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해 주는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하기 싫든 말든 시키는 일은 무조건 평생 해야 하는 곳'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내 목표는 퇴사가 되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시도해 보았다.
직장인 시절, 친구가 블로그를 통해 애드포스트 수익을 내는 걸보고 블로그를 개설했다.
지나가는 새의 똥처럼 엉겁결에 세상에 나와버린 허접한 내 글을 누군가가 클릭한다는 게 신기했다.
회사일도 빠듯했던 저질체력 탓에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희망이란 게 생긴듯했다.
퇴사 이후엔 블로그체험단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30개 지원하면 1개가 선정될까 말까였는데 이젠 10개 중에 1개는 되는 수준이다.
외식, 미용, 숙박, 심리상담 등 체험단 활동 덕분에 궁핍한 백수살림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월급 외로 돈을 버는 길이 있다는 걸 가장 처음 알려준 고마운 플랫폼이다.
블로그를 하다가 '대세는 영상'이라는 친한 언니의 권유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평일엔 회사에 가고 주말엔 아픈 눈 비벼가며 곰프로와 샷컷이라는 무료영상편집프로그램을 차례로 익혔다.
시골살이영상을 올렸는데 영 반응이 없어서 '30대 미혼 직장인 여성'으로 주제를 변경했다.
그러다 영상 하나의 조회수가 몇만이 되면서 3주 만에 천명 가까운 구독자가 생기는 일이 발생했다.
퇴사를 하면서는 유료 편집프로그램 프리미어프로를 배워서 영상제작에 신경을 썼다.
마침 수익화조건을 달성하여 적게나마 수익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심심치 않게 달리는 악플때문에 댓글알람만 오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꺼려졌다.
거기에 기획, 촬영, 대본작성, 내레이션, 편집까지 혼자 하다 보니 시간과 체력소모가 심했다.
고질병이었던 안구건조증이 심해지면서 결국 영상업로드를 중단했다.
퇴사 이후 예전부터 여렴풋이 하고 싶었던 브런치작가에 지원했다.
유튜브 운영 덕분에 앞으로 쓸 글의 주제가 있는 상태였고, 유튜브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여 어떻게 운영하겠다고 지원서를 작성했더니 하루 만에 합격메일을 받았다.
퇴사라는 낯설고 고된 길을 헤매던 중에 포근한 방한칸을 얻은 느낌이었다.
나를 정의하는 소속과 직급이 없는 상태에서 작가로 불리는 자체로 뚜렷한 정체성을 부여받은 듯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블로그보다 손이 많이 갔고, 유튜브대본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올린 글은 큰 반응이 없어서 구독자 늘어나는 속도가 달팽이, 거북이 급이었다.
내가 쓴 글의 숫자보다 구독자수가 적으니 의욕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유튜브를 중단하고 브런치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됐다.
속도는 느렸지만 어느 순간 구독자수가 발행글 수를 넘어서게 됐고 지금까지 브런치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퇴사 전후로 세 가지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는 항상 글을 기반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퇴사 이후에 뭘 했냐는 질문에 우물쭈물하게 되는 건 누군가에게 내세워서 납득시킬만한 '성과'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마냥 놀지만은 않았지만 무언갈 했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내가 꾸준히 잡고 있었던 게 바로 글쓰기라는 것이다.
글 쓰는 일이 매번 즐겁고 재밌는 건 아니지만,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뚜렷했다.
"나 계속 글을 쓰고 싶어."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자체로 위태한 백수생활을 버틸 기둥이 생긴 듯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항상 내 발목을 잡는 걱정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