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의 실현은 고사하고 너무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어서는 훗날 큰 부자가 될 거라는 꿈과 야망이 있었다. 40 초반 책을 쓸 때까지도 아내에게 50 정도에 큰 빌딩을 사줄 거라며 허풍을 떨곤 했다. 그런데 빌딩은커녕 50살까지도 고시원 화장실 변기를 닦고 있는 내 모습은 초라했다.
그렇게 2년쯤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다 보니 신사동 고시원이 팔리고, 청담동 고시원 소송도 마무리가 되었다. 고시원 정리한 돈으로 대출도 갚고 생활비를 썼지만 시간이 지나자 바닥이 보였다. 큰 아이 고3, 막내 고2 되는 해에 아내가 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일을 하고 내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백수 명분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딸들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한 백수 생활이 가장 보람차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먹고살기바빠 아이들 돌아볼 여유가 없다가 입시를 앞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기를 아이들과 함께 한건 행운이었다.
최근엔 중년 은퇴 이후가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젊어서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모든 것이 부족해 살아가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이제는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 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다. 지금까지 묻어 둔 내 꿈을 향해 나아가도 무책임한 아빠라는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다. 짧게 잡아도 20년의 건강한 시간이 남아있어 무얼 해도 늦지 않다.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진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 해부터 유화 그림을 그리고 마라톤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렸던 터라 미련이 있었는데 동네에 강남문화원이 생겨 다니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작품도 여러 점 완성해 전시회에 두 점을 출품하기도 했다.
작년까지는 아내와 탁구를 쳤는데 올봄부터는마라톤을 하고 있다. 아내와 10킬로 마라톤 대회도 참석했고
일주일 두세 번은 한강에 나가 달리기도 하고 카페를 간다.
그림과 마라톤 덕에 중년 생활이 충만해졌고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2024년은 내 중년 백수 생활이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건아내의
조용한 지원 덕분이다. 가정 경제를 아내에게 떠 넘겨 염치가 없긴 하지만, 내 여건 속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도 내 책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사랑의마일리지가 남아 있어 맘 편히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아내의 응원 속에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꾸준히 달릴 수 만 있다면 더 이상의 중년 성공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