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의 성지?
* 본 시리즈는 2021년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따르르르릉 ♬
'하.. 쉬는 날은 좀 쉬자.. 아침부터 누가 전화질이냐 진짜..'
끄으으응.
반쯤 감긴 눈을 가까스로 뜨고 저장된 번호를 확인한다.
큼큼.
"네 김북꿈 대리입니다."
"어, 김북꿈 대리. 이번 휴일에 대체 근무 좀 해줄 수 있나? 영 사람이 없어서.."
"네 물론이죠. 몇 시까지 출근하면 될까요?"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같은 나의 휴일을 반납하고 대체 근무를 해달라는 팀장님의 전화.
나야 뭐 당연히 콜이다. 쉬는 날 쉬어봐야 돈밖에 더 쓰나. 짠테크와 더불어 돈은 또 돈대로 벌어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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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오늘도 역시 몸이 천근만근이다. 휴일에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이 망할 놈의 서울-대전 장거리 출퇴근은 영 적응하기 힘들다. 나에게 순간 이동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시간 40분 만에 회사에 도착한다.
팀장님에게 출근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앉아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커피 자판기 앞 선배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거린다.
"아니 글쎄 요즘 젊은 직원들은 휴일에 대체근무도 안 한 대. 2년 전에 들어온 그 친구 있지? 그 친구 집값이 몇 억이 올랐다고 하더라. 팀장들이 휴일에 전화하면 이제 받지도 않는다던데."
역시 우리 회사 각종 소문의 근원지 커피 자판기 앞. 오늘도 그곳에서는 따끈따끈한 소식들이 오가고 있다.
"그게 진짜야? 나랑 친한 지훈이도 이번에 재개발 빌라 사서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 요즘엔 젊은 애들이 참 빨라. 우리 때랑 달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얘기하는 친구들 모두 내 동기 아니면 후배들인데.
'이 황금 같은 대체근무를 안 한다고? 한 번 근무하면 30만 원인데 이 돈을 무시할 정도라고?'
30만 원 벌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출근한 나 자신이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이깟 30만 원 때문에 내 몸을 혹사 시키고 있다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
동기들이 서울에 내 집 마련해서 몇 개월 만에 몇 억씩 돈 벌고 있는 것. 배 아파 죽을 것 같다. 얼른 따라잡고 싶다.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했으니 얼른 다른 곳에라도 투자해서 따라잡고 싶다.
근무 시간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네이버 부동산을 켠다.
얼른 투자할 곳을 찾아야 한다.
갭 3천만 원에 맞는 그런 아파트.
호갱노노도 들락날락해보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겠다.
투자금은 마련했는데 투자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까똑-
대전의 한 부동산 카톡방 알림이 울린다.
제기랄.
망할.
쒸댕알.
또 매수 인증글.
"2호기 비규제 당진 매수했네요. 오늘 배액 배상도 나왔대요ㅋ"
"3호기 공시지가 1억 이하 빌라 했어요. 무갭."
"4호기 오피스텔 플피 세팅했네요. 취득세 4.8% 내도 남아요"
"아파트 투자는 이제 끝났어요. 저는 생숙 분양권 P 주고 샀네요."
다들 뭐가 그렇게 호기로운지 몇 호기 몇 호기 지긋지긋하다.
나는 언제까지 1주택 찐따여야 하는가.
[공지] 이번 주 토요일 21:00 XX 님의 청주지역 무료 톡강
전국 투자자들이 모여있는 오픈 카톡방.
방장이 공지를 하나 띄운다.
이번 주 토요일에 XX 님이 청주시 지역분석 무료 톡 강의를 해준다고 한다. XX 님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뭐 이렇게 공지로 띄워 놓는 거 보면 뭐라도 있는 사람이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톡 강의라는 것도 있구나. 온라인에서 별의별 것들이 다 이루어지네.
그래. 나도 한 번 톡 강의라는 거 들어보자. 거기다 청주는 대전에서도 가깝고 집값도 저렴한 곳이잖아?
마침 궁금했는데 잘 됐다.
"청주시는 아직 저평가입니다."
"청주시의 도시개발 계획을 보면 미호천을 중심으로.."
"청주시의 기업 현황입니다. SK, LG 등.."
"청주시는 이제야 전 고점을 막 회복한 도시.. 아직 갈 길이.."
....
갭 3000만 원으로 투자가 가능한 곳이 있다고?
오 하나님, 부처님! 할렐루야 관세음보살!
이 톡 강의는 나를 위한 강의였던 것이 분명하다.
잘 됐다. 오늘부터 청주다.
딸깍 딸깍
휙휙휙
오.. 여기도 갭 3000...
휙휙휙
이야.. 여기는 갭 2000이잖아? 청주가 괜히 저평가라고 하는 게 아니네. 전세가랑 매매가 차이가 얼마 안 나서 갭투자하기 딱 좋은 환경이구나.
네이버 부동산과 호갱노노를 이용해 청주시의 아파트를 샅샅이 뒤져본다. 대부분 단지의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거의 없다. 10평대~20평대는 오히려 전세 가격이 더 비싼 곳도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매수하고 싶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단지들을 다른 사람들이 뺏어가면 어떡하지? 요즘 단톡방 보면 집도 안 보고 계약하고 왔다는 둥 배액 배상을 당했다는 둥 말도 많던데.
"여보, 우리 내일 뭐 할 거 없지?"
와이프에게 일단 내일 약속이 있는지 먼저 물어본다.
"내일 나 브런치 먹으러 가고 싶은데..."
아뿔싸. 와이프가 며칠 전부터 브런치 카페에 가고 싶다고 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란 남자. 위기에 강한 남자.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와이프를 8년간 보좌하고 있는 명예 보좌관.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브런치 먹고 싶다고 하길래 브런치 카페 다 알아놨어. 대전은 좀 지겹고 우리 대전 근교로 가볼까? 청주."
"우와! 여보 최고!"
와이프의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듯하다.
그래. 어차피 점심은 해결해야 하니까..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 해결하고 겸사겸사 상권 분석까지 해보는거야.
진짜 나란 남자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남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줄 아는 남자.
욕심은 많아 보이지만 제법 섹시하다.
이러니 와이프가 나한테 뻑이 가지.
"내일 옷 편하게 입어. 배 터지게 먹으려면."
브런치 카페에 갔다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거닐며 와이프에게 "이 동네는 살기 어때 보여?" 하며 슬쩍 물어볼 계획이다.
데이트를 가장한 임장.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