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웩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김원희 누나가 했던 스팸 CF.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도 김원희 누나와 똑같은 대사를 하고 있다.
다만, 뒤에 "꺄아아아~"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나는 비명이다.
짠테크 비상식량이던 김과 참치는 이미 동난지 오래다. 이제는 스팸만 남았다. 이놈의 스팸세트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아직도 2세트나 남았다.
벌써 몇 개월째다. 와이프와 함께 있는 저녁에는 다른 반찬을 해먹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대부분 스팸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스팸을 노릇하게 구워 따뜻한 밥에 올려 먹기도 하고, 계란에 부처 먹기도 한다. 그러다 어떤 날은 잘게 썰어 볶음밥을 만들어 먹어 보기도 하고, 그마저도 질리면 김치와 스팸을 넣고 부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왜 스팸 차단 기능은 메일이나 메시지에만 있을까. 음식에도 스팸 차단이 있으면 좋으련만.
한 번은 친구들과 안주 8,900원 포차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안주로 스팸계란후라이 세트를 주문하길래 술 상 다 뒤집어엎고 인연 끊으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꾸역꾸역 줄어가는 우리 집 스팸 잔고와는 반대로 통장 잔고는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 내 점심값 아끼고, 외식도 줄이고, 여행도 줄이다 보니 저축의 속도가 1.5배는 빨라진 듯하다.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보상이 있으니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는 고통 정도는 견딜만하다.
하지만 좀처럼 참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바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
종잣돈을 빡세게 모으려 하다 보니 저절로 인스타그램도 잘 안 하게 된다. 사실상 뭐 자랑할 게 있어야 스토리라도 업로드하는 것이 인스타그램인데, 어딜 가질 않으니 업로드할 것도 없다.
이렇게 업로드가 뜸하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락을 하는 지인들도 있다. 요즘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잘 지내고 있는 게 맞는지 확인해 보는 지인들.
그들의 속내는 뻔하다. 내가 진심으로 걱정돼서 연락을 한 게 아니고 그저 우리 부부의 사이가 소원해진 것은 아닌지 확인차 연락해 본 것이 아닐까. 가십거리가 필요하기에.
지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가족들에게도 서운한 점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족들이 우리 부부에게 서운해한다.
짠테크를 하려다 보니 가족 외식 자리에서 선뜻 밥 값을 지불할 수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남도 줄이게 되었다. 자주 만나는 만큼 지출은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너네는 돈도 잘 벌면서 왜 그렇게 아끼고 사냐. 쓸 땐 쓰고 살아야지."
가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생각보다 타격감이 더 크다. 와이프와 둘 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는데 아끼려고 하는 모습이 가족들 눈에는 궁상맞아 보였나 보다.
와이프도 다른 때는 괜찮다가 가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해하는 듯하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나에게는 다 느껴진다. 그런 와이프에게 기죽지 말자고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여보 생각해 봐. 우리 어른들도 젊었을 때는 다 우리처럼 아끼면서 고생들 하셨어. 우리 집도 어렸을 때 부업 같은 것도 해봤고 여보도 어렸을 때 기억을 되짚어보면 인형 눈알도 붙여본 것 같다며. 그런데 그분들이 지금은 어때? 어느 정도 부를 일구고 잘 살고 계시잖아. 아껴가며 미래를 고민했던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잘 살고 계신 거야. 우리 잠시 속상할 순 있어도 절대 기죽지 말자."
경제적 여유를 얻기 위해서는 금수저로 태어난 것이 아닌 이상 아끼며 종잣돈을 모으는 암흑기를 누구나 다 겪는다. 우리 부부 역시 그 암흑기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돈과 시간은 교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럼 그 말을 부모님에게 적용시켜 보면..'
지금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시간이고 부족한 것은 돈이다. 반대로 부모님이 우리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며 우리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교환해야 한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밥 얻어먹는 것을 죄짓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부모님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부모님은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돈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거니까.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렇게라도 자기 위로를 하고 싶다.
안 그러면 나도 멘탈이 무너질 것 같아서..
다들 미안해요.
가족들, 그리고 와이프에게도.
.
.
.
몇 개월 뒤.
내 집 마련 이후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스팸 세트 덕에 30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우웩. 이제는 스팸의 S자도 듣기 싫다. 아우 헛구역질이 나오네.
어쨌든 많은 유튜브, 책에서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종잣돈 3000만 원. 그 돈을 몇 개월 만에 모았다는 것이 대견하다.
TV, 유튜브, 블로그에 너도나도 3000만 원 투자해서 몇 억씩 벌었다는 무용담이 하도 많아서 우습게 생각했던 3000만 원이, 실제 근로소득으로 모아보니 굉장히 큰돈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이렇게 모으기 힘든 돈을 남들은 투자 한 번 잘해서 몇 배로 불린다고? 그럼 나도 그 시장에 뛰어들어야지. 같이 좀 벌어보자고.
종잣돈도 마련했으니 이제 스팸 식단은 잠시 중단할 예정이다. 다시 정상 식단으로 돌아가야지.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투자를 진행해 보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