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9년 차 일기
층간소음 잔소리 2019년 12월 20일
오늘도 아침에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운동을 하고 돌아왔다.
아내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마루에서 옷을 갈아입고 책도 읽고, 주식시세도 보고, 유튜브도 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12시가 넘어 아내가 나왔다.
아침에 사 온 빵과 커피를 먹고 아내와 고스톱을 치며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외출하다가 싸움이 나고 말았다.
정말 얘기하기도 민망한 이유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이런 여자와 어떻게 살았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오늘 싸움 시작은 외출하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생겼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는데 너무 세게 바닥에 내려놓는다는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아내의 주장은 그렇게 시끄럽게 신발을 바닥에 던지면 아래층 사람들이 놀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한두 번도 아니고 나갈 때마다 이런 말을 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릴지도 의문이고, 설령 들려도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정도여서 조심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집에서 TV나 의자 소리가 조금만 시끄러워도 아내가 뭐라 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긴장을 하고 있어 더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우리 윗집은 평상시도 엄청 시끄럽고 어떤 때는 새벽에 노래를 하는데, 어쩌다 우리가 조금만 소음을 내도 아내에게 지적을 당하니 억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틀린 말이 없어 따르다 보면 내 맘도 편해져 웬만하면 아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가끔씩은 오늘처럼 그만하라고 반항을 하다가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이 정도 신발 소리는 괜찮다고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하니 ,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냐고 한다. 울컥하는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해 말을 아끼며 운전을 하다 보니 이미 차 안 공기는 차갑게 식어 버린 후였다.
아내가 나를 또 설득하려 말을 걸어왔으나 그럴수록 더 벽처럼 느껴졌고, 이런 일로 기분 좋은 외출을 망쳐 버린 아내가 더 원망스러워졌다.
오늘은 큰 딸이 겨울왕국이 보고 싶다고 하여 영화예매를 하고 학교 픽업하러 가는 중이어서 안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여은이를 태우고 내색을 하지 않으려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로 코엑스를 들어가다가 지나칠 뻔한 지하 주차장 입구를 아내가 재빨리 알려줘
내가 크게 안도를 하자, 이래도 내 잔소리가 필요 없냐며 농담을 거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그렇게 자주 왔던 코엑스 입구도 헷갈려하는 내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아내 잔소리가 없으면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런 것조차도 판단이 빨리 안된다면 일상에서 나의 뇌 활동은 원활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아내의
간섭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나이가 들어 갈수록 공감과 인지능력이 더 발달하는 것 같고, 나는 중년 이후에 급격히 떨어져
버린 것 같아 이제는 혼자 뭔가 하는 것조차 두렵다. 아내가 옆에 없으면 중년 이후의 삶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아내 잔소리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표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씩 아내의 잔소리 목록이 늘어난다는 것은 나의 행동이 하나씩 나사가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 잔소리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관심과 사랑이 아직은 식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앉아서 소변보기"에 이어 "신발 살살 내려놓기"가 추가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