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소리튜닝 42
'끊어읽기'와 '띄어쓰기'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끊어읽기'는 '띄어쓰기'와 다른 개념입니다. 책을 소리 내서 읽을 때, 끊어 읽는 단위는 띄어쓰기 단위를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문) 우산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띄어쓰기 단위로 읽어보겠습니다.
"우산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리 내서 읽어보세요. 마치 초등학생이 책을 읽는 듯한 말소리가 납니다. 무슨 말인지 의미도 빠르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끊어 읽는 단위, 즉 '의미의 덩어리'를 고려하며 읽어보겠습니다.
"우산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산이 없는 사람이'는 하나의 의미 덩어리이기 때문에 중간에 끊지 않고 한숨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많습니다'를 읽었습니다. 어떠신가요. 문장의 의미가 빠르게 전달되지요.
실전 연습 한번 해보겠습니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입니다. 소리 내서 읽어보세요.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聖心) 여자 대학에 가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었다. 힘든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중략-
이번에는 제가 읽기 좋게 끊어 보았습니다. 끊어 놓은 부분은 살짝 쉬어주세요. 이번에도 소리 내서 읽어보세요.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도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 여자 대학에/ 가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었다./
힘든 출강을 한 한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어떠신지요? 3음보, 4음보가 살아 있지요.
끊어 읽기만 잘해도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서 네 번째 문장에 주목해 주세요. 두 개의 단문이 결합된 복문입니다. 두 문장을 모두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문장입니다. 첫 번째 문장에 있는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은 하나의 의미덩어리를 이루기 때문에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합니다. 왜 하나의 의미덩어리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장은 '주어+서술어' 문형입니다.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만 골라내면 그 문형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어: 것은, 서술어: 예의이다
'것은 예의이다'
다시 첫 문장을 보세요. 주어를 꾸미는 말과 주어, 그리고 서술어를 꾸미는 말과 서술어로 되어 있습니다.
{힘든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 것은}, 그리고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으로 된 구조가 보이시지요.
따라서 {힘든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그리고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은 각각 하나의 의미 덩어리가 됩니다. 한 호흡으로 읽을 때 더 자연스럽습니다. 중간에 끊어서 읽으면 수필가가 하려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문장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로 끊어 읽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를 찾아보세요.
'나에게는'이 주어일까요? 아니면 '사연이'가 주어일까요?
이 문제는 좀 더 큰 차원에서 바라봐야 풀립니다.
우리말 문형은 아래와 같이 주어부와 서술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주어부 ] [서술부]
주어 / 서술어
주어 / 부사어+서술어
주어 / 보어+ 서술어
주어 / 목적어+ 서술어
주어 / 목적어+ 부사어+ 서술어
주어 / 서술절(주어+ 서술절)
[서술부]에는 서술절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절은 주어와 서술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문장에서 주어, 보어, 목적어, 부사어, 서술어 기능도 합니다.
[주어부]와 [서술부]를 고려하면서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를 다시 보세요.
'주어+ 서술절'로 된 문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어 뒤에서 한번 끊어 읽고, 하나의 의미 덩어리를 만드는 서술절은 한 호흡으로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요.
"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서술부가 서술절로 된 문장의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주어+서술절)
'코끼리는+ 코가 깁니다.'
'운동선수는+ 인내심이 강합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문장 전체의 주어는 '코끼리는', '운동선수는', '한국은'입니다.
따라서 끊어 읽을 때는 문장 전체 주어 뒤에서 끊어 읽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요.
"코끼리는/ 코가 깁니다."
"운동선수는/ 인내심이 강합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이처럼 끊어 읽기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아무 데서나 끊어 읽으면 그 문장이 전하고자 하는 본래의 뜻이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끊어 읽기를 잘 하면 또 무엇이 좋을까요?
복잡한 문어체의 글도 리드리컬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말소리가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