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차 패션디자이너의 붓질과 불멍 #2
이 맛에 캠핑 오지. 그날 밤, 아직은 쌀쌀한 산속의 봄공기에 둘러 쌓여 불멍을 즐겼다. 낮에 입고 있던 반팔티 위에 경량 점퍼와 털 옷가지들을 대충 걸치고 따스히 모여 앉았다. 신랑은 화로대에 장작을 올리며 불길을 가다듬고 있고, 아이들은 둥지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어린 새들 마냥 나를 향하고 있다.
장작불의 빛은 칼라파워다. 붉은빛, 노란빛, 푸른빛, 보랏빛에 심지어 하얀빛도 뒤엉켜 불타오르는데 눈이 멍하도록 빨려 들어간다. 와중에 나의 몸과 마음은 술에 취한 듯 따로 놀고 있었다.
나의 몸뚱이는 화로대 앞에서 오징어와 홈런볼을 끼운 기다란 꼬치를 챙기고 있다. 바베큐트럭의 꼬치들은 회전목마 오르골처럼 평온하게 익어가겠지. 달구어지는 손의 감각을 모른 척하며, 다이소에서 2천 원에 득템 한 스테인리스 꼬치를 살살 돌려주었다.
“으음, 엄마 진짜 맛있게 잘 구워졌는데? 소떡소떡보다 오홈오홈이 더 끝내줘.”
“이거 완전 단짠단짠 최고다! 학교 앞에서 팔아봐요.”
평소에는 어긋난 남매의 취향이 오홈꼬치로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은 콜라 콸콸, 어른들은 맥주가 술술이다.
나의 마음덩이는 어쩌면 타오르는 장작불에 뛰어들어가 있었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우연히 본인의 디자인상품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메이저급 브랜드면 모를까, 20년 넘게 일하면서도 길 가다 나의 옷을 영접하기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코로나 이전 10만 장 판매의 성과를 올리고 국민적 대박이 났었던 겨울 경량다운이 떠오른다. 겉에 입는 점퍼라 눈에 잘 띄어서인지, 동네 마트와 지하철에서 두어 번 마주친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3번 커플의 티셔츠는 3천 장 많아야 5천 장 꿰매었단 말이다. 운명처럼 만난 내 새끼(디자이너들은 자기가 만든 옷이 소중하고 고달파서 애증 한다)가 어미 속을 사무치게 한다.
잠시 잊었던 창작과 생산의 욕구가
칼라파워로 불타오른다
딸아이가 벌써 열 곡도 넘게 아빠 DJ에게 신청곡을 쏟아내고 어여쁜 목소리로 따라 부르고 있다. 그러다 귀에 들어온 동요가 마음덩이로 꽂혀 왔다. 제천 간디학교 교가로 알려진 <꿈꾸지 않으면>.
유치원 동요발표회 모드로 또박또박 노래하는 딸아이를 보니 뭉클함이 일렁인다. 집게로 장작을 보태던 신랑이 연기를 피하느라 몸을 뒤로 젖힌다.
“화로대가 아쉽네. 우리 앞으로 2박 캠핑 다니려면 화로대를 장만해야겠어”
그렇다. 주말 1박 2일 캠핑을 아등바등 다닐 필요가 없는 거다.
이웃의 옷을 디자인하며 22년 동안 쉼 없이 일해왔다. 이제 나라는 사람을 디자인해 보련다.
내 다음 디자인은 2박 이상이다.
붓으로 물들홍 DESIGN.