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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Mar 23. 2024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 #2-7

잠실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섬주섬.

꼬깃꼬깃.



가방에 노트와 필기구를 차곡차곡 예쁘게 챙기고, 근무복은 최대한 압축시켜 가방에 꼬깃꼬깃 넣은 채 집 밖을 나선다. 



가자. 수도 서울로. 


.

.

.


쿠궁쿠궁. 쿠궁쿠궁.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그리고 그 서울의 알짜배기 땅을 순환하는 2호선 열차에 올라탄다. 



열차 안 사람들은 모두 무심한 듯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 이 사람들은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매일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출퇴근하고 있지만 올 때마다 느낀다. 



서울과 대전의 공기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카똑-



모임원들은 이미 잠실에 도착해서 카페에 있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들과의 첫 만남. 떨리지는 않는데 서로 불편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든다. 



「 이번 역은 잠실, 잠실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암사나 모란 방면으로 가실 고객께서는 이번 역에서 8호선 열차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



2호선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고, 나름 강남이라는 송파구. 그중 잠실에 첫 발을 내딛는다.



롯데월드에 가기 위해 잠실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그때는 그저 설레고 신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등에 메고 있는 책가방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진다.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 잠실역 1번 출구로 올라가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저기 저 낡은 아파트는 뭐지..'

호갱노노 앱을 열고 시세를 확인해 본다. 



헉.



저 낡은 아파트가 그 유명한 잠실 주공 5단지구나. 그럼 저기 높은 아파트들은 뭐지..



인근에 높게 솟아있는 준신축급 아파트들의 이름과 시세도 검색해 본다.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명성 높은 아파트들의 이름과 가격을 보고 나니 가뜩이나 무거웠던 책가방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 듯하다. 



잠실은 중력이 더 강하기라도 한 건가. 

땅에서 자꾸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고, 

하늘의 기운은 나를 누르는 것 같다. 



가슴속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래. 꼭 성공해서 여기에 살아야지.'



띵똥똥또로동똥 똥똥-



요란한 아이폰 벨소리가 모든 중력을 깨부숴버린다. 

"네. 저 지금 거의 다 와갑니다."



모임원들이 있는 카페로 올라간다. 



저 멀리 서로 어색해 보이는 한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다섯 명 정도가 모여있다.

'저기겠군'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 정말 내키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일단은 가면을 써야 하는 것도 싫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가면을 장착해 본다. 오늘의 가면은.. 그래 "미소천사"



미소 가득한 미소천사 가면을 장착하고 모임원들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대전 부동산 모임 맞죠?^^ 저 북꿈이입니다."



어색 어색. 내가 제일 싫어하는 첫인사. 



다른 테이블에서도 들었나 보다. 카페 안에 어색한 난기류가 약 3초간 요동친다. 그러다 이내 난기류는 사라진다. 



"어어! 안녕하세요! 북꿈님! 먼 길까지 잘 오셨네요 반가워요.."



7주택자 모임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맞이해 주고 이내 나머지 사람들도 다들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고는 각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이어간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스스로가 더 작아지는 기분이다. 다들 이미 여러 채 매수, 매도 경험이 있는데 나는 고작 단 한 번의 매수만 해 본 1주택자다.



이 사람들, 겉으로 티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분명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조금 떠들다 보니 어느덧 강연 시간이 되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선다. 



끼이익. 끽끽 끽. 끄으으으윽.



사람이 많다 보니 퇴장도 요란스럽다. 



이제

드디어

유명 유튜버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를

만나볼 시간이다. 내가 오늘 잠실에 온 이유.




그렇게 우리는 강연장에 입장한다. 





사람이 북적북적하다.



유명 유튜버인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와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줄도 길게 늘어서 있다. 



나도 빠질 수 없지. 

긴 줄의 가장 끝에 줄을 서본다.



그런데 이 형.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더 잘생기고 키도 크다. 정말 훤칠 그 자체. 왜 유독 여성 구독자들에게 인기가 더 많은지 알 것 같다. 



길었던 줄이 줄어들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부읊남님 덕분에 내 집 마련 했어요 감사합니다. 팬이에요"


"축하드립니다."



찰칵-





연예인과 사진을 찍은 기분. 자리로 돌아가며 곧바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다. 



"얘들아 나 부읊남이랑 사진 찍음ㅋㅋㅋ"

"그 사람이 누군데?"



그렇지. 니들이 알 리가 없지. 

유튜브라고는 매일 게임 영상만 보고 있으니. 



핸드폰을 소중하게 품은 채 자리에 앉는다. 적당한 앞쪽, 질문이 들어올 것 같지 않은 구석탱이 자리에.


.

.





"책 30권 읽어보신 분 있나요?"



나 이제 책 두 권 읽은 남자.

30권이라.. 읽은 사람이 있으려나?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이 형 역시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 하나. 저축률.



본인은 종잣돈 모을 때 라면만 먹고 저축률 80%를 유지했다고. 종잣돈을 모으던 시절에는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일단 아끼고 살아야 하는 게 맞았다고 한다. 



스스로를 감옥에 넣는다는 마음으로 독하게 그 시절을 견뎌내야 한다는데.. 저 사람 정말 절박한 삶을 살았구나. 힘든 시절을 다 이겨내니 이렇게 좋은 시절을 맞이할 수 있는 거구나.



짧은 시간의 강연이 끝났다. 



모임원들은 잠실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는데 나는 그럴 시간이 없다. 곧바로 야간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무거운 숙제를 지닌 채 2호선 열차에 몸을 싣는다.



「 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

철컥.



위이이잉-



쿠궁쿠궁. 쿠궁쿠궁.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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