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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Jan 21. 2024

무마하는 시간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생존하기 위해 언제나 세상의 '빈칸'을 채워왔다. 빈칸을 채우지 않고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 <일상의 빈칸>. 최장순





 지금이야 퇴사라는 소실점에 도착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시작도 하나의 점이었다. 그것도 그 점 하나 찍자고 나름 아등바등 간신히 해낸, 남들 눈엔 부족했겠지만, 내겐 작고 귀엽고 소중했던 점. 아닌가. 점은 컸는데 내가 너무 작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점조차 없던 시기는 말 그대로 텅 빈 시기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기억에 남은 게 없다. 20대 중후반 4여 년간 공무원 공부를 했다. 문제는, 글자 그대로 ‘하기’만 했다. 정확히는 앉아있기만 했다고 해야 할까? 죽어라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한량처럼 놀지도 않았다. 여행을 가지도, 특별한 경험을 쌓지도 않았다. 추억, 경험, 경력, 자격증, 즐거움… 어느 것도 기억에 자리하고 있지 않다. 그냥 집 근처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인 저렴한 카페에 가서 죽치고 앉아있던, 무색무취한 기억이 전부다.

 요즘에야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지만,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해서 내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라, 나름 서러웠다. 그 결과가 ‘불합격’이라 더더욱.


 돌이켜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의미가 없었나? 

 음, 없었다. 일단 기억에 그 시간이 존재해야 의미의 유무라도 따질 수 있지.








 그래서 공무원 공부를 그만둔 뒤, 더더욱 4여 년의 시간을 무마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

 20대 후반 나에게 4년은 인생을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시간처럼 느껴졌고, 뒤늦은 진로 변경의 모든 선택 기준을 ‘날린 시간을 무마할 수 있는 것’에 맞추었다. 공무원이 되는 데 실패했으니, 그와 비슷한 직업이라도 가지면, 나름 공무원 공부 기간에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야 그나마 남들에게 그럭저럭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성 따위 따져보지 않았다. 공공기관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어디든 ‘나를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지원했으니, 업무 내용이나 조건 같은 건 따져볼 사치를 부리지 못했다. 꿈은 없고요, 일단 어디든 저를 뽑아만 주는 곳이 제 천직일 곳입니다! 꿈을 그곳에 맞추겠습니다! 미래 비전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그 회사에 맞추었다. 꿈은 만드는 거죠.     


 인턴 경험도, 봉사활동도 없었던 나는 간신히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어쨌든 공공기관에 입사했으니 무마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거 아니냐,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조급했다. 시작이 너무 늦었다. 4년 불합격에, 1년 다시 취업을 위해 공부한 시기까지. 다시, 날린 시간을 매꿔야 했다. 

 아마 직장을 다니던 4여 년이 살면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던 시기였을 것이다. 하루 만 보 걷기, 한 달 만근 출석하기… 온갖 짠테크를 하고, 악착같이 소비를 통제하며 돈을 모았다. 샤워할 때는 시사 라디오를 듣고, 출퇴근길에는 경제 라디오를 들었다.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조급함에 온갖 문화, 경제, 시사 이메일 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침에 열어본 메일함에는 온갖 광고와 뉴스레터, 업무 메일이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하루 종일 소리가 끊기는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징그럽게 뒤엉켰다.







 백수가 되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평일 대낮. 더는 회사에 앉아 있지 않다. 텅 비어 버렸던 20대 중후반 시절을 떠올린다. 나름 애써가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이 꼭 그때랑 똑같네.

 앞으로 선을 그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빙글빙글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원을 그린 건 아닐까. 과거를 채우느라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셈이다.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바닥 장판을 더듬어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아, 출석 체크해야지. 하루 50원을 벌 수 있는 어플의 출석을 한 후, 맨 위 상단에 손가락을 대고 쭉 내리자 온갖 광고가 쌓인 팝업 창이 내려왔다. 그 중, 하나 ‘(입금)’으로 시작하는 창이 눈에 들어왔다. 퇴직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였다.


 기본급 수준의 임금을 악착같이 모은 통장 잔액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퇴직금까지 더해진 숫자가 보였다.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 폰, 이 손바닥만한 화면에 보이는 이 숫자가 시간을 지나왔다는 유일한 객관적 징표라니. 이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 나쁘지 않네?


 베시시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모 감독이 배우가 핸드폰을 보며 웃어야 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찍기 위해, 그녀가 핸드폰을 보는 순간 ‘2천만 원 줄게’라고 문자를 보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웃음이 난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웃었다. 원이 아니었다. 선을 그려왔다는 흔적을 이 조그마한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큰 금액도 아니고, 그럭저럭 백수로 일 년 정도는 간신히 지낼 수 있는 정도. 내가 쌓아온 시간이 입금되어, 다시 무마의 시간을 살 기회를 마련되어 있었다.






 과거를 무마하기 위해 산 시간이 억울했다. 그런데 과거를 무마하려고 아등바등거리던 시간, 나도 모르게 나아가고 있던 걸까. 과거라는 놈에 등 떠밀려서 일지라도 어떻게든 선을 그어 왔던 거지. 과거를 무마하고, 다시 그 무마했던 시간을 무마하는 방식을 찾아가면서.

    

 생각해 보면, 나는 83권이라는 가시적인 숫자에 백수로서 안정감을 느끼고, 퇴직금을 보며 의미를 찾았다. 누군가는 수치화된 삶에서 더 큰 공허함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증거를 눈앞에 보여줘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나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한 거 아닌가. 왜, 요즘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게 중요하다며 ‘메타인지’를 강조하잖아. 그래, 나는 책을 읽으며 메타인지도 높은 백수다!

     

 바보 같이 웃음이 났다. 나중에 나는 이 시간을 또 의미 없다고 생각할까.


 알 수 없다. 또 텅 빈 시간이 되어버릴지도 모르지. 그래도 분명히 또 다른, 내가 살아 나갔다는 증거가 쌓여있을 것이고, 나는 다시 작은, 눈에 보이는 것에 안심하며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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