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아. 환불아. 환불아.)
복싱 8일 차.
운동하러 갈 시간이 되면,
내면에서 항상 선과 악이 다툰다.
"오늘은 쉬어라. 네 나이를 생각해."
"너, 오늘 또 그 빡센 거 할래?"
"아냐, 가야 돼. 열심히 해야지."
"힘드니까 운동이지. 암암. 그렇고말고."
"야! 너 20대랑 또 스파링 뛸래?"
"아직 실력 부족하잖아? 너무 힘들잖아?"
"그냥 쉬어 인마. 오늘은."
"아냐 난 재미있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난 때리는 거보다 맞는 게 체질이얏! ^^;"
끝내 선의 승리로 싸움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복싱장 문을 여니,
빨간색 머리띠를 하고 열심히 섀도복싱 중인
전날 스파링 상대 등이 보인다.
"00대 physical education."
'이 놈들이, 썩은 몸 회생프로젝트 위해 용기 내서 복싱장 문 두드린 40대 중반 아저씨를 20대 팔팔한 체대인과 다이다이 붙여? 어? 야? 엇?'(내면의 소리)
한편으론 걱정됐다.
'오늘도 저 분과 스파링을 해야 하나???'
'아직 날 못 본 것 같은데.. 돌아갈까?'
(비겁한 구온아빠)
머리 싸매며 고민하던 찰나,
"형님 오셨어요!"
관장이 인사한다.
"넷!"
바로 체육관 입장!(나 걱정 왜 했냐?)
루틴대로,
10분 러닝머신, 전신거울 앞 제자리 뛰기,
새도복싱, 아령 들기 끝.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귀신같은 관장.
타이밍 맞춰 미트를 끼고 내게 온다.
"형님 링 위로 올라가시죠?"
"원 투, 원 투, 원투원, 투원투, 원투원투,
버티세욧! 버티세욧! 중심! 중심! 발! 발!,
다시. 원 투, 원 투, 원 투......"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다.
'구온엄마... 나 병기가... 되려나 봐...'
'헉헉. 허억. 허어억윽.'
'워터....워..뤄....플..리..즈....'
관장은 내 숨을 여유 있게 지켜보며
마지막까지 체력을 짜낸 다음,
"휴시익!!"을 외친다.
이 나이에 20대가 외치는 휴식.
이렇게 달콤한 줄이야......
다시 2회 차 시좌악악악!
'원 투, 원 투, 원투원, 원투원투, 원원투!'
"형님 제 미트가 형님 배에 닿으면 10분씩 연장입니다. 헤헤헤"
슉~ 슉~ 슈욱~
손과 발이 어찌나 빠른지.
난 구온엄마와 구온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애견이 된 마냥. (애견과의 놀이)
슉~ 슉~ 미트가 배에 다가오면, 빠르게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뒤로~~ 뒤로~~~ 뒤이이로오~~~
왜?
10분 연장이래자나!!!!!!!!!
스텝이 점점 꼬여간다.
아이고, 내 체력아! 비루한 몸뚱아리야아!
"휴시익!!!!"
'고맙다. 관장님아. 고마워. 진짜 고마워.'
다음이 스파링은 아니지???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링 계단에 주저앉았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정을 지어야 한다.
'아련하게. 불쌍하게. 슬프게......'
다행이다.
메소오드 연기 덕분인지 스파링은 없었다.
20대 체육인 친구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장비를 사물함에 정리하고 있었고.
'휴우~ 다행이네~ ^^'
나도 집에 가자.
사물함으로 걸어가는 내게.
"형님! 오늘은 스쿼트 좀 하고 가시죠?"
"예? 저요? 나 다했는데?"
"하체 좀 조지고 가시죠!! 헤헤 ^^."
"아... 나... 허리 디스크가.. 좀.. 있어.. 요.. 히히히."
"아 그래요? 그럼 런지만 조금 하세요."
안 통한다.
바로 이어진 시범.
"이렇게! 이렇게요! 다리를 직각으로 허리 세우고!"
"100회만 시좌악악악!"
"환불 드립은 이제 안 통할 테고, 헬스를 할 걸 그랬나 봐.... 관장님아....."
(내면의 소리)
"그럽시다. 헛 둘. 헛 둘."
(체면이 있지. 여유 있는 척.)
비겁하지만 살기 위해,
난 30회 정도 런지 하고, 100회를 다 한 냥 연기하며 화제를 돌려냈다.
"관장님, 아오 개운하네 이거 하하, 커피 한잔하러 나갑시다."
잘했어. 노련했어.
"네 형님, 좋죠. 그리고 집에 갈 때 두부 한 모 가져가세요. 회원분이 공장을 하시는데, 너무 많이 주셔서 드릴게요. 찌개에 넣어 드세요. ^^"
국대 출신 20대 관장.
밀당의 고수.
찬거리까지 챙겨주는 따스함.
예의 바름. 빡센 운동. 환한 미소.
난 네게 빠졌어. 관장.
고마워. 열심히 할게.
복싱 라이선스 취득까지 하지 뭐
이왕 하는 거......
야구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 동네 야구로 이름을 떨치며 야구부와 시합에서 꿀리지 않았던 터라.
(멀리 던지기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야구를 다시 해볼까 생각했다.
한데 팀 운동을 하게 되면, 뒤에 이어질 회식 그리고 시간을 너무 쓰게 될 것 같아 선택한 운동이 복싱이었다.
참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극 초보이고, 매일 힘들긴 하지만,
개운하고 성취감이 있다.
무엇보다 몸에 자신감이 조금씩 붙으며
글 소재로도 너무 좋아 대만족이다.
복싱은 무서운 운동이 아니다.
정직하고, 온몸을 다 쓰며
겸손해지고, 몸에 대한 자신감이 붙는다.
추천드리고 싶다.
아. 근데. 내일은 또 운동 어떻게 하냐......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