끝내준다.





대한민국은

역시







부동산이다.









2편 끝.












2023년..

.

.

.


죽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죽을 만큼 힘들다. 



어렸을 적부터 온갖 고생은 다 해봤기에 멘탈 하나는 자신 있던 나인데. 그 유일했던 장점마저 무너지고 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상승장의 레버리지가 이제는 부채가 되었다. 



자랑스럽던 남편이자 아들은 사고뭉치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세상은 나를 영끌 빚투족이라 부르며 비아냥 거린다. 그들의 바람처럼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나의 속마음을 와이프, 가족,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어디 털어놓을 곳이 없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어야만 한다.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모두가 힘들어질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경험 없이 용감하기만 하던 지난날의 나를 뜯어말리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경험이다 생각하며 버텨보지만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경험이다. 경험 두 번 했다가는 사람 잡겠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보자.




내 이야기는 절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편에서 계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