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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Mar 17. 2024

사라지고서야 날카로워지는 것들

-낯섦의 인식


 당연하다고 여긴 것이 없어질 때, 우리는 ‘낯섦’을 경험하게 된다.

 매일 아침 보던 동네 가게에 ‘임대’ 종이가 덩그러니 붙어있을 때, 비로소 여기에 2년간 살면서도 한 번도 가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늘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이제는 사라진 가게의 흔적이 기묘하게 낯설다. 이렇듯 낯설다는 감각은 당연하게 여기던 무언가를 다시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존재는 사라지고 나서야 날카로워진다.


     

 무엇이든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낯설다는 감각은 ‘인식’이다. 소중함을 인식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라지고 나서야,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했다고 여겼던 수많은 ‘당연한’ 것들이 사라졌을 때, 걱정한 것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당황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들을 치워버려야 하는 게 두려웠다. 당연함이 두려움을 만들고, 그 두려움은 다시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불편함과 모욕,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여겼던 규칙, 당연하다 믿었던 삶의 방식과 모두가 말하는 ‘좋은 것들.’ 

 특히, 사회가 말하는 ‘당연한’ 것들은 일종의 기본값으로 여겨진다. 그 정도는 갖추어야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며, 그 정도는 지녀야 보통은 되는 것이다. 가령, 직장, 결혼, 자가, 자차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내 시간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던, 그리고 내 인간관계를 잠식했던 회사를 나오고 며칠 만에 알게 되었다. 당연했던 출퇴근이 사라져도, 별일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참았던 순간들은 당연한 게 아니라, 좀 없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없어지고 나니, 정말이지,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퇴사하고 9개월 정도가 흘렀다. 이제는 이 삶이 또 다른 나의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일상의 모든 게 당연한 배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평일 낮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은 가물가물해진 지 오래다. 말로는 ‘매일 너무 좋지.’ 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온다. ‘좀 없어도 되는’ 것들이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다시, 당연했던 일상을 치울 날이 왔다는 걸 알았다. 내 삶을 구성하던 일상, 취미, 집에서 먹는 세 끼니의 밥, 온전한 나의 시간이 조금은 사라질 때가 됐다. 치우고 나서 ‘임대’ 종이를 바라보던 때처럼 낯설어진 길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고 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낯설어져야 한다. 물론 퇴사 이전의 삶과 같아질 생각은 없다. 철 지난 당연한 것들은 보내주었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더 잘 낯설어져야 한다.

     

 ‘책이나 읽고 사는 백수’의 공간에 ‘임대’ 글자를 쓴다.

 악필이지만 괜찮다. 언젠가 다시 낯설어지고 싶을 때 얼마든지 돌아와 떼버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잘 붙어있기를 바라며 꾹꾹 눌러 붙인다.



    



 “일상을 예술이라는 맥락으로 낯설게 만듦으로써 우리가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요즘 미술은 진짜 모르겠더라>. 정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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