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칭호.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며칠 단톡방에 있어 보니 다들 나만 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일부러 단톡방에 신삥 들어왔다고 기강 잡으려 하는 건가.
양도세, 규제지역, 비규제지역, 분양권, 허그, 중도금, 취득세, 공시지가 등 모르는 단어들로만 이야기한다. 부동산 투자에 대해 무지한 나의 모습이 창피해 대화에 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더 짜증 나는 것이 있다.
"저 오늘 계약서 쓰고 왔어요"
"오늘 전세 세입자 들어와서 잔금 치렀네요"
나만 빼고 다들 집을 더 사고 있다. 모임장이라는 사람은 등기권리증 몇 개를 한 곳에 모아 사진을 찍어 자랑한다. 한 달 만에 집 몇 채를 더 매수했다고. 이제 7 주택자라고. 자산으로 따지면 15억이 넘는다고 한다.
이제 겨우 30세에 1 주택자가 되어 스스로 대견하다 생각하고 있던 나인데, 1 주택자라는 타이틀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들을 규제한다고 난리고 매일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다주택자라는 타이틀이 엄청난 칭호로 느껴진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자쿰의 투구'를 쓰고 있는 고수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들이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승리해 힘들게 얻은 전리품. 등기권리증.
정말 멋있다.
나도 집 서랍 한 편에 등기권리증을 모으고 싶다.
'나와 같은 또래들이 이렇게 집을 사서 모으고 있단 말이지..'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꿀꿀하다.
예쁘고 포근하기만 한 우리 집이 갑자기 흑색으로 변하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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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몇 억씩 오를 때
꼴랑 몇 천만 원 오르는 개잡주.
부동산 단톡방이라는 것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며칠 만에 스스로가 더 작아 보이며 알 수 없는 조급함이 나를 조여오기 시작한다.
"이번에 잠실에서 유튜버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님이 강연하는데 혹시 함께 가실 분 있나요?"
7 주택자의 부동산 소모임 모임장이 같이 잠실로 강연을 들으러 갈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
'잠깐, 저 유튜버 내가 구독한 유튜버잖아? 나한테 절대로 전세 살지 말라고 했던 그 고마운 형.'
바로 근무 표를 확인해 본다.
젠장.
그날 야간근무다.
출근 시간도 애매하다.
그러나 방법은 찾으면 있는 법.
"여보세요? 형 저 다다음주에 근무 좀 바꿔줄 수 있어요? 오후에 볼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출근해야 할 것 같아서요"
예쓰. 성공이다.
동기 형과 근무를 바꿔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 강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단톡방에 서둘러 참여 의사를 밝힌다.
[ 모임장님 저 참여하겠습니다. 저는 잠실로 바로 갈게요 ]
부동산 읊어주는 남자.. 꼭 한 번은 실제로 보고 싶었던 유튜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연예인을 직접 보러 가본 적이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연예인을 보러 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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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